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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는 경신년(1860)년 종교체험으로 '창도(創道)'를 하여 포덕을 시작하였고,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창학(創學)'을 한 것입니다. 동학은 동국지학이자 한국학으로서의 지역성과 특수성, 천도(天道)이자 지구학으로서의 세계성과 보편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수운 최제우 탄신 20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제1회 동학사상기행-콜로키움(발표자가 발표를 한 후 참여자와 자유롭게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토론 방식)에서 조성환 원광대 교수는 동학의 의미와 사상사적 의의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콜로키움은 20일(토) 동학 창도 성지인 경주 용담정과 수운 탄생 고택, 수운의 묘소(태묘) 등지의 순례와 함께 진행되었다. 또 이날 오후에는 용담수도원 내 포덕관에서 '동학이라는 이름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조성환 원광대 교수의 발제와 심광섭, 손원영 목사, 김병수 아시아종교연구원 연구원, 송봉구 영산대교수(천도교 종학대학원 교수) 등의 토론자으로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토론회에서는 수운 종교 생애 전기(1860.4~1862.3)에 개념화하고 체계가 정립된 '동학'이라는 이름이 갖는 철학적, 사상적 의미를 짚어 보고, 향후 발전 방안 및 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조성환 원광대 교수는 콜로키움 발제문에서 '동학'이라는 이름의 성립과 내면화 과정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그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최제우가 제시한 '동학' 개념은 한국사상사의 맥락에서 보면, 멀리는 최치원을, 가깝게는 세종의 학문적 입장을 잇고 있다. 최치원이 제창한 '동방'(한반도)이라는 의미에서 '동(東)'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中)'에 대한 사대(事大)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중국과 동(東)의 차이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제우가 이전의 선학(先學)들과 달랐던 점은 '동(東)'의 이름을 내건 '학(學)'을 최초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라는 지역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제우가 '주문동학'에서 '문헌동학'으로의 전환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학(學)의 체계는, 우주론적으로는 천도(天道)라는 지구적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학문에 있어서는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지역적 지식 체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은 최제우가 창조한 한반도의 학으로서의 '한국학(Korean Learning)'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탄생한 고택의 유허지에 서 있던 유허비(왼쪽, 1971년 건립)과 2014년 복원된 고택(오른쪽)
▲ 수운 고택과 유허비 수운 최제우 선생이 탄생한 고택의 유허지에 서 있던 유허비(왼쪽, 1971년 건립)과 2014년 복원된 고택(오른쪽)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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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에 이은 토론에서 심광섭 목사는 "한국(조선)의 역사에서 세종대왕이 초기를 대표하면서 터전을 마련했고, 중기의 위기를 이순신 장군이 극복했면, 수운 최제우 선생은 19세기 역사의 질곡을 대변하고 21세기 동서 사상이 창조적으로 합류할 지점을 열어갈 상징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제대로 된 서학, 즉 신서학과 신동학의 대화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 밖에 토론자들은 수운 탄신 200주년을 맞아 동학 사상의 현재적 의의가 세상에 잘 드러나고, 기후위기를 비롯한 현대사회의 위기 극복을 위한 전 인류의 지혜로서 빛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 200주년 기념출판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모두 6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순례행사는 오전 10시 수운 선생(경주 현곡면 가정리 314번지) 고택(古宅) 방문으로 시작됐다.

수운 고택은 수운이 지금부터 200년 전 1824년 10월 28일(음) 탄생한 곳으로 수운이 20세 무렵 화재로 불에 탄 이후 유허지로 전해오다가 지난 1971년 유허비를 건립하였고,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던 2014년에 복원을 마쳤다.
 
구미산 자락에 있는 수운 최제우 선생의 태묘(太墓). 수운은 1864년 3월 10일 대구에서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이곳 구미산자락에 암매장 하였고, 199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수찬되엇다.
▲ 수운 최제우 선생 묘소(태묘) 구미산 자락에 있는 수운 최제우 선생의 태묘(太墓). 수운은 1864년 3월 10일 대구에서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이곳 구미산자락에 암매장 하였고, 199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수찬되엇다.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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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순례자들은 구미산 자락에 있는 수운 최제우의 묘소(태묘) 탐방하여 참례하고, 인근에 모셔진 수운의 태묘와 부인박씨, 장자 세정, 차자 세청, 해월 최시형 선생의 따님으로 '용담할매'로 불리며 용담정을 수호했던 최윤 등의 묘소도 참방하였다.  

다음으로 구미산 용추 계곡 중턱에 자리한 용담정을 탐방하였다. 용담정은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한 곳으로 수운이 참형을 당한 후에 폐허가 되었으나, 일제강점기부터 제자들이 꾸준히 찾아와 참배하고, 일제시기 말 용담할매 최윤이 상주하면서 복원되기 시작했다. 1970년 구미산 및 용담정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0년 4월 5일 동학을 창도한 용담정(경주 현곡면 구미산 계곡)
▲ 용담정 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0년 4월 5일 동학을 창도한 용담정(경주 현곡면 구미산 계곡)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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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 200주년 기념 동학사상 기행'은 올 한 해 동안 수운 관련 성지 탐방 및 콜로키움과, 수운 관련 단행본이나 주요 논문을 읽고 진행하는 북콘서트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그 성과를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한편 행사 참가자들은 공식 일정이 종로된 후 경주시 황오동 황성공원 내에 있는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 동상을 참례하였다. 
 
경주는 동학 창도지일 뿐 아니라,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 탄생지(경주시 황오동)이기도 하다. 동학사상기행 참가자들은 행사 후 경주시 황성공원 안에 있는 해월 최시형 선생 동상을 참배하였다.
▲ 해월 최시형 선생 동상(경주시 황오동, 황성공원 내) 경주는 동학 창도지일 뿐 아니라,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 탄생지(경주시 황오동)이기도 하다. 동학사상기행 참가자들은 행사 후 경주시 황성공원 안에 있는 해월 최시형 선생 동상을 참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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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대표입니다. 동학사상기행 참여 문의,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수운 최제우 탄신 200주년 기념출판위원회 02-733-7173
- 이 기사는 이 행사를 주관하는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의 네이버카페에도 일부 수정하여 게재됩니다.


태그:#동학, #최제우, #용담정, #수운고택, #동학사상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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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문학연구소 대표, (사)방정환연구소 이사,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대표, 방정환도서관장, 개벽라키비움 코디네이터. 돌봄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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