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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봄 스틸컷.
 영화 서울의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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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식 배우님 반갑습니다. 2018년 12월 이래 '현충원투어'를 잇고 있는 김종훈입니다. 지난 1월 16일 올라온 <서울의 봄> 무대 인사 관련 기사를 봤습니다. 관객들에게 전한 정 배우님 마음이 그대로 엿보였습니다.
 
"배우들, 제작진, 스태프 모두 다 같은 마음이다. 중간에 불안함과 무거운 마음으로 현충원을 찾았었다. 다시 한번 찾아뵐 때는 조금 더 기쁘고 밝은 모습으로 소주 한 잔 올리고 싶다."
 
정 배우님 말을 접하는 순간 여러 시민과 함께 서울현충원에 잠든 정병주 장군 무덤에 술 한잔 가득 부어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실은 다가오는 105주년 삼일절에 서울현충원에서 '참군인과 반란군, 독립투사와 친일파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현충원투어를 계획 중입니다. 2018년 12월 이래 공익목적의 비영리로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36차를 맞는 투어가 됐습니다.

원래는 친일파 아래 잠든 애국지사들의 처지가 너무나 죄송해서, 이 불편한 현실을 한 명이라도 더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걸음을 이어왔던 것이고요. 지난해 11월 말 <서울의 봄> 개봉 즈음 진행한 현충원 투어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란군에 맞섰던 김오랑 중령의 묘 앞에 여러 시민들과 함께 섰습니다.

새벽부터 경북 포항에서 엄마와 함께 온 중학교 2학년 다현이부터 강원도에서 온 팔순의 어르신까지 너무 좋아했습니다. 고마워하고요. 영화 <서울의 봄> 덕에 뒤늦게라도 반란에 맞서 싸웠던 참군인들에게 술 한잔 올릴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후로 <서울의 봄> 흥행에 맞춰 더 열심히 달렸습니다. 현충원의 안타깝고 부당한 현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덕분에 지난 세밑과 새해에 연속으로 진행한 다섯 번의 투어에 총 5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정 배우님께 이렇게 공개적으로 제안드립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는 삼일절 현장에 모일 2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서울현충원에 잠든 참군인 정병주, 김오랑, 정선엽 등을 직접 만나 인사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시민들의 서명이 적힌 태극기를 펼쳐놓고 '대한독립'이라 새겨진 유기잔에 술 가득 부어 올리겠습니다.

정병주 장군의 '백비' 앞에 서는 마음
 
12.12 쿠데타에 맞섰던 참군인 정병주 장군 묘
 12.12 쿠데타에 맞섰던 참군인 정병주 장군 묘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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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식 배우님. 누구보다 잘 알시겠지만 <서울의 봄>에서 정 배우님이 연기한 특전사령관 공수혁의 실존 인물 정병주 장군, 그의 묘는 백비로 돼 있습니다.

백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묘비입니다. 처음 <서울의 봄>을 주제로 현충원투어를 진행해야 겠다 마음먹고 영화 개봉 첫 주 주말에 혼자 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이미 수십 번도 더 걸었을 그곳에 정병주 장군이 잠들어 있더군요. 그리고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그의 묘를 마주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반란에 맞서 싸운 참군인의 무덤엔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일까?'

정병주 장군, 특전사를 대한민국 최고 용맹 집단으로 키워냈다는 이유로 '특전사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 정 장군의 직속 부하였던 인물이 12.12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 정호용, 노태우,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1979년 12월 12일 그날 영화에서처럼 부대를 이탈해 한강을 넘어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특전사령부에 침입해 특전사령관 정 장군과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에게 흉탄을 쐈습니다. 총상을 입은 정 장군은 군에서 쫓겨났습니다.

강제예편한 정 장군은 전두환이 집권한 내내 은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1987년 11월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관훈토론회에서 12.12반란을 미화하는 것을 보고 침묵을 깨고 나섰습니다. 자신을 호위하다 사망한 김오랑 소령에 대한 명예회복도 같이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참군인 김진기 헌병감과 언론 앞에 서서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정 장군은 이듬해인 1988년 10월 16일 밤 10시에 갑자기 행방불명됐습니다. 그리고 실종 139일 만인 1989년 3월 4일에 경기도 한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그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됐습니다.

정병주 장군의 묘에는 '육군소장 정병주' 이외에 어떤 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충원에 잠든 12.12반란 주역들의 묘비에 하나같이 '참군인', '정직', '청렴', '용맹', '헌신' 등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 새겨졌음에도 정 장군의 묘비에는 어떤 내용도 적히지 않았습니다. 정 장군의 유족은 언론에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고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정 장군이 잠든 서울현충원 장군 1묘역에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육사 11기 동기이자 하나회 멤버로 12.12쿠데타에 적극 가담했던 백운택 1군단장이 잠들어 있습니다.

끝내 사과하지 않은 반란군을 기억하며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12.12군사반란 핵심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12.12군사반란 핵심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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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군이 야산에서 숨을 거뒀을 때, 반란을 일으킨 직속 부하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2021년 11월 23일, 대한민국 대통령을 두 번 지낸 학살자 전두환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고 사망했습니다. 심지어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이 12.12사건은 군사반란이며 5.17사건과 5.18사건은 내란 및 내란목적의 살인행위였다고 판단했어도 전두환은 제5공화국 정부는 합헌 정부로서 내란정부로 단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12.12 당시 1공수 여단장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으로 점거했던 박희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직후인 1995년 11월 미국으로 도피했습니다. 3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기소중지 상태였던 그는 뒤늦게 귀국해 재판을 받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공범들이 이미 사면·복권된 후여서 법정구속 되진 않았습니다.

이후 박희도는 극우적인 활동에 전념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23일, 전두환 사망일에 맞춰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두환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3공수 여단장 신분으로 12.12에 참여했던 최세창은 직속상관인 정병주 장군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수도권의 20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 요직을 거친 뒤 육군 대장 최고 보직 중 하나인 제3야전군사령관과 합동참모의장을 거쳐 노태우 정권 당시 국방부 장관까지 오릅니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가담, 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습니다.

최세창의 명령을 받고 정병주 장군과 김오랑 중령에게 직접 총을 겨눈 박종규 역시 12.12 후 영전에 영전을 거듭, 결국 사단장까지 진급했습니다. 다만 박종규는 뒤늦게 자신의 죄에 대해 사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김오랑 중령의 31주기를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2010년 12월 7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함께 술 한잔 가득 부어 올릴 날을 고대하며
  
9일 서울현충원에서는 시민 100명이 모여 서울의봄 및 12.12 특별 현충원 투어를 진행했다. 사진은 12.12 반란군에 맞서 싸운 정병주 장군 묘 앞.
 9일 서울현충원에서는 시민 100명이 모여 서울의봄 및 12.12 특별 현충원 투어를 진행했다. 사진은 12.12 반란군에 맞서 싸운 정병주 장군 묘 앞.
ⓒ 권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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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까운 친구가 물었습니다. '왜 현충원에 계속 가냐'고. '그것도 여러 시민과 함께 왜 계속 가냐'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눈물이 나서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는데, 현실은 친일파 발아래 잠들었습니다. 반란에 맞서 싸웠더니 남은 건 백비와 양지바른 곳에 '참군인'이라 새겨진 반란군의 묘뿐입니다. 현충원에 서면 밀려오는 서러움에 눈물이 납니다.

다만 희망은 있습니다. 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여럿이 함께 찾아가 인사를 올리다 보면 불편한 현실을 해결할 방안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지사들과 참군인들에게 술잔 가득 소주 부어 올리면 마음속 한편에 자리한 미안함도 조금은 사라집니다. 현충원투어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정만식 배우님. 처음으로 돌아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요청드립니다. 다가오는 삼일절 200여 명 시민과 함께 서울현충원에 잠든 정병주, 김오랑, 정선엽의 묘에, 정 배우님 말씀처럼 조금 더 기쁘고 밝은 모습으로 소주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참군인과 독립투사를 찾아 떠나는 현충원투어는 갑진년(2024년) 삼일절 오전 11시 서울현충원 만남의집 앞에서 출발합니다. 남은 시간 저도 마음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군인을 찾아서" 투어 신청 – https://forms.gle/DkCY4WotRsVYHtuo7

태그:#정병주, #서울의봄, #정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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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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