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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육아>
 <그럼에도 육아>
ⓒ 한겨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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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지식들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해야 할까. 유튜브에 육아만 검색해도,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육아를 검색해도 끝을 알 수 없는 지식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몇 개의 영상들을 보며, 몇 권의 책들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는 것이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많이 아는 만큼 실천할 수 있는 힘도 주어진다면 그것은 분명 힘이 될 것이지만,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그것은 아는 만큼의 낙인을 찍어버린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약을 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모르면 답답하긴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육아에 대한 지식적인 콘텐츠들을 많지만 '육아 에세이'라는 장르는 생소하다. 육아를 하는 이들 중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협소한 탓일 것이고, 또한 쓸 수 있다고 한들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절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 인가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근사한 칭호가 열심히 따라붙는 정지우 작가의 <그럼에도 육아>는 이런 맥락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육아'라는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내피를 파헤쳐 보면 결국 한 사람의 인간으로, 아이라는 존재와 함께 하는 시절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성실하게 기록한 내용이다. 

아이를 키울 때 이건 꼭 해야 한다, 이건 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는 이러해야 한다, 아빠는 이러해야 한다. 앞에 이름만 붙이면 그럴싸하게 되는 정지우의 땡땡 육아법, 이런 것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어 가다 보면 꼭 살고 싶어 진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어 진다. 아이라는 존재와 함께 하는 시절이 이토록 아름다움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아이에만 국한되는 사랑이 아닌, 이 제한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무한에 가까운 사랑에 도달하고 그것을 실행하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동력을 제공해 준다.

또한 이 소중한 구간을 통과하며 차마 쓰는 법을 알지 못하여 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나, 쓰는 법을 아나 쓸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 시간의 정거장 하나하나에 멈춰준다. 그리고 바로 출발하지 않고 머물러준다. 읽는 이들은 그곳에 서서 글을 통해 펼쳐진 순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맞아, 그때 나도 그랬지. 그런 일들이 있었지. 나도 꼭 이런 마음이었어.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육아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바치는 작은 시 같다.

몽글몽글 피어난 공감들은 어느새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 다시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진다. '이래도 육아?'를 외치다가도 '그럼에도 육아'를 외치게 만든다. 

저자는 인문학의 달인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려 사랑에 대한 책을 썼으며,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책도 냈다. 그런 그가 '육아'라는, 애정의 최대치가 발휘되는 사건을 맞이했을 때 그 모든 것이 어떻게 화려하게 폭발하는지가 에피소드들과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져 있다.

실제로 그가 쓴 에세이들을 여럿 읽었지만, 이 책에 나온 문장들은 가히 절정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육아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 잘 살고 싶다, 잘 사랑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아쉽게도 현실상 이 책이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 보이는 출산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육아를 하는 이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육아 개론서'가 아닌 '육아 애(愛)세이'가 탄생했다는 사실에 흐뭇한 미소를 아끼지 않고 싶다.

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은이), 한겨레출판(2024)


태그:#그럼에도육아, #정지우,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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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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