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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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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한 저널리즘 위기 시대다.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한 방송사에게 법정제재라는 철퇴를 내리고, 김건희 여사라고 부르지 않은 방송사에 대해서도 행정제재를 가하는 시대. 대통령 풍자 영상에 대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긴급히 차단을 하는 시대. 보도전문채널이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오너기업에 팔려나가는 시대.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를 언급할 때, 언론사이건 일반 시민이건 정부기관의 칼날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윤석열 정부는 정작 정부를 비판할 자유에 대해선 정부기관의 위력을 동원해 철저하게 통제하려 하고 있다. 그들에게 '자유주의'란 권력을 남용할 자유를 말하는 걸까. 이들의 '가짜 자유주의'는 저널리즘의 위기를 낳고 있다. 언론단체와 시민단체들도 하나 같이 '위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윤석열 정부 저널리즘 위기에 입다문 언론학자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학자들은 이를 침묵으로 방조하고 있다. 일련의 저널리즘 위기 사태에 대해 3대 언론학회 중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를 제외한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는 지금까지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미디어 취재기자 입장에서 보면, 정부기관의 행태에 대해 상식적인 목소리를 낼 언론학자도 찾기 어렵다. 기자가 접촉했던 몇몇 학자들은 입장 표명을 완곡히 거절했고, 일부 교수는 아예 전화를 '수신차단'해 버리기도 했다. 

다수 언론학자들의 이같은 침묵적 방조는 지난 26일 명확한 실체를 드러냈다. 이날 한국언론정보학회는 YTN 매각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졸속 심의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재적위원 중 과반이 공석인 가운데 YTN 매각을 의결했고, 심사위원회가 아닌 자문위원회를 꾸려 서류를 검토한 점 등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상식적' 성격의 성명이었다(관련기사: "YTN 매각 승인 취소하라"... 3대 언론학회 중 첫 비판성명 https://omn.kr/27ko5). 

이 성명이 발표될 당시에는 '한국방송학회 언론법제연구회'도 같이 이름을 올렸지만, 몇시간 뒤 이 이름은 삭제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학회 연구회 회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구회 소속 몇몇 교수들에게 문의한 결과, '내부 동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이런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학자들이 언론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린단 얘기는 심심찮게 전해들었지만, 이번 성명서 해프닝은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론노조와 YTN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YTN 매각 승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YTN 매각 승인 규탄! 언론노조와 YTN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YTN 매각 승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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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던 기대는 이내 깊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는 그동안 언론 현안에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특히 KBS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 YTN 졸속매각 등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하고 언론과 방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도 토론회 한두 번 여는 정도로 소극적 대응을 해왔다. 토론회에서 관련된 학회 입장을 묻는 질문에 "(토론회를 여는 게) 학회 입장"이라는 이준웅 전 언론학회장의 당당한 말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언론정보학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사태와 관련 토론회를 하려 했을 때, 토론회에 나설 교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학자들의 말은 무거워야 한다. 여러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특정 정치 세력 입장을 대변하면서 가볍게 입을 놀리는 것은 정치 평론가의 영역이지, 학자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언론과 저널리즘을 둘러싼 상황은 과거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언론학자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부르짖어왔던 공영방송의 가치는 형해화되고 있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한 '저널리즘'은 정부가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권력의 칼날 앞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에 대한 두려움... 침묵하는 언론학자들 
 
27일 오전 서울경찰청앞에서 언론노조, 블랙리스트 이후, 정보공개센터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대통령 풍자에 압수수색 위협하는 경찰을 규탄한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통령 풍자도 처벌하나" 27일 오전 서울경찰청앞에서 언론노조, 블랙리스트 이후, 정보공개센터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대통령 풍자에 압수수색 위협하는 경찰을 규탄한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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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학회가 정부를 직접 비판하는 일은 어려워도, 학계의 우려 표명 정도는 충분히 중지를 모을 수 있다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학회를 비롯, 다수 언론학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무얼까. 

소신파로 분류되는 일부 언론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언론학자들의 집단적 침묵은 '정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심사 수사와 관련해 언론학자들이 압수수색 등 수사를 받는 것을 목도하면서, 다수 학자들이 위축됐다는 분석이었다. 정부 연구용역 수주의 불이익 등 경제적인 불이익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을 거라고 본 학자도 있었다. 

한 언론학 전공 교수는 "지금 입장을 내는 것이 정치적인 성향을 띠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또다른 교수도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학자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것에 현실"이라고 했다. 

정부 연구용역 불이익과 압수수색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않는 언론학자들에게 더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앞서 언급한 두 학회에 대해서도 더이상 저널리즘 위기와 관련한 '입장'을 기대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언론학자라 자칭하는 그들에겐 '저널리즘'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어떤 것이 있을 뿐이다. 

침묵하는 언론학자들에게 한 가지는 요청하고 싶다. 언론학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본인이 담당하는 과목에서 '저널리즘'이라는 단어는 빼길 권한다. '저널리즘'은 그리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상식적인 목소리라도 내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이다.

일련의 상황에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학자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논할 자격은 없다. 적어도 저널리즘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과 같은 당신들의 태도를 가르치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태그:#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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