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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옛시조에서처럼 '산천은 의구(依舊)'한 것인데 10년은 그런 산천도 변할 만큼 긴 시간이란 뜻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10년, 돌아보면 그간 나도 (혹은 우리도) 변했고 또한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그날의 충격, 아픔, 슬픔, 절망, 분노,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은 희미해져 가고 여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도 무관심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지 않은가.
  
"진실을 인양하라"
 4.16합창단의 사람들의 요람 앞에서
 "진실을 인양하라" 4.16합창단의 사람들의 요람 앞에서
ⓒ 4.16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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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아직은 어스름 아침인 6시경 부산 서면 로터리로는 나이가 지긋한 '사나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대기해 있던 안산행 전세 버스에 올랐다. 버스의 이마엔 '박종철합창단'이라 쓴 전광판이 번쩍였다.

이들을 태운 버스가 5시간을 넘어 달려 먼저 도착한 곳은 (사)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협의회의 거점이자 '4.16 합창단'의 요람인 연습실(대강당) 앞마당. 안산 4.16합창단의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부산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을 맞았다.

이날의 만남이 어떤 연유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부터 되돌아보자. 

박종철합창단과 4.16합창단이 만난 이유

그 시원은 올해로 8년째를 맞는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아래 축전)의 탄생이다. 2017년 부산 박종철 합창단의 몇몇 단원이 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게 제안하여 서울서 첫발을 뗀 축전은 그후 부산, 광주, 인천, 울산 등지를 돌며 매년 개최되었고 세월호 참사 10년째를 맞은 올해는 그 장소가 안산으로 정해졌다.  

두 번째로는 올해 축전 조직위원회가 전국의 12개 참가 합창단 중에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두 합창단을 하나로 묶어 연합합창을 한 곡씩 하기로 결정한 것을 꼽아야 한다(이를테면 대구 평화합창단은 울산 더울림합창단과, 광주전남 1987합창단은 전주 녹두꽃시민합창단과 연합하는 식인데 연합합창 시도는 올해가 처음이다).

세 번째로, 경기 안산의 4.16합창단이 안산에서는 매우 먼 지역인 부산의 박종철합창단에게 함께 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다.

박종철합창단의 사람들은 잠시나마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4.16합창단이 유독 그들을 파트너로 삼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맙고 뜻깊은 제안이었지만 한편으로 스스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4.16합창단의 사람들의 사랑을, 그 부름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우리는 4.16합창단의 사람들과 생각만 해도 눈물이 솟는 세월호 아이들 노래를 끝까지 제대로 불러낼 수 있을까?' 

그러나 박종철합창단의 사람들이 4월 14일 (안산에서 열리는 축전의 날)이 오기 전에 한 번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안산으로, 4.16합창단 사람들에게 달려가 자정 가까운 시각에 부산으로 돌아오는 하루 풀코스 여로를 결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안산행의 첫 번째 목적은 연합합창곡 <너>(이남실 작사, 이범준 작곡)를 함께 사전 연습해 보는 것이었지만 그 이상의 목적 아닌 목적이 박종철합창단의 사람들에겐 있었다. 
 
4.16합창단 대강당 연습실에서 두 합창단이 노래 연습을 위해 모였다.
▲ 우리는 함께 "너"를 기억하고 "너"를 노래한다 4.16합창단 대강당 연습실에서 두 합창단이 노래 연습을 위해 모였다.
ⓒ 4.16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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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합창단의 사람들 앞에서 (딸의 편지)를 부르는 박종철 합창단
 4.16 합창단의 사람들 앞에서 (딸의 편지)를 부르는 박종철 합창단
ⓒ 4.16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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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던 날 처음 잡던 손 목소리를 알아듣던 너
세 살 적 기차창에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던 너 (……)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날마다 고마웠어 매 순간 사랑했어
날마다 고마웠어 매 순간 사랑했어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이 4.16합창단의 사람들을 디귿 자로 둘러싼 가운데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엄마‧아빠'들은 수천수만 번도 더 불렀을 "날마다 고마웠어 매순간 사랑했어"를 멀리서 달려온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 속에서 함께 불렀고, 함께 목이 메었고, 함께 울음을 삼켰고, 어쩔 수도 없이 함께 울었다, 소리죽여.

눈물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우는가.
'4.16의 사람들'은 왜 노래하며 '박종철의 사람들'은 왜 노래하는가.


이 같은 물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면 그날 <너> 연습(이민환 박종철합창단 지휘자 지휘)이 끝난 후 박미리 4.16 합창단 지휘자의 준비된 제안으로 진행된, 두 합창단 사이에 오간 노래 두 곡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의 뜰 송이송이 노란리본의 나무 아래 서고 싶어요
저 노란 리본의 정원 거닐고 싶어요
엄마, 빛의 젖꼭지를 주세요 엄마
평화의 눈을 주세요 엄마, 천국의 뺨을 주세요
엄마, 나를 꼭 껴안아주세요, 저 배의 날개 일어설 때까지
 
박미리 지휘자가 청한, 박종철 합창단이 4월 14일 축전에서 처음 선보일 창작곡 <딸의 편지>(강은교 시, 이민환 곡)의 마지막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도 채 안 된 시점에 쓰인 무섭도록 처연한 시에 붙인, 눈물 없이는 부르기도 듣기도 힘든 선율의 이 노래에 대한 화답으로 4.16 합창단의 사람들은 정겹고도 힘차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동백섬>(김종경 시, 최영철 곡)을 박종철합창단의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4.16합창단 최순화 단장(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왼쪽)과 박종철 합창단 윤지형 단장
▲ 웃음 꽃이 피다  4.16합창단 최순화 단장(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왼쪽)과 박종철 합창단 윤지형 단장
ⓒ 박종철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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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 해 겨울바다 끝난 곳에서
외로이 앉아 고개를 젖히고
그저 노래만 불렀다

어찌 노래만 불렀으랴. 죽음과도 같은 절망과 견딜 수 없는 모멸과 끝날 줄 모르는 고난의 시간이 있었고 슬픔과 눈물이 있었고 결코 손 놓을 수 없는,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기억투쟁의 펄럭이는 깃발이 단 하루도 내려져 본 적이 없지 않았던가.

4.16합창단 노래 연습실 대강강에서의 만남이 끝나고 이어진 '기억공간'―4.16 기억교실(단원고 2학년 희생 학생들이 썼던 책걸상과 유품이 고스란히 보존된 교실들), 단원고 고래 조형물, 기억저장소, 학생들이 학교를 오갔던 '생명의 길'―을 탐방하는 동안 박종철합창단의 사람들 마음속으로 오갔을 수많은 생각과 느낌과 눈물과 어떤 깨달음에 더해서 4.16 합창단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푸짐한 점심에서부터 유리컵과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책 선물에, 돌아가는 길에 먹을 맛난 떡 등)는 접어두기로 한다. 그 얘기만도 몇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기에.

지난 2월 6일 안산의 축전 준비팀이 영상 촬영차 박종철창단을 방문했을 때 박종철의 사람들이 준비해둔 긴 펼침막의 문구는 이러했다.  

'우리는 노래로 기억하고, 다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2학년 2반 기억의 교실에서 별이 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
 2학년 2반 기억의 교실에서 별이 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
ⓒ 4.16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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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를 맞는 4.16의 사람들의 몇 갈래 심경 속에는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10년이면 되었다, 이제는 좀 잊어가도 되지 않느냐'... 그렇기도 하다. 잊을 건 잊어야 산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망각은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다는 것도 엄연한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마땅한 기억투쟁을 폄훼하고 공격하며 4.16세월호를 기억에서 지우려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무력하게 침묵한다면 우리는 무엇일까?  

4.16합창단의 사람들에게 눈물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다시 눈물이 되고 투쟁이 되고 삶이 되고 사랑이 되고 희망도 되어갔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 아픈 진실을 10년에 이르도록 우리는 목격해 왔다.

어두운 밤길을 달리고 또 달리는 부산행 전세버스 안에서 박종철합창단의 사람들의 누구는 말없이 생각에 잠기고, 누구는 눈을 붙이고, 누구는 노래도 불렀다. 안산행 하루 여로가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같이 심어준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세월호 10주기는 앞으로 기억투쟁의 길을 새롭게 열어갈 출발점이라는 남모를 다짐이 아니었을까?  

세월호 10주기, 다시 시작해야 하는 10년, 20년, 100년, 200년. 나는 눈물의 힘을 믿는다. 눈물은 기억투쟁의 양식이며 새로운 삶과 새로운 희망을 열 빛나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태그:#416참사10주기, #416합창단, #박종철합창단, #전국민주합창축전, #안산기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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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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