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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적극적인 학습은 독서이다. 가장 좋은 진로 교육은 책을 찾아 읽도록 돕는 것이다."

기회 있을 때면 입버릇처럼 말을 하니, 어떤 이가 '선생님, 인생 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었거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이끈 책을 이르는 것일 텐데, 내게는 따로 인생 책으로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유일한 책을 말하려니 딱히 무엇인지 모르겠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데 도움받고 감동을 얻은 책을 말하려니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학생 시절에 읽었던 고전이 문학에 관심을 두게 했을 것이고, 홍명희나 신채호를 읽으면서 민족 성정이나 역사에 눈길을 줬을 것입니다. 벚꽃길을 함께 걷기엔 오인태의 시(詩) <화개리 벚꽃> 만한 벗이 없고, 그저 현실에 묻혀 산다고 여길 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펼칩니다. 신영복, 리영희 선생의 책이 부지런히 살라고 꾸짖었으나 자주자주 흔들려서 굽이마다 책을 읽어 빈 곳을 메우고 겸손해지려 애썼습니다. 여행을 준비할 땐 <열하일기>나 <여행의 기술>을 떠올립니다. 스페인 론다(Ronda)의 절벽 길을 걸을 땐 헤밍웨이가 제격이었지요. 그래도 아둔함은 넘치고 뽐내는 마음이 없지 않아 쥐구멍을 찾습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합니다. 김만권의 <외로움의 습격>을 읽은 어미는 방안에 은둔하는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학교에 찾아온 졸업생은 동아리에서 함께 읽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란 책이 정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권용선의 <읽는다는 것>을 읽은 학생이 '읽는다'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 하고, 고병권의 책을 읽은 이가 철학에 눈뜨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인생 책이 어디 한 권뿐이겠습니까?

독서의 필요성을 말할 때 인용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관찰의 이론 적재성'이 그것인데,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것은 사전 경험을 통해서 얻은 정보로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물을 보고 처음 본 것이라거나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오로지 관찰자의 경험 내에서 처음 본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란 얘기지요.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나의 경험 속에서만 '알' 뿐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은 모른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래전에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에 머물러 있다면 '무식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열심히 읽어도 쏟아지는 정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꾸 읽고 생각하다 보면 나름의 통찰력을 갖게 되어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챗 지피티(CHAT GPT)는 질문이나 명령에 대응하여 텍스트를 생성한다고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언어의 패턴, 지식 문화적 맥락까지 학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AI에만 특화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늘 하던 일입니다. 지식인들이 데이터를 얻는 기본적인 방법은 독서입니다. 독서를 통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뒤 질문을 만들고 실험하고 검증하여 하나의 논문이나 책으로 내어놓는 것이지요. CHAT GPT에서 얻는 정보의 수준은 질문의 수준이 결정한다고 합니다. 결국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대답을 얻게 될 것인데, 그 좋은 질문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독서입니다. 학교가 독서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입니까?

덧붙이는 글 | 경남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독서, #질문,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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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책을 읽는 일을 버릇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돕도록 애써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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