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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보니 우편함에 우편물이 꽂혀있었다. 수신인은 고3 아들이었다. 지난번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고 아들한테 온 우편물을 아무 생각 없이 뜯어봤다. 그랬더니 아들이 자신의 우편물을 마음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 내 눈에는 아직 내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 같은데, 주민등록증 만들 나이가 됐으니 존중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밤 열한 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다. 아들이 올 때까지 봉투만 쳐다보며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왜냐면 발신지가 다른 곳도 아니고, '○○경찰서'였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아들한테 왜 우편물을 보냈지?"

걱정이 앞서 아들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들이 이번 일은 이해해 줄 거라고 믿고,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두 장의 문서가 들어있었다. 제목은 '수사결과 통지서(고소인 등, 송치 등)'라 적혀있다. 죄명은 사기, 결정종류는 송치, 사기와 송치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접수일시가 3월 말이니 얼마 안 된 일이다. 아래쪽으로 범죄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에 대한 안내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사기, 송치, 범죄피해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주요 내용은 '별지와 같음'이라 적혀있는 걸 보고 뒷장을 살펴봤다. 뒷장에는 아들이 사기로 신고한 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사기죄가 성립되어 그 사람을 송치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경찰서에서 아들에게 보낸 우편물
 경찰서에서 아들에게 보낸 우편물
ⓒ 윤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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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들이 사기죄라는 얘기는 아니니 안심을 했다.

'그렇다면, 아들이 누군가를 사기죄로 고소했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나한테는 아무 말이 없었을까? 혼날까 봐 그랬을까?'

궁금한 걸 겨우 참으며 아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아들, 경찰서에서 우편물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니?"
"아, 이거 제가 인터넷 장터에서 에어팟을 샀는데, 뭔가 분위기가 싸해서 바로 신고한 거예요."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돈 보내고 났더니 사이트가 차단되고 이상해서 신고했어요. 신고하고 나서 돈을 바로 돌려받았고... 그래서 말씀 안 드렸어요."

"얼마에 샀는데?"
"22만 원요. 그런데 바로 돌려받았어요."

"돈은 어떻게 받았어?"
"사기당한 사람들 단톡방이 생겨서 들어갔거든요. 거기에 판매자도 들어와 있었는데 미성년자 같더라고요. 부모님이 변제 못해준다고 했다면서 사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 필요 없으니 고소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낸 돈에 피해보상금 추가해서 더 받아야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저는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낸 돈만 돌려받겠다고 했더니 바로 돈을 돌려줬어요."

"다행이다. 그런데 넌 22만 원이 어디서 났니?"
"용돈 모은 거죠. 돈 모으기 힘드니까 조금이라도 싼 거 사려고 한 거고요."
"밥도 잘 안 먹고 다니더니 그거 사려고 그랬어? 애써 모은 돈 다 날릴 뻔했잖아. 웬만하면 중고 거래 하지 마. 특히 너무 싸게 파는 물건은 사지 마."

"네."
"이번 일은 잘 해결했어. 다음부터는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도 말해줘."


중고거래 하다가 사기 당했다면 이렇게 

몇 해 전, 아들이 중학생 때 중고 장터 판매자를 직접 만나 피규어(figure)를 사가지고 온 적이 있다. 아들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만났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아이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부터 중고 거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이번 일을 내게 말하지 않은 건, 아마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중고거래를 하다가 발생한 일이라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중고 거래 사기에 관한 뉴스를 가끔 접하곤 한다. 중고 거래 사기는 아들이 당한 것처럼 돈만 받고 물건은 안 보내는 수법 외에도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수법들이 생겨나고 있기에, 나는 중고 거래를 선호하지 않는다.

차라리 안전한 플랫폼에서 가격비교를 해 새 상품을 구입하고, 팔아도 괜찮을 것 같은 물건이 있어도 팔기보다는 주변 지인들과 나눔을 하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인 막내딸도 자신이 샀다가 필요 없어진 물건이 있으면 친구의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거나, 몇 백 원이라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중고 거래가 자연스러운 일이 돼버린 거다.

사실 중고 거래의 취지 자체는 매우 좋다. 내게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꼭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니 경제적이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좋은 취지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중고거래는 불안하니 하지 말라고만 하기보다는 중고 거래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중고거래 시, 상대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미리 알 수 있을까? 내가 조사해 본 중고 거래 사기 예방법으로는 직거래 위주로 거래하기(고가의 물건이라면 경찰청 앞이 가장 좋은 장소), 판매자의 활동 내역 및 정보 확인하기, 지나치게 싸게 파는 경우는 피하기, 안전거래 링크 보내는 경우 피하기(가짜 사이트로 연결됨), 더치트(사기정보 공유 웹사이트)에 조회해 보기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날로 진화하는 사기 수법에 비해 턱없이 나약해 보인다. 아들 말하길, 아들이 당할 뻔한 사기 사건의 피해자 또한 아들 외에도 수십 명이 더 있다고 한다. 그들도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당했을 것이다.

아들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직후에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 바로가기)'에 온라인으로 신고를 했다. 이 사이트는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로, 피해자 본인만이 신고가 가능하다. 가족 등 대리인이 신고할 경우에는 경찰청에 직접 방문하거나 '국민신문고' 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또,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운영하는 '온라인피해 365 센터'가 있으며, 이 사이트에서는 온라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피해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홈페이지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홈페이지
ⓒ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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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통해 아이도, 나도 많이 배웠다. 살면서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어린아이 같기만 하던 아들. 아들이 자기 문제를 혼자서도 해결할 능력이 있음을 믿고 앞으론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기로 했다. 다음엔 아들의 우편물을 먼저 뜯어보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중고거래, #중고거래사기, #중고거래사기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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