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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00만 원 이상은 생각하셔야 됩니다 고객님."

100만 원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주행거리 20만km를 넘긴 내 차는 수리가 필요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앞으로 차를 계속 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수리를 미룰 수 없었다.

작년 여름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고 복직을 위해서는 차가 필요했다. 월 110만 원 남짓한 고용보험 수당이 수입의 전부였던 나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과 간절한 목소리로 사장님에게 읍소하는 수밖에.

"어떻게 현금가로 할인 좀... 안 될까요?"

차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수리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상충했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크고 좋은 차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했을 때 새 차를 구매하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랑 참 닮았다
 
작년 육아휴직 기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녀석에게 감사한다.
 작년 육아휴직 기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녀석에게 감사한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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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차는 중고 베르나였다. 수년간 전국을 누비며 달리고 또 달렸다. 잘 달리던 차는 주행거리 10만 km를 넘어서자 여기저기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주행 중에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갑자기 멈춘 적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인근 카센터로 향했다. 내 차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사장님은 다짜고짜 화를 냈다. 

"위험하게 이런 차를 계속 끌고 댕기면 어짭니까!"

작별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첫 차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두 번째가 지금의 차다. 역시나 중고였지만 첫 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동급 대비 넓은 실내공간, 비록 내 기준이기는 하지만 안락한 승차감, 가솔린 차량치고 나쁘지 않은 연비까지. 

하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던 것일까. 20만km를 달리며 나와 함께했던 녀석은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하체가 내려앉았고, 호흡기와 순환계통에 문제가 생겼다. 주요 부위의 뼈와 관절이 망가져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지금 당장 수리를 하던지, 버릴 생각을 하고 차를 운행할 것인지 결심을 해야 했다. 평소의 나라면 예상치 못한 큰 비용의 발생으로 화부터 냈을 텐데,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나와 참 닮았구나.'

2011년 출생인 녀석은 햇수로 14년째 달리는 중이다. 나 역시 첫 발령을 2010년 4월에 받았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시점이 얼추 비슷한 셈이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았지만 10년이 지나 몸이 망가진 것도 똑 닮았다. 파릇파릇했던 입사 초기와는 달리, 지금의 나에게는 거북목과 중증 지방간, 높은 혈압과 요산수치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보유하고 있다는 다양한 옵션(?)들이 장착되어 있다.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도 나와 녀석의 공통점이다. 10년 전 수 십 명이 넘던 입사 동기들이 이제는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만 남아있다. 정년이라는 형식적인 제도가 존재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고된 노동, 끝이 없는 스트레스에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늘어난다. 비워진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신속히 메꿔진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차를 구매하면 10년에 20만km정도 주행을 한다고 한다. 내 차는 2011년식에 23만km를 훌쩍 넘었다. 중고차 시장에 내놓으면 고철값조차 나오지 않는 녀석에게 100만 원이 넘는 수리 비용은 과하다 못해 무모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엔데믹 이후로 신차 구매 시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없어졌다. 할인 프로모션은 요즘따라 왜 이리 파격적인지. 새 차가 아니더라도 1~2년 미만의 매력적인 준신차들이 넘쳐난다.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장거리 주행을 할 때마다 이제는 좀 번듯한 차를 몰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해 보이는 이 녀석을 볼 때마다 뭔가 자꾸만 짠하다. 내가 차를 교체하는 순간 우리가 함께했던 오랜 시간을 뒤로한 채 녀석은 곧바로 폐기 처분될 터였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이제 더는 필요 없다고 내쳐질 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머지않아 맞이할 내 모습은 아닐까.

휴식이 필요한 나는 10개월을 쉬었고, 그 해 여름 내 차는 큰 수술을 받았다. 우리에게 처음의 열정과 온전했던 컨디션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세상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이미 고인 물일지도 모를 우리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앞으로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오래 가자

3년 전 겨울 큰 사고가 났다. 전방 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주행하다가 앞차를 그대로 들이받은 것.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순간 차 뒤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뒤를 따라오던 차 또한 내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앞뒤 모두가 찌그러진 내 차는 공업사에 맡겨졌다. 

폐차를 해야 될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수리가 잘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겨우 1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꽤나 오래 걸린 것 같았다. 불편한 렌터카가 아닌 수족 같던 내 차에 앉는 순간,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며칠 전에는 타이어 가게를 방문했다. 진작에 타이어 4짝 전체를 교체하려 했지만 바쁜 업무로 인해 방문하지 못했다. 작년에 차수리를 하면서 대출혈이 있었는데, 연이어 지갑이 탈탈 털릴 생각에 가슴이 착잡했다. 

공기압을 체크하고 타이어를 점검한 사장님은 앞으로 5천km는 더 타도 된다고 했다. 최소 50만 원 이상은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한쪽 구석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던 녀석이 나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왜 이래 형, 나 아직 팔팔해. 우리 10년은 더 달려야지?"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 같은 주인을 만나 다른 차들보다 갑절은 더 고생한 녀석이 걱정되면서도 고마웠다. 형편이 넉넉하고 차를 덜 타는 주인을 만났더라면 이제는 그만 좀 쉴 수도 있었을 텐데.

주위에서는 그만하면 탈 만큼 탔다고, 인간적으로 이제는 제발 좀 차를 바꾸자고 나에게 애원(?)하는 사람도 있다. 조수석에 앉기만 하면 대시보드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고, 어떻게 된 게 자동차 시트가 나무 의자보다 더 불편하다며 대놓고 구박을 하던 직장 상사도 있었다. 동료들 차의 브랜드가 바뀌고 배기량이 더 커질 때에도 내 차는 계속 그대로였다. 

나는 차에 큰 욕심이 없다. 이동수단으로써의 역할만 잘 수행해 준다면 더 이상의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 이번에 대대적인 하체 수술을 완료했기 때문에, 고질적인 문제인 CVT미션(변속기)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몇 년은 더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하며 이 녀석과 많은 정이 들었다. 앞만 보며 달려온 것도, 처음에 비해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것도,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하고자 하는 의지까지도 닮은 우리이지 않을까.

남들에게는 연식 오래된 한낱 고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친구 같은 녀석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개제합니다.


태그:#중고차, #수술, #추억, #친구,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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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짝꿍,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 음식, 읽고 쓰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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