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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는 걸까요?"
"분명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맞는데..."


어르신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갔으나 함께 간 직원과 한참을 헤맸다. '도착했으니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내비게이션은 길찾기를 중단했는데, 우리는 집찾기를 중단할 수가 없었다.

주소가 '000로 000길 3X번지'라서 30번지부터 훑으며 힘겹게 계단과 언덕을 올라왔으나 응당 있어야 할 3X번지가 보이질 않는다. 갑자기 60번대가 나와버려서 뭐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주변을 더 살펴보았으나 찾고자 하는 집은 없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며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쌀과 달걀 등 먹거리를 드리기 위해 여러 집을 찾아가 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반지하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열악하게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곳을 가본 적은 많으나 이렇게 집 자체가 보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좁은 틈을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집

밖에서 우리가 허둥지둥하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그 앞번지에 사는 어르신이 직접 나와보셨다. 어르신께 여쭤보지도 않았는데 3X번지를 찾아온 게 맞느냐는 말에, 어떤 비밀의 통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기 집 찾는 게 어려워요. 택배기사든 누구든 다 여기서 헤맨다니까."

마치 어르신의 집 앞이 버뮤다 삼각지대인 것마냥 번지수가 보이지 않아 다들 여기서 멘붕(?)을 겪는다고 했다. 익숙한 듯 어르신이 따라오라며 앞장서 길을 안내해주셨다. 어르신은 갑자기 어느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넣으시며 걸어갔다.

벽돌집 사이에 좁은 틈이 바로 그곳이었다. 성인 남성은 어깨를 움츠린 상태로 걸어도 힘겨울 정도라 '게걸음'으로 가야 그나마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이 틈을 지나야 비로소 어르신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틈을 지나가니 그토록 찾던 3X번지의 앞번지 도로명판이 보였고, 철로 된 조그마한 현관문이 보였다. 우리는 문을 두드리며 어르신의 성함을 외쳤다. 구부정한 자세로 어르신은 우리를 맞이해 주셨고, 추운데 얼른 들어오라며 한쪽으로 비켜서며 지나갈 자리를 내어주셨다.
 
어르신이 하루에도 몇 번 오르내렸을 언덕. 열선이 깔려 있지 않아 눈이 오면 그대로 얼어 붙는다.
 어르신이 하루에도 몇 번 오르내렸을 언덕. 열선이 깔려 있지 않아 눈이 오면 그대로 얼어 붙는다.
ⓒ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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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집밖을 나가질 못해요. 선생님들도 여기 와봐서 알겠지만, 집까지 올라치면은 저... 저 밑에 언덕을 올라오는 것부터 힘드니까... 달동네잖아요."

그렇다. 우리도 차를 가지고 왔으나 가파른 언덕을 보고 이건 안 된다며, 한참 밑에다가 주차를 해두고 걸어 올라왔다. 올라오면서도 길이 미끄러워 서너 번 중심을 잃으며 걸었다. '블랙 아이스'를 육안으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길 양쪽에 간이 계단과 난간이 있지만, 계단도 눈이 녹지 않아 어림도 없다. 어르신은 오죽했을까.

외부로 밀려나는 주거취약계층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는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1년에 발표된 '노인의 주거환경 인식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보면, 노인의 주거비 부담이 증가할수록 우울도 함께 증가한다고 나타났다. 또한 주거환경이 안전한지, 편리한지 등에 따라서도 우울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이 연구뿐만 아니라 많은 논문에서도 주거환경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은 UN의 주거환경 개념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히 집을 '내 공간'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단위주택에 거주하는 가족 간의 생활과 주민들이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종합적 환경"으로 물리적인 의미의 집이 아닌 사회적 개념으로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꺾이지 않는 부동산 신화로 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부를 얻는 주요 수단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 좋은 집을 넘어 더 '비싼 집'에 대한 욕망이 디폴트 값이 되었고, 집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소위 돈이 없는 사람은 같은 도시 안에 살더라도 바깥으로, 외부로 밀려나는데 그것이 곧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와 연결된다. 즉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빈곤한 계층을 밀어내다 보니 달동네와 같은 이들만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소득계층별로 받을 수 있는 주거복지서비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소득계층별로 받을 수 있는 주거복지서비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 마이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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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찍부터 주거의 질 향상 등을 목표로 주거복지 로드맵을 설정하고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어떠한 지원을 할지 발표해왔다. 그러나 '선언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히 영구임대주택이나 국민임대주택 등 기존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원은 어르신이 직접 신청하는 것도 어렵지만, 경쟁률이 높아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청약'에 비유되곤 한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현실성 있는 대안 필요

임대아파트를 제공하는 지원은 신청을 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당장 지금 사는 곳의 주거 환경 개선이 시급한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겨울이면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를 틀지 않고 옷을 껴입는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씻지도 못한다. 

매년 굵직한 선거를 앞둔 시즌에는 후보들은 앞다투어 달동네를 찾아 현장을 둘러보고 필요한 정책 지원을 하겠다며 공약을 발표를 해왔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달동네가, 또 그곳에 사는 어르신이 더이상 전시물로써 활용되는 것이 멈추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태그:#노인, #주거복지,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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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축구를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지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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