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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주변이 간밤에 불어난 강물에 고립된 상황
▲ 물에 잠길 뻔한 천막농성장 천막농성장 주변이 간밤에 불어난 강물에 고립된 상황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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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올라오세요!"

새벽 2시경, 하천관리요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천막 지붕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늦은 오후부터 제법 세진 빗줄기에도 수위는 변함이 없었는데 새벽부터 한 순간에 물이 불어났다. 공주보 담수 당시 천막농성을 통해 강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인했기에 물이 불어나는 것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는데, 사람이 판단하기 힘든 속도로 자연은 움직였다. 

사실 세종보 상류 300m 지점에 농성 천막을 친 것은 비와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종보 재가동을 막기 위해 친 것이었다. 하천관리요원의 요구에 따라 뭍으로 나온 것은 그래서였다. 오전 5시쯤 다시 천막으로 가보니 천막은 거센 물길에 휩싸인 섬처럼 남아있었다. 자연의 흐름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생사 알 수 없는 물떼새 둥지... 한 치 앞 모를 강의 흐름
 
불어나는 강물로 물떼새 둥지가 위험한 상황
▲ 불어나는 강물을 바라보는 새들 불어나는 강물로 물떼새 둥지가 위험한 상황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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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목물떼새 알은요?"

새벽녘 강물이 불어난 소식에 천막에 남아있던 활동가와 함께 멸종위기 2급 조류인 흰목물떼새의 안부를 묻는 이들이 많았다. 어제만 해도 둥지에서 알 3개를 포란하는 어미새를 목격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자갈밭 위에서 바삐 움직이던 흰목물떼새, 삑삑도요, 깝짝도요, 검은등할미새들은 어디에 가 있을까? 새들은 가만히 있으면 자갈과 꼭 닮았고, 움직여야 알아볼 수 있다. 자갈에 몸을 숨기면 천적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에 자갈이 없는 강에는 이들이 숨을 곳이 없다. 

지금처럼 물이 모든 것을 뒤덮은 강에는 알을 낳을 곳도, 사냥할 곳도 없다. 이 비가 그치고 자연스럽게 물이 흐른다면 그 흐름대로 물은 빠져나가고 자갈 밭은 또 다시 새들의 삶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세종보가 재가동 되고 담수된다면 새들의 삶터는 수장되고 다시는 찾지 않는 죽음의 강으로 변할 것이다.
 
세종보 때문에 생긴 펄 위에 찍힌 수달 발자국
▲ 농성장 근처에서 발견한 수달 발자국 세종보 때문에 생긴 펄 위에 찍힌 수달 발자국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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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이 펄 위에 남기고 간 발자국 또한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어제 발견한 수달 발자국은 마치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거침없이 걸어다닌 듯 크기도 방향도 다양하다. 한 조각을 떼어 가만히 손을 포개어 보니 수달의 그 바빴을 발바닥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농성장에 있다가 산책 겸 강변에 나오면 얼마든지 발자국이며, 사냥 흔적, 배설물을 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활동하는 수달을 직접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종보 수문을 닫으면 수달은 더 이상 이곳에 서식하기 어려워진다. 이대로 세종보가 담수되고 보 철거가 요원해지면 나중에 화석으로 수달을 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수달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으로, 그 말대로 멸종할 위험이 커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기에 지정했다. 환경부는 생물다양성 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전 국토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계획했지만 아직 17%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보호구역은커녕 온갖 개발사업에 습지며, 하천이며, 산림을 내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멸종위기종 보호에 대한 환경부의 대책이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패한 4대강 사업... 토건족 지원에 골몰한 환경부   
 
 세종보 재가동을 위한 공사를 진행중이다
▲ 세종보 공사현장  세종보 재가동을 위한 공사를 진행중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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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은 철저히 실패한 사업이다. 4대강 16개 보가 만들어지고 수년이 지나지 않아 뉴스에는 녹조, 큰빗이끼벌레, 물고기 떼죽음 등 온갖 문제들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괴담으로 치부하며 강을 죽이는 보를 붙들고 자기 권력을 유지했다. 여전히 4대강을 옹호하는 세력은 자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세종보 재가동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재현해내고 싶은 이들은 토목건설 개발세력들이다. 그때와 같이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다며 이제는 댐과 보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한다. 하천 바닥을 준설해 홍수위를 낮추겠다고 다른 부서도 아닌 환경부가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 전국 10곳의 신규 댐 건설과 기존 댐 리모델링을 하겠다며 기본구상과 타당성 조사에 93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물 난리'를 댐 건설과 준설을 통해 통제하고 조정해 보겠다는 발상이다. '게릴라성 극한 폭우' 형태의 여름철 폭우에 대응하겠다며 올해 상반기 중 댐 10개의 기본 구상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 1조 7천억 원가량 이라고 한다. 4대강 정비사업을 할 당시 환경부의 명분이 무엇이었나. 가뭄과 홍수를 잡겠다며 22조 원을 들여 보를 건설하고 강 바닥을 준설하지 않았나. 

4대강사업이 철저히 실패한 정책임을 인정하고 강 재자연화와 보 철거를 확정했던 그 환경부가 여전히 그 문제를 해결한다며 실패했던 예산을 불러내 국가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1조 7천 억 원으로 효과없는 댐과 보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 기후적응을 위한 주거, 에너지 문제를 보완하고 기후위기로 인해 불리한 처지에 놓일 국민들의 삶을 돌보는 데 예산을 쓰는 것이 맞다. 거꾸로 가는 지금 정부의 물 정책을 바로잡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활동가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 농성장을 찾은 강준현 국회의원 활동가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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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종민 국회의원
▲ 농성장을 찾은 김종민 국회의원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종민 국회의원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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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농성장을 찾은 강준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세종을)은 "59년 세종 토박이"임을 강조하며 옛 세종 금강과 합강의 모습을 "가족들과 멱 감던 강"으로 기억했다.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생겨나고 녹조가 발생했을 당시를 "정말 새파란 녹색"으로 기억하며 악취와 소음으로 시민들의 민원이 많았다고, 세종보 담수는 환경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님을 강조했다. 

전날인 4일 농성장을 방문한 김종민 국회의원(새로운미래, 세종갑)도 "강이 흘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라며 환경부가 시민의견 수렴이나 지역사회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세종보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을 매우 우려했다. 두 의원 모두 야당 차원의 대응과 입장표명이 필요하다는 활동가들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다시, 야당의 시간이다

야당의 의지와 행동이 필요한 때다. 정부의 물 정책 방향은 잘못 흘러가고 있고 야당은 이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의 '강의 자연성 회복'과 '보 철거'는 국가가 주도해 오랜 시간의 의견수렴과 금강의 변화상을 모니터링하며 도출한 결과다. 불법적으로 취소된 보 처리방안과 졸렬하게 변경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원상회복하고 자연성 회복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환경부와 윤석열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야당은 정책 일관성이 없는 댐 추가 건설, 하천 준설 일색의 물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정책 보완과 변경이 필요하다면 그에 맞는 근거를 제시하고 과정을 거치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4대강사업뿐 아니라 지금 주요하게 오르내리는 모든 사안들에 필요한 것은 정치정략적 말싸움, 힘 싸움이 아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과정과 절차임은 부정할 이가 없을 것이다.

"해질녘 금모래빛 강변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우리네 모습을 기억한다. 다시 강물이 깨끗이 흐르고 뭇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가도록, 4대강 재자연화에 더 노력하겠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였던 이재명 국회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4대강 재자연화 폐기' 공약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관련기사 : 이재명 "윤석열, 4대강 파괴사업 계승하는가" https://omn.kr/1xekg) 이재명 의원이 언급한 금모래빛 강변은 금강 보 수문 개방 이후 돌아온 모래사장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기도 하다. 

다시 야당의 시간이 돌아왔다. 세종보 철거는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한 심판이고, 4대강 재자연화의 시작이자 교두보다.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의 강 자연성 회복과 보 철거 정책 원상복구는 강과 강에 사는 생명을 위한 정의로운 회복의 과정이 될 것이다. 
 
아이들과 고마나루 모래밭에서 놀던 추억
▲ 금강 공주보 개방 시 돌아온 고마나루 금모래 아이들과 고마나루 모래밭에서 놀던 추억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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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강, #세종보,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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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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