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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과 삶을 인터뷰한다. 현재 머물고 있는 바하 칼리포르니아수르 지역의 물사정을 들여다보았다. [기자말]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의 최남단, 로스카보스(Los Cabos)의 카보산루카스(Cabo San Lucas)는 태평양과 코르테즈해(캘리포니아만)를 가르는 지점으로 빼어난 해안 절경을 가진 관광휴양지이다. 특히 사계절 추위와는 거리가 먼 사막 기후인 이곳은 미국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아 바다전망의 언덕은 그들의 겨울 별장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해식 아치, '엘 아르코(El Arco)'로 우리를 안내했던 선장은 언덕 위의 별장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은 '로스카보스의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사는 곳이죠."   
 
'로스카보스의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바다 전망 별장들.
 '로스카보스의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바다 전망 별장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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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리킨 곳은 페드레갈(Pedregal)로 불리는 반도 끝의 기암괴석으로 싸인 모래해변으로 연결된 뒤쪽 구릉 지구이다. 이 급경사의 언덕 저택에도 지지 구조물을 세워 수영장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한 가지 의문은 저 별장들은 어떻게 물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물론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Baja California Sur) 전 지역이 물을 구하기 어려운 멕시코의 가장 건조한 주이기 때문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 주 수자원법(LEY DE AGUAS DEL ESTADO DE BAJA CALIFORNIA SUR)'을 읽고 주민을 만났다. 

"한 달에 2번만 나오는 수돗물... 저수조에 물 받아둬야 해요"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의 지역별 강수량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과 함께 7~9월에 집중된다. 세계 각 지역에 대한 날씨 데이터를 제공하는 WeatherSpark에 따르면 로스카보스의 지난해 비가 가장 많이 내린 9월의 평균 강우량은 59mm이며 1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6개월간은 비가 전혀 오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경우에도 빗물 관리 인프라가 열악하고 도시 지역은 콘크리트로 덮여있기 때문에 바로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2000년대 초반 카보산루카스시에는 일주일에 2~3일만 수돗물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에 페드레갈 주민들은 물 공급업체로부터 급수차량을 통해 유료로 물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페드레갈의 집 소유자들은 주택소유자협회를 결성하고 자력으로 담수화 공장을 설립하면서, 물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지난 1월 방문한 서민생활구역인 아우로라스(Auroras)의 경우 물사정은 더 악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한 달에 2번만 수돗물이 나옵니다. 그때 저수조에 물을 받아두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비싼 돈을 주고 '피파(pipa: 물 트럭)를 불러야 합니다."

페넬로페(Penelope)씨는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있는 La Paz 지역에는 현재 이틀에 한 번씩 수돗물이 공급되고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지하에 저수조가 묻혀있고 옥상에 물탱크가 있어서, 물이 공급되는 날 채워진 지하 저수조의 물이 사용량에 따라 자동으로 옥상 탱크로 올라가 실내로 공급된다. 

그러나 멕시코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정수 회사의 물을 사서 먹는다. 며칠 전 20L짜리 생수통 3개를 가지고 정수 회사를 찾아가 물을 사 왔다. 자체적으로 정수한 물을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한 통에 15페소(약 1170원). 멕시코에서 사 먹은 물 중에 가장 비싼 것은 멕시코시티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서 80페소(약 6200원)를 주고 산 1리터 생수였다.
 
물을 자체 정수해서 팔고 있는 라파스의 정수회사
 물을 자체 정수해서 팔고 있는 라파스의 정수회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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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는 각 가정에서 20L생수통을 구매해서 직접 정수장을 방문해 구입한다.
 식수는 각 가정에서 20L생수통을 구매해서 직접 정수장을 방문해 구입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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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17일, 산 비센테 페레르미션(Mision de San Vicente Ferrer) 폐허 유적지 답사를 위해 작은 도시 산 비센테(San Vicente)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 오후 3시가 넘었다. 어둡기 전에 다녀오기 위해 서둘러 숙소를 잡아 짐을 두고 유적지를 향하면서 지도를 보니 1번 도로(Carretera Federal 1)의 다리로 가면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지름길은 지도상에 푸르게 표시된 큰 강을 건너야 하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뛰다시피 걸었다. 

그런데 다리가 보이는 언덕에 다다랐을 때 보니 그 강은 모래밭일뿐이었다. 우리는 강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접 가보니 강은 물이 흐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모래밭 도로가 되어있었다. 강 한쪽에는 물을 가둔 작은 저수시설이 있었다.

퍼올린 물이 다시 강바닥 모래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저수지에는 검은 비닐을 깔았다. 강바닥에 관정을 파고 물을 퍼 올리고 있는 한 사람이 그 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용도를 물었다.

"농업용수입니다. 이 물은 과일 밭으로 옮겨집니다." 

다음날 식수 공급회사 사무실을 방문해 이 도시가 고향이라는 안토니오씨(52세)에게 도시의 물사정에 대해 물었다. 

"이 도시는 인구 5천 명쯤으로 토마토, 칠리, 포도, 양파, 올리브 등을 주로 생산하는 농업이 주산업입니다. 농업용 물은 모두 지하수를 활용합니다. 농업이 발달하다 보니 관정이 많아졌고 지하수가 고갈되어 위쪽 지대에서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아 강바닥 관정에서 물을 퍼올리는 상황입니다." 

"이곳에서 공급되는 식수는 어디에서 취수를 하나요?" 

"이 물 역시 지하수를 정수한 물입니다. 이곳의 지하수에는 많은 양의 소금이 포함되어 있어서 지하수를 퍼 올려 정수 공장으로 옮겨서 염분을 제거한 다음 이곳으로 옮겨와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수돗물은 공급되지 않나요?" 

"그 물은 설거지나 세탁 등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물이지,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렸을 적에는 어땠습니까?" 

"40여 년 전에는 강에 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마르면서 우물에서도 소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지금처럼 염수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마실 수 없게 된 거죠."

 
강바닥이 도로가 되어버린 산 비센테(San Vicente)의 강
 강바닥이 도로가 되어버린 산 비센테(San Vicente)의 강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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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 관정에서 퍼올린 물. 염분농도가 높다.
 강바닥 관정에서 퍼올린 물. 염분농도가 높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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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 전체의 물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도시의 일부에만 물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라고. 더 심해지면 나중엔 종종 물 없이 일주일도 견뎌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수도 있다. 

수자원의 보호, 개발, 공급에 대한 책임을 맡은 멕시코 국립수자원위원회(CONAGUA : National Water Commission of Mexico)에서는 해수 담수화에 기대가 큰 것 같다. 주택 단지개발의 경우 자체적으로 담수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담수화 시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 시설의 가동으로 인해 막대한 탄소가 배출되고 과도한 염수 배출로 해양 생물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즉, 증가된 물 비용을 감당할 만한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마실 기회로부터도 평등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수층(aquifer: 지하수를 함유하고 전달하는 투과성 암석 또는 토양의 지하층으로 천연 저수지 역할을 하는 중요한 담수 공급원)의 충전은 안 되거나 느리므로 점점 대수층이 고갈되고 있다. 이처럼 지하수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방목, 광산개발 등 대수층 수위를 낮추는 요인의 관리는 더욱 절박해졌다. 더불어 빗물을 토양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숲의 복원이 절실하다. 

이곳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식수 공급원으로 대수층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한한 지하수를 특정 지자체 혹은 기업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삼는 일이 옳은가 싶은 의문이 있었다. 

오랫동안 개운하지 못했던 이 의문에 대해 하나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 책을 만났다.
 
산 비센테 페레르미션(Mision de San Vicente Ferrer) 폐허 유적지 너머의 농지와 농업용수로 사용하기위해 마련한 저수조
 산 비센테 페레르미션(Mision de San Vicente Ferrer) 폐허 유적지 너머의 농지와 농업용수로 사용하기위해 마련한 저수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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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는 '블루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물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 '블루 커뮤니티'는 물을 공공재로 보고 있다. 물은 기업이 개발하여 판매하는 대상이 아니며 물은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발족하였다.

또한 대기업들이 물을 독점하는 바람에 물의 흐름이 끊기거나 수자원이 황폐해지는 것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물에 대한 접근을 평등과 인권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프라이부르크 : 독일의 지속 가능한 도시를 가다>, 소노스(SONOS) 저, 레겐보겐북스 출간)"


요즘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상기하고 있다. 이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막은 먼 저수지에서, 혹은 지하의 깊은 대수층에서 수많은 난관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멕시코여행, #식수, #블루커뮤니티,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물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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