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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에 있는 닭갈비집에 갔다. OO닭갈비라는 허름한 간판이 떡 허니 붙어있는 이곳은 우리 가족의 단골집이다. 걸어서 단 몇 분만에 갈 수 있는 나만의 명소, 적당한 맵기로 세 식구의 피로를 풀어주는 묘한 닭갈비의 맛. 이것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만의 힐링명소'가 된 것이다. 

이 가게 요즘 손님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SNS나 입소문을 타고 우리 동네의 핫스팟(?)이 되었나 보다.  조금씩 유명해지니 사장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다. 아무 상관없는 나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약간의 흠이라면 이젠 식사시간보다 좀 빨리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도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5시에 갔다. 

일주일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한 노고를 치하하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보통맛 닭갈비를 주문했다. 양은 쟁반에 수북이 쌓인 닭갈비들이 사장님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둥그런 철판에 자리 잡았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고추장 양념을 바른 닭과 양배추, 고구마와 떡이 빠르게 그러면서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마지막으로 흩뿌려지는 깻잎 한 줌은 가히 화룡점정이었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과 익숙한 닭갈비 냄새를 서로 주고받으며 가게의 향에 취하고 닭갈비의 맛에 취하고, 술 한잔에 취하고. 그렇게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각자의 분위기와 가게의 정취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벽에는 각종 광고지들이 붙어 있었다. 갑자기 그중 사람이 아닌 사이다가 주인공인 광고지에 눈길이 갔다.

 
탄산음료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어서 찍은 사진입니다.
▲ 없어도 되는 건 빼고 살자는 문구 탄산음료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어서 찍은 사진입니다.
ⓒ 백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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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되는 건 빼고 살자"고 써있다. 없어도 되는 건 뭐가 있을까? 가만있어보자.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남 탓 - 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하는 것, 질투 - 나보다 상대방이 잘 나갈 때 하는 것, 과한 욕심 - 지나치게 탐내는 마음. 아마 이런 것들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비교'다. 사전을 찾아보니 '둘 이상의 것을 견주어 공통점이나 차이점, 우열을 살핌'이라 쓰여 있다.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을 살펴보는 것 역시 비교이거늘 요즘은 누구보다 잘나고 못나고를 가리는 것에 의미가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비교는 고통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기 보다 마음에 새긴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한때는 비교라는 거 꽤 했었다. 남들은 건강한데 난 맨날 시들시들하고 친구는 돈도 잘 벌더구만 난 그렇지 못하고...  이런 생각들이 파이처럼 한 겹 한 겹 쌓이니 달콤함이 들어갈 자리에 쓴맛이 스며들었고, 쓰디쓴 파이를 먹으며 그것이 내 양분이라 생각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단다.
"비교는 남하고 하는 게 아냐. 어제의 나하고 하는 거야~" 이 말에 앵무새같은 아이들은 집에 와서 똑같이 되뇌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를 순 없는 법! 그때부터 적어도 아이 앞에선 남과의 비교를 하지 않았다. 

닭갈비를 먹다 옆에 앉은 딸에게 "넌 없어도 되는 게 뭐라고 생각해" 물으니 당연함과 잠수를 꼽았다.

고마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급할 때 연락 없이 잠수 타는 것. 이런 것들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없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얘기하더라. 동아리 활동하며 사회의 달고 쓴 맛을 아주 조금 느껴봤단다.

때마침 테이블 옆에 계시던 사장님이 탄산음료를 가져다주시며 한 말씀 거드셨다.  우린 단골손님이라 음료도 서비스로 받고 바쁘지 않을 땐 대화도 나누고 하는 사이다.


"맞아요.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서비스를 해야하는 건 맞지만, 그 서비스를 너무 당연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요구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세요. 그래서 좀 기분이 상할 때도 있죠."

늘 웃어주시기에 몰랐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사장님 마음이 적잖이 안 좋으셨나 보다. 고마움과 당연함은 같은 단어가 아닌데 더러 감사함을 확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런 태도나 자세 역시 없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반대로 있어야 되는 건 뭘까도 생각해봤다. 우선 물과 불, 공기는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하겠고. 인간 관계에서 싹트는 감정들과 그에 대한 표현이 중요하니, 그래! '대화' 바로 이게 있어야 되는 거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잘 나갈 때든 일이 안 풀릴 때든 편하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시답잖은 말에도 기분 좋은 따뜻한 말 한 마디 오갈 수 있다면. 사이다 마신 후 나오는 뻥 뚫린 트림처럼 조금은 가슴 시원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이다를 한 병 더 주문했다. 기포 사이의  시원함과  따뜻함을 맛보기 위해. 그리고 적은 금액이지만 사장님 매출을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사이다, #비교, #고마움, #당연함,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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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차 일본어강사입니다. 더불어 (요즘은) 소소한 일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며 글로 씁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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