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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낮부터 내리던 비가 깊은 밤에도 그칠 줄을 모른다. 최근 들어 비나 눈이 오면 며칠씩 계속 내리는 날이 잦아 음습하다. 자발적인 침묵 속에 지내다 보면 우두둑 차양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적막한 것보다 나을 때도 있긴 하다.

하루 정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2~3일 넘게 계속되면 지루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 날엔 어둠도 일찍 찾아온다. 종일토록 희끄무레한 하루가 지나고 햇빛을 받지 못한 태양광 정원등도 일찍 꺼지면 무거운 공기 아래 어둠이 짙다.

어둠이 밤으로 밤이 다시 잠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날씨 따라 촉촉해진 두 눈은 잘 감기지 않는다. 어수선한 마음에 데크로 나앉아 창밖을 보니 폭풍우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파도처럼 밀려온다. 차양을 때리는 바람 소리, 나뭇잎 휘둘리는 소리, 윗집 어딘가 문짝 부딪히는 소리가 긴장감을 돋운다.
 
비에 젖은 잔디마당
 비에 젖은 잔디마당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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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은 기분이 가라앉고 집 안에서의 움직임도 둔해진다. 혼자라는 사실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고독감이랄까? 시골에서는 이럴 때 기분 전환을 위한 약속도, 무거운 분위기를 날릴 외부 활동도 없다. 궂은날엔 부침개에 술 한잔이 딱이겠지만 그것도 어렵다. 최근 임플란트 시술로 강제 금주 중이다.

지루함을 해소할 가벼운 방법들을 찾아낸다. 대체로 내가 하는 선택은 책 읽기와 음악 듣기다. 맘에 드는 책, 취향에 맞는 음악 한 곡만 발견해도 하루 종일 흥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리저리 찾아보는 시간 자체도 즐겁다. 하지만 몰입할 만큼 공감과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노래방 기계라도 하나 들여놓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당구대를 설치하려다가 장소가 협소해서 그만뒀다. 지금은 '별채에 목공방을 만들어 볼까?'하고 생각 중이다. 무언가를 설치하거나 들여놓으면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수고가 필요하기에 심사숙고 중이다. 설비 없이 꼼지락거리며 할 수 있는 뜨개질이나 자수가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평소 하지 않던 짓을 해본다. 처음 해보는 요리에 도전하고, 좋아해서 아껴둔 TV 프로그램 '한국기행'을 몰아서 보고, 집안 청소와 벽장 정리도 해본다. 아무래도 취미활동을 좀 늘려야겠다. 뜰을 가꾸는 것이 삶의 재미인 정원생활이지만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생긴다. 이런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시골살이를 잘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지루함에 대해선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 어색하고 불편하여 빨리 벗어나고픈 조급한 마음이 인다. 하지만 따분하다는 감정엔 다른 일에 몰두하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다. 긴 추위와 사나흘 이어진 비로 인해 어서 싹이 돋고, 꽃이 피고, 풀과 나무가 생동하는 모습을 보고픈 기다림이 깊어진 것이다.

심심한 고독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비 내린 새벽 정원
 비 내린 새벽 정원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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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재미와 활력이 넘치는 삶, 그래서 삶의 만족감이 높은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심심하고 고독한 지금의 삶에 만족을 느끼는가?

은퇴 전엔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지금은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는다. 어쩌면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을 멀리하는 것이 약물 의존증의 치료법이듯, 사람을 멀리함으로써 사회관계를 치유해보려 하고 있다면 답이 될까? 대신 자연과 맺은 좋은 관계가 고독한 평안을 주었다.

넘치면 고마움이 사라진다. 비에 젖은 겨울과 봄의 사이, 따스한 볕의 온기가 그립듯 결핍이 부재를 절실히 깨닫게 한다. 그러니 감사해야 한다. 혼자인 날들의 지루함이 절절한 그리움을 가져왔으니 봄이 오면 꽃잎 하나 이파리 하나가 탄성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태그:#지루함, #봄비, #시골살이,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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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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