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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집의 호떡 현수막 광고가 이채롭다,
▲ 호떡 굽는 커피 집   커피 집의 호떡 현수막 광고가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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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 중 가장 추운 섣달에 폴폴 눈까지 내립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가끔 생각나는 것이 호떡입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 종종걸음을 치다 노점의 호떡 굽는 냄새에 끌려 호떡 한 봉지를 사 들고, 뜨거운 설탕물이 흐르는 호떡을 데이지 않게 조심히 먹던 그 맛의 추억은 이 땅을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일 것입니다.

이 길거리 간식의 족보를 따지면 호떡은 " 호胡떡"이라는 명칭과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말에서 보듯 개화기에 청군을 따라 들어왔던 화교들에게서 유래된 간식거리로 알려졌고, 풀빵-붕어빵 등-류는 국치와 더불어 왜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이 풀빵 장사가 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풀빵은 국화꽃 모양이 찍혀 나오기 때문에 국화빵이라고도 불렀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며 크기가 작은 풀빵인 국화빵이 차츰 퇴조하고, 큼직한 붕어빵이 점차 대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국화빵 시절에 소년기를 지낸 세대이기는 하지만, 국화빵보다는 호떡과 붕어빵이 더 좋고 가끔 호떡과 이 붕어빵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붕어빵을 찾을 수 없는 거리

이 그리움을 부채질한 것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입니다. 중학교 이후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외국에서만 돌다 왔어도 여전히 토종 입맛인 딸애는 그런 길거리 간식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툭하면 떡볶이를 사 오더니 하루는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부녀가 함께 시내를 다 돌았지만, 붕어빵은 물론 호떡을 파는 노점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녀는 아쉬움을 달래며 기회가 되면 이웃한 광주에서 붕어빵을 사 오기로 했습니다. 광주에는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맛있는 붕어빵 노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호떡이 사라지고 커피 집에서 호떡을 팔고 있다.
▲ 가게로 들어간 호떡 거리에서 호떡이 사라지고 커피 집에서 호떡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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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이 감소하는 이유

이렇게 노점이 감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기후의 온난화로 겨울 추위가 전 같지 않아 일어나는 매출 감소, 밀가루와 설탕 등 원재료비 상승, 찐빵과 호떡까지 진출한 대기업 제품의 영향과 강력한 노점단속 등입니다. 이제는 기업이 붕어빵도 만들고 있습니다만, 저는 획일적이고 가차 없는 노점단속이 노점 감소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는 2009년 1만345개소였던 노점이 2011년에는 9117개소로 감소했고, 해마다 10%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환난 이후 신자유주의는 이 땅에 서민을 늘려가는 실정인데, 이런 가차 없는 노점단속은 생계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고통을 넘어 절망일 수 있습니다.

생업인 노점을 포기한 이유

우리 고장도 그렇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던 장애인 형제는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생업으로 시계를 팔던 노점을 단속 때문에 접었습니다. 이 형제는 단속도 단속이지만 인도가 좁아져서 더 이상 좌판을 설치할 자리가 없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버스 터미널의 인도 마저 겨우 두 사람이 교행하면 어깨가 부딪치지 않게 비켜서야 할 형편입니다. 이게 사람이 아닌 자동차 중심인 우리나라 도로와 보도의 보편적 형편입니다. 도로와 교통 정책을 하는 이들은 이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시외버스 터미널 인도가 두 사람이 교행 하면 한 사람이 비켜 서야 할 정도로 좁다.
▲ 비좁은 인도  시외버스 터미널 인도가 두 사람이 교행 하면 한 사람이 비켜 서야 할 정도로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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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붕어빵 식당에 가야 할 날이

그러나 서울의 명동과 종로와 을지로, 강남은 물론이요, 이웃한 광주시 내에도 붕어빵 등 주전부리를 파는 노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장 시내의 거리에서는 붕어빵이나 호떡을 파는 노점은 찾을 수 없고, 전통 시장안에나 있을 뿐입니다. 이젠 호떡이나 붕어빵 하나를 먹으려면 호떡 식당이나 붕어빵 식당에 가야 하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사실 무분별하게 난무하는 노점은 볼썽사납기도 하고, 보행을 불편하고 위험하게 하기도 하며, 위생 문제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깨끗하게 정돈된 아름다운 거리는 안전하고 편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의 고풍스런 거리에도 잘 정돈된 노점은 있고, 그것이 그 도시의 명소이기도 하며, 그 도시를 더욱 아름답고 인간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것은 그 나라들의 문화 수준과 더불어 높은 인권 의식의 반영일 것입니다. 동남아의 노점과 야시장이 유명한 관광상품인 것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을까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루체른의 유서 깊은 카펠교  근처의 농민이 재배한 농산물을 파는 노점에 관광객들이 괴실을 고르고 있다.
▲ 카펠교 인근의 노점 풍경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루체른의 유서 깊은 카펠교 근처의 농민이 재배한 농산물을 파는 노점에 관광객들이 괴실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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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운 거리

결국 제가 그리운 것은 호떡이나 붕어빵보다 인정이요, 사람 사는 냄새인 셈입니다. 아무리 질서 있고 잘 정돈된 거리라도 거기에 사람 사는 인정과 멋이 없다면, 그 거리는 냉혹하고 살벌한 생존 경쟁의 밀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고장의 거리가 잘 정돈된 문화도시이면서도 길을 가다가 가족이나 친구끼리 호떡 한 개씩이나 붕어빵 한 마리씩 사 들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인간미가 있는 따뜻한 도시이기를 희망합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결국 삶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삶을 함께하고 공동체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그:#붕어빵, #생존경쟁의밀림, #호떡, #노점단속, #사람사는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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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신대원, 연세대 연합 신대원에서 신학을 했다. 은혜로교회를 86년부터 섬겨오는 목자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다!"는 지론으로 칼럼과 수필, 시도 써오고 있다. 수필과 칼럼 집 "내 영혼의 샘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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