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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분청사기 인화문 태항아리.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자녀의 탯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1970년 고려대학교 구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국보 분청사기 인화문 태항아리.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자녀의 탯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1970년 고려대학교 구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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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락진 멋과 싱싱한 아름다움을 네가 알아본다면 좋고 모른다면 그만이지..."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천부적인 안목과 혜안을 가졌던 미술사학자이면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고(故)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1984) 선생은 그의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하고 수수한 멋을 이렇게 설파했다.

혜곡 최순우 선생뿐만 아니다. 20세기 영국의 저명한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 1887~1979)는 "분청사기는 속물적 근성이 없는 자연스러움의 극치"라며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분청사기가 이미 제시했고, 그것을 목표로 해서 나아가야 한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약 150년이라는 짧은 역사. 잠시 잠깐 반짝 빛났다가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진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시공을 가로지르며 다시 태어나 현대 미술에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시대와 지역과 장르를 초월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고 있는 분청사기는 어떤 도자기일까.
  
국보 분청사기 박지 철채모란문 자라병. 병모양이 자라를 닮았다. 조선 세조~성종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분청사기 박지 철채모란문 자라병. 병모양이 자라를 닮았다. 조선 세조~성종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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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도 백자도 아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구한 역사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한 나라가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격동의 시기에는 늘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았다. 우리 역사도 그러했다. 7세기 말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며 통일전쟁을 하던 시기가 그러했고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등장할 때도 그랬다.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기는 더했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470여 년을 이어오던 고려 왕국이 멸하고 유교의 나라 조선이 건국되던 과도기.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여말선초'라 부르는 이 시기는 우리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대변혁이 예고되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문화강국 '고려(KOREA)'라는 나라를 세계에 알리며 오늘날 K-컬처의 원조가 된 '고려청자'도 이 격동의 시기를 비켜 갈 수 없었다. 무능한 군주와 문벌귀족들의 부패로 고려 왕조가 쇠망하고 새로운 나라 조선이 들어서면서 사회는 큰 혼란를 겪는다. 이 와중에 고려의 하이테크 산업이었던 청자 산업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비색의 청자를 굽던 바닷가 '관요'는 왜구들의 침략과 약탈로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지게 된다. 도공들은 제 살 길을 찾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개인 '사요'를 차린다. 정권이 바뀌든 말든 도공들은 늘 하던 대로 도자기를 구웠으나 예전과 같은 영롱한 비취색의 청자가 나오지 않았다.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흙과 물과 땔나무가 바뀌었고 관청에서 엄격히 통제하던 품질관리 방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도공들은 청자를 빚을 때 조금씩 사용하던 하얀 흙으로 도자기 표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자기의 탄생은 이렇게 회색의 태토 위에 백토를 바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말 그대로 '분으로 장식한 청자'는 고향을 떠나온 도공들의 고뇌가 담겨있는 그릇이었다.
  
국보 분청사기 박지 연화어문 편병. 분청사기 장식기법 중에서 ‘박지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15세기 조선시대.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 분청사기 박지 연화어문 편병. 분청사기 장식기법 중에서 ‘박지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15세기 조선시대. 호림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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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는 변변한 이름조차 없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그저 '미시마데(三島手)'라고 불렸다. 그러던 것을 '한국 미술사학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이 '회청색 표면을 백토로 분장했다'하여 '분장회청사기'라 명명했으며 이후 약칭으로 '분청사기' 또는 '분청자'라는 고유한 우리 이름을 갖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 사이, 시대를 넘고 색을 넘어 탄생한 분청사기는 자유분방하고 변화무쌍하게 진화 발전을 거듭하며 15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약 150년간 유행한다.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 전국으로 흩어진 도공들이 그들만의 가마에서 지역 특색에 맞는 독자적이고 다양한 분청사기를 생산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청자의 장식 기법을 그대로 물려받아 분청사기의 표면을 '상감(象嵌)'과 '인화문(印花紋)'으로 장식했다. 상감기법은 원하는 무늬와 형태로 태토를 파내고 그 자리에 다른 색의 흙을 채우고 유약을 바른 다음 가마에서 구워내는 방식이다. 인화문은 표면에 백토를 묽게 바른 다음 꽃이나 나비 등이 새겨진 도장으로 일정한 문양을 찍은 다음 그 홈을 백토로 채워 넣는 기법이다.
    
보물 분청사기 철화어문 항아리. 철화분청사기를 만들던 대표적인 지역인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요지에서 15세기 중엽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분청사기 철화어문 항아리. 철화분청사기를 만들던 대표적인 지역인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요지에서 15세기 중엽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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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년대 이후부터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이 나타난다. 조화와 박지기법이다. '조화(彫花)'는 백토를 바른 다음 원하는 부분을 파내서 문양을 '선'의 형태로 나타낸다. 반면 '박지(剝地)'는 그와 반대로 원하는 문양을 남겨 두고 나머지 부분을 긁어내는 기법으로 원하는 문양이 '볼록'하게 나오도록 하는 방식이다. 요즘에도 많이 사용하는 '음각과 양각' 기법이다.

충청도 계룡산 일대의 가마에서는 도자기 표면에 백토를 곱게 바른 다음 자연철을 갈아 만든 안료를 사용하여 원하는 문양이나 그림을 자유 분방하게 그린 '철화기법'의 분청사기를 주로 만들었다.

16세기 초 조선 사대부들이 좋아하는 백자가 유행하면서 분청사기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 '귀얄'과 '덤벙기법'이 나온다. 귀얄기법은 거친 붓으로 백토물을 바르고 도자기 표면에 붓자국을 그대로 남겨두는 방식이며 덤벙기법은 말 그대로 백토물에 '덤벙' 담갔다가 건져내는 이름마저 재미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분청사기의 장식기법은 일곱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으며 각각의 기법은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밑 빠진 항아리가 국보
 
국보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항아리. ‘상감기법’과 ‘인화문’이 발전했던 세종~세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박물관 소장
 국보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항아리. ‘상감기법’과 ‘인화문’이 발전했던 세종~세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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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 달리 '시기와 지역과 장식 기법'에 따라 뚜렷한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 분청사기는 현재 5점이 국보로, 10여 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그만큼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이라는 반증이다. 그중 국보로 지정된 두 점의 분청사기를 감상해 보자.

아무리 애써봐야 소용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한다. 물을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독. 세상에 그런 항아리가 있을까 싶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실제로 그런 항아리가 있다. 1991년에 국보로 지정된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가 그 주인공이다.

15세기 전반에 고려청자의 기법을 이어받아 상감과 인화기법으로 만들어진 초기 분청사기의 전형적 모습이다. 높이 49.7cm, 아가리 지름 15cm, 밑 지름 21.2cm로 기벽이 두껍고 묵직하다. 아가리가 밖으로 말리고 어깨에서 완만한 곡선으로 서서히 좁아지게 내려오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밑바닥이 없는 국보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처음부터 밑바닥이 없었는지, 나중에 없어졌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밑바닥이 없는 국보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처음부터 밑바닥이 없었는지, 나중에 없어졌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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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쪽에는 꽃무늬 모양으로 굵은 선을 둘러 구획을 나누어 도장을 찍 듯 반복해서 국화 무늬를 빽빽하게 새겼으며 심지어 잘 보이지 않는 주둥이 안쪽까지 문양을 넣었다.

몸통은 덩굴무늬 띠를 둘러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었고 위쪽은 다시 굵은 선을 경계로 국화문과 파도문을 여백 없이 꽉 채워 넣었다. 하이라이트 부분인 가운데는 흑백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으로 여의주를 쫓아 구름 사이를 날고 있는 두 마리의 '용과 구름'을 대칭으로 뛰어나게 표현했다. 도자기의 이름 '상감 운룡문'은 이 문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밑바닥이 뻥 뚫려있는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밑바닥이 뻥 뚫려있는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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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용 밑에 다시 덩굴무늬를 두르고 그 밑에 네모난 모양의 연꽃무늬를 촘촘하게 새겨 넣었다. 조선 전기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도자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뻥 뚫려 있는 밑바닥이다.

처음 만들 때부터 바닥이 없었을까? 그렇다면 무슨 용도로 사용한 것일까? 처음엔 바닥이 있었지만 나중에 뚫린 걸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지금까지 연구 결과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하니 마음껏 상상하시라. 상상은 자유다.

이게 정말 600년 전에 만든 거라니
 
국보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15세기 중반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조화기법’으로 앞 뒷면에 각각 물고기 두 마리를 새긴 편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15세기 중반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조화기법’으로 앞 뒷면에 각각 물고기 두 마리를 새긴 편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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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물에서 건져 올려진 물고기 두 마리가 지느러미를 활짝 펼치고 하늘 향해 퍼득거리고 있다. 입을 벌린 채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듯 하지만 표정은 그리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해학적이다. 그저 특징만을 잡아 재빠르게 획획 그린 한 컷의 만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아무리 봐도 60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된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이다. 앞에서 살펴봤던 15세기 중반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조화기법'으로 앞 뒷면에 각각 물고기 두 마리를 새긴 편병이다. 편병이란 병의 앞뒤가 둥글 납작하고 목이 짧은 병을 말한다.

몸체의 양쪽면을 두드려 편평하게 만든 다음 백토로 분장한 후에 조화기법으로 물고기를 간략하게 표현했다. 측면은 3등분하여 모란문양과 파초문양을 박지기법과 조화기법으로 새긴 다음 담청색 유약을 발랐다. 도자기를 만든 도공의 익살스러운 미감이 돋보인다.
  
측면은 3등분하여 모란문양과 파초문양을 박지기법과 조화기법으로 새긴 다음 담청색 유약을 발랐다
 측면은 3등분하여 모란문양과 파초문양을 박지기법과 조화기법으로 새긴 다음 담청색 유약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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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 후반에 전라도 고창의 용산리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높이 22.6cm 입지름 4.5cm 밑지름 8.7cm로 휴대하기 알맞은 사이즈다. 술이나 물을 담아 야외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개인의 소장품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위탁관리하고 있으며 분청사기실에 전시되어 있다.

고려의 하늘을 닮은 오묘한 푸른색 청자와 티끌 하나 없이 하얗고 고결한 조선 선비를 닮은 백자 사이의 돌연변이. 정형에서 벗어나 파격적 아름다움을 지닌 분청사기는 투박하지만 자유분방하고 변화무쌍한 역동성으로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 141호(2024년 3,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분청사기, #국보분청사기상감운룡문항아리, #국보음각어문편병, #청자와백자사이, #분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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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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