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둠속의 대화 전시장 건물 입구
▲ 어둠속의 대화  어둠속의 대화 전시장 건물 입구
ⓒ 고성희

관련사진보기

 
'어둠 속의 대화'. 

이 제목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왜 어둠 속에서 대화하지? 상대방의 얼굴을 모르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서? 누구인지를 모르니 나이를 따질 것도 없고 다시 볼 사이도 아니니 거짓말을 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딸아이와 북촌 여행을 계획했는데 많은 전시 중 유독 이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전혀 프로그램을 전혀 알지 못했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스포일러 당하면 재미없을 테니 후기도 읽지 않았다. 미리 인터파크 전시 예매 사이트에서 티켓을 구매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북촌 한옥마을 숙박의 특별한 여행을 구상 중이었는데 '어둠 속의 대화'라는, 몰라서 더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일정을 집어넣으니 딸도 나도 신이 났다(24.2.28.-지금도 전시 진행 중이다, 전시 사이트: http://www.dialogueinthedark.co.kr/). 

내부로 들어가자 정말 한치의 빛도 보이지 않고 까맸다. 암흑세상이라는 말이 딱 정답이다. 빛 한줄기가 뭐야, 먹물을 눈에 뿌려놓은 듯한 검을 흑의 어둠이었다.

이윽고 우리 손에는 지팡이가 놓였다. 산악용은 아닌 시각장애인이 들고 다니는 막대 말이다. 그렇게 10명 정도의 일행이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바닥은 지팡이로 툭툭 두들겨가며 마치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신중을 기하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우리의 생명줄 안내자 선생님이 방향을 알려주었다. 로드 마스터! 중여서 '로마'님이라고 부르기로 우리는 약속했다. 

"앞으로 세 걸음 가시면 기둥이 잡힐 거예요. 거기서 잠시 멈춰서 기다려 주세요. 다른 분들 도와드리고 오겠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세세하게 길을 안내해 주셨다. 

당연히 드는 생각은 '이 어두운 곳에서 어쩜 잘 보일 수가 있지? 특수안경을 썼나 보다!' 남자분이셨는데 시각이 닫히니 청각이 곤두서서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됐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분명 멋지신 선생님이실 거야!' 이런 쓸데없는 생각 반, 보이지 않는 길에 반 집중하며 걷기 시작했다. 
 
어둠속의 대화 건물 전면
 어둠속의 대화 건물 전면
ⓒ 고성희

관련사진보기

  
중간중간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어느 방에 가서는 앞마당이 있는 할머니 댁에 간 것처럼 대청마루에 앉아서 어릴 적 추억을 각자 꺼내놨다. 여정 중에 계곡에 당도하여 놀이기구인지 진짜 배인지 모를 것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이동했다. 물도 첨벙 튀고 배가 흔들거리니 머릿속에서는 어디 유명한 협곡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앞이 보이지 않으니 감흥이 막 살아나진 않았다. 

마지막 코너는 당연히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이름을 맞추는 코너였다. 진짜 신기한 것은 참석자 전원이 틀렸다는 것이다. 콜라 맛이라고 했지만, 사이다였고 오렌지 주스라고 확신했는데 생뚱맞게 매실 맛 음료였다. 절대 미각이라고 자부했는데. 

그리고 내심 기대하고 바라던 질문의 시간이 이어졌다. 

단연 첫 번째 질문은 어떻게 로마님은 다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로마님은 바로 시각장애인이셨다. 그 사실을 알고 입이 쩍 벌어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벌어진 턱을 겨우 위로 올렸다. 그동안 혹시 실수로 잘못 말한 거 없나? 정말 상상도 못한 반전이었다. 

로마님과 같은 시각장애인 분들은 세상이 커다란 암흑 속의 미로라고 느껴지지는 않을까? 이 무지한 선입견을 품은 내가 감히 그분의 마음을 알기나 알까. 2시간, 처음에는 공포로 시작되었던 어둠이 가이드님 덕에 차차 괜찮아지긴 했지만 절대 그 이상은 이어갈 수 없을 만큼 불편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옆 사람과 부딪혔으며 무엇보다 너무 갑갑했다. 눈이 900냥이라는 말에 백번 공감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다행인 건 가이드의 목소리는 내 것보다 밝고 경쾌했다는 것. 이마저도 얼마나 못난 우월감과 연민일까. 우린 그들보다 볼 수 있는 능력 한 가지 더 가졌을 뿐이지 더 잘나지도 않았다. 

아니 더 못났을 수도 있다. 앞이 안 보이니 얼마나 불편할까, 보고 싶은 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 안 됐다, 이따위 불필요한 동정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린 모두 다 불편한 점 한 가지 이상은 지니고 다니지 않는가? 

우선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돌아서면 바로 까먹는 불편한 기억력이 있다. 눈 뜨고는 못 볼 온갖 것들을 보고 겪어서 공황장애, 불안장애, 강박증까지 줄줄이 매달고 다닌다. 거기에 그 장애를 없애려 운동, 수면, 음식 등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생겨 하루하루 고단한 매일을 질질 끌고 다닌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장애 아닌 것이 있을까. 두 눈 멀쩡히, 건강한 두 다리로 걷고는 있지만 언제든 사회가 정해놓은 장애인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살아야 할 것이다. 가이드님이 시각장애인이라고 밝혔을 때 경악의 수준까지 놀란 나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얼마나 뿌리 깊이 박힌 선입견과 편견이 눈을 가리고 있었나 싶어서다.

아, 그럴 수도 있지. 그렇구나, 그래서 어둠 속에서 더 잘 보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이가 세상에 많아지길 바란다. 

태그:#장애인의날, #시각장애인, #어둠속의대화, #북촌한옥마을, #차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활속의 소소한 일을 기록해놨다가 꽃처럼 펼쳐보이고 싶은 그런 여자의 이야기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