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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기자말]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 스틸 컷
 영화 <스틸 앨리스> 스틸 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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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치매

2021년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의 시즌2 중 눈에 띈 장면이 있다. 8화에서 극 중 소아과 의사 안정원(유연석 분)의 어머니 정로사(김해숙 분)는 어느 날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다. 친척의 결혼식에 가는 일정도 잊어버리고, 외출했다가 집에 왔는데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질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던 로사는 결국 낙상 사고가 나서 병원으로 실려 가고 검사를 진행한 뒤 신경외과 의사인 채송화(전미도 분)에게 수두증 진단을 받는다.

쉽게 말해 뇌에 물이 차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병은 결코 간단한 질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하면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기억력이 안 좋아지고 자꾸 실수가 이어지는 동안 자신이 치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로사는 오히려 수두증이라는 말에, 그리고 수술하면 곧 좋아진다는 말에 안도의 깊은 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치매를 걱정한 엄마를 보며 별 걱정을 다했다는 표정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문득 '이 장면을 보고 있을 치매 환자와 보호자는 어떤 느낌일까'라는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큰 병에 걸렸음에도 단지 치매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그리도 안심을 하다니, 그만큼 치매는 인간으로서 걸리면 안 될 것 같은, 지독하고 나쁜 병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는 느낌에 입안이 씁쓸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필자의 친정어머니가 한창 치매를 앓고 있던 시절, '내가 그런 병에 걸리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지인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적도 있다.

영화 <스틸 앨리스>(2015)는 명망있는 언어학 교수 앨리스(줄리안 무어 분)가 어느 날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 명의 자식과 든든한 남편이 있던 화목한 가정, 언제까지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학자로서의 삶이 서서히 무너져 감을 느끼는 앨리스.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어느 날, 멀지 않은 미래의 자신, 즉 병세가 지금보다 훨씬 악화된 치매 환자로서 가족들을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한 미래의 자신에게 영상 편지를 쓰기로 마음 먹고 녹화를 한다. 다름 아닌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내용을 담아서.

드라마 <슬의생>의 로사가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워했던 이유, 그리고 영화 속 앨리스가 치매에 걸렸으니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이유는 모두, '치매'가 환자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병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이나 기존 습관을 잃으며 '나 자신을 잃는' 병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심한 감기에 걸려도 누군가의 간병이 필요하고 평소 자신이 진행하던 일상에 차질을 빚게 된다.

다른 병은 회복이 가능한데 치매는 그렇지 않다고? 질환 중에는 당뇨처럼 완전한 회복보다는 평소의 관리가 더 중요한 질병이 꽤 있다. 그런 다양한 지병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우리는 '병에 걸리면 죽는 게 낫지'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려움만큼 치매에 대해 알고 있는가
 
  영화 <스틸 앨리스> 중
  영화 <스틸 앨리스> 중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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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관한 두려움이 큰 것은 어쩌면 치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는 크게 '가역성 치매'와 '비가역성 치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체 치매의 5~10%에 불과하지만 가역성 치매는 완치가 가능하다. 정상적인 뇌수두증, 뇌종양 및 만성 경막하 혈종, 감염성 질환, 내분비질환, 결핍성 질환, 알코올 중독, 약물, 우울증과 관련된 치매를 들 수 있다.

반면 비가역성 치매는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것으로,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가 대표적이다. 비가역성 치매의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이 퇴행성 뇌질환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인데 그 비율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그 다음은 20~30%의 뇌혈관성 치매가 뒤를 잇는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가장 큰 증상은 기억력 장애다. 그로 인해 지능저하도 급격하게 일어나서 옷 입기, 식사, 세면 등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언어도 불명확해지며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점차적으로 전신이 쇠약해져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뇌혈관성 치매는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나타나는 허혈성 뇌혈관질환과 뇌혈관의 파열로 인해 출혈이 발생하는 출혈설 뇌혈관질환으로 뇌가 위축되면서 나타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억을 못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경증일 경우 가족을 식별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면서 과거의 대화나 사건을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증상만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환자들은 우울감 때문에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여러 외부 사람들과 접촉하며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증세 호전 혹은 유지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반면 뇌혈관성 치매의 특징은 이상 행동이다. 기억력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은 잘 알아보는 편이지만 상황이 맞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오랜 습관을 반복하는 등의 이상 행동을 한다.

필자의 어머니 또한 뇌혈관성 치매를 앓았다. 어머니는 항상 잘 먹던 밥을 뱉거나,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서 주머니에 넣고, 집에서 모든 물건이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결벽증 같은 증상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에게는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핀잔하거나 면박을 주는 것이 증상을 악화시키는 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지금의 상태를 인정해주고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아파도 삶은 계속된다

환자 자신보다 가족이나 돌봄자를 더 힘들게 하는 병이라는 인식이 치매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걸리면 죽어야지'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그리고 실제 치매의 보호자들이 말하는 내용은 좀 다르다.

영화에서 앨리스는 '멍'함을 자주 느낀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혼란스럽다. 집 안의 화장실 위치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서 집안 구석구석의 여러 방문을 열어보고 좌절하다가 결국,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 자꾸 빠지면 환자는 스스로 매우 큰 위기감과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이상한 환자를 보며 가족들만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가장 힘든 것은 환자 당사자일 수 있다.

따라서 치매 환자를 돌볼 때는 환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환자를 가족이 돌볼지 요양기관의 힘을 빌릴지 등 돌봄의 방식을 정할 때도 환자 자신의 의사를 묻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목소리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스코틀랜드의 치매 대책을 소개한 한 일본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우리를 빼고 우리 일을 결정하지 말아요-초기 치매로 살아가기>였다고 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치매 환자를 두고 '어차피 본인은 잘 모르니까'라고 생각하고 의사와 보호자 위주로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데 그것이 환자를 위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막상 자신은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결정에 의해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모든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환자 자신이라는 것을 보호자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의 선호도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치매환자도 매우 많다.
 
  영화 <스틸 앨리스> 중
  영화 <스틸 앨리스> 중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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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그 어떤 결말도 없이 그저 환자로서 생을 이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은 알츠하이머를 겪는 환자나 그 가족이 볼 때 큰 의미가 있다.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자신의 생활에 대해 직접 기록한 책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에서 저자 웬디 미첼은 '치매는 '지금'에 더욱 집중하게 할 뿐 치매로 멈춰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질병에 걸려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병에 걸린 환자가 드라마틱하게 회복되거나 혹은 안타까운 죽음을 택하는, 일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내용에서 벗어나, 질병은 삶에서 도려내거나 그 때문에 삶을 포기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생이 지속되는 한 함께 해야 하는 대상임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결말이 훨씬 현실적일 수 있다.

우리가 '아프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아파도 계속 살아간다. 아픈 이의 삶도 당연히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이어져야 할 가치 있는 인생 중 하나다. 이 세상 모든 환자의 삶도 건강한 사람의 그것만큼이나 의미가 있고 그 지속성이 확보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세상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 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노인, #여성, #스틸앨리스, #영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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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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