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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배영을 하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쏘리!". 내 입으로 뱉고도 내 귀가 의심되었다.

10개월의 여행을 끝내고 귀국했다. 원래의 일상에 다 적응했다고 생각한 이 순간에도 나의 잠재의식은 아직도 세계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뭐, 그렇다고 치자. 난 지금 스무 번째 나라, 나의 조국, 한국을 떠돌고 있으니까.
 
여행의 전리품, 여러 도시의 교통카드. 공항까지?오는 데?사용해야 하는?관계로 마지막까지 내 손에 남을?수밖에?없다.
 여행의 전리품, 여러 도시의 교통카드. 공항까지?오는 데?사용해야 하는?관계로 마지막까지 내 손에 남을?수밖에?없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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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나라인 튀르키예에서 귀국 항공편을 타려고 하니 다음 나라로 다음 스텝을 옮기는 데도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었다. 그동안 나라를 옮길 때마다 온 신경이 곤두섰다. 입국 공항에서 숙소 찾아가는 법, 환전, 대중교통편, 유심 구입 등을 알아보고 실행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썼는데 한국으로 가는 길은 그냥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내 집으로 간다는 것, 내 나라로 돌아간다라는 건 이런 거였구나.

한국에 와서 놀란 점 네 가지

300일 동안 19개 나라 67개 도시를 돌아다녔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미국,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귀국해서 몸은 한국 땅을 밟았어도 아직 여행자의 관성에서 못 벗어났는지 한국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한국에 오니, 놀라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전엔 왜 몰랐을까.

첫째, 방바닥이 따뜻해요.
집에 와서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발바닥이 따뜻했다. 방바닥의 온기가 온몸으로 타고 흐르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래 이런 따뜻한 바닥은 우리나라뿐이었네. 그동안 다닌 19개의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가정용 보일러 난방이다.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온돌 난방'이라는 똑똑한 난방시스템을 '보통 사람들'의 집마다 깔아놓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둘째, 버스든 전철이든 폰 하나로 척척.
가히, 대중교통강국이다. 교통카드 하나로 전철과 버스를 다 탈 수 있는 곳은 외국에도 더러 있지만 대개 한 도시에 한정되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온 나라의 버스와 전철을 자유자재로 환승해 타는 시스템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전철이나 버스를 내릴 때 하차 정보를 찍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요금마저 저렴하다.

셋째, K-화장실도 수출하자.
한국에서 화장실은 공공재다. 전철이든 공원이든 가는 곳마다 무료 공공화장실이 있고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게 관리된다. 범죄 위험과 슬럼화 등의 염려로 화장실이 유료인 유럽과 중남미, 무료라고 해도 인색하기 짝이 없는 미국을 여행하다가 우리나라에 오니 한국은 그야말로 화장실 천국! K-화장실도 수출하자!
 
안전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늘 가까이 있다(서울역 지하철에서).
 안전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늘 가까이 있다(서울역 지하철에서).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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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지하철 입구에서 서서 폰도 들여다봐요.
여행 중 지하철 타기는 거의 작전 수준이었다. 미리 노선과 방향과 내릴 곳을 다 외워야 했고 '전철 출입문 입구에 서 있지 말 것, 폰을 들여다보지 말 것...' 이런저런 치안 수칙을 명심하고 다녔다.

실제로 파리 전철에서 소매치기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대로변에서 휴대폰을 강탈당한 적도 있었다. 한국 지하철을 타니 내가 서 있는 곳이 지하철 객차 입구인지 안쪽인지 구분 개념조차 없고 무심히 폰도 들여다본다. '안전한' 한국에선 늘 그래왔으니까.

한국에 가면...

어릴 적에 하던 '시장에 가면'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시장에 가면 뭐도 있고, 뭐도 있고...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이 놀이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앞사람 것을 차례로 반복한 다음 자기 것을 덧붙이는 언어 놀이'이다.

'시장에 가면' 대신 '한국에 가면'으로 바꿔 보겠다. "한국에 가면 배달음식이 있고, 라면이 있고, 택배가 있고, *도어록이 있고, **다이소가 있고, 빠른 인터넷이 있고, 진동벨이 있고, 쓰레기 분리수거가 있고..." 헉, 숨 넘어간다. 한국에 가면 '한국말이 있고, 한식이 있고'는 뺐는데도 말이다(*외국은 열쇠가 보편적, **미니소나 타이거처럼 다이소와 비슷한 것도 있지만 팬시용품 위주이고 상품이 제한적).

10개월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건강보험공단에 자격 복귀 처리를 했고 자동차 보험도 새로 가입하고 자동차등록소에 보관시켰던 자동차번호판도 찾아왔다. ***신용카드도 재발급받았다(***신용카드 복제로 영국에서 월단위로 통신요금을 빼가고 있었음). 한국살이 세팅은 완료되었다.

어차피 여행자의 정체성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김에 여행자의 텐션을 유지하며 한국살이를 해 보려고 한다. 여행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는 훈련을 시켜줬다. 그동안 누릴 때는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던 것이 긴 공백만에 다시 누리니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새삼 신기하고 편리하고 감사한 것, 한국적인 것들을 찾아서, 지금부터 스무 번째 나라, 한국 여행 시작!

태그:#한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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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여행자입니다. 여행이 일상이고 생활이 여행인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쌓기 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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