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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2월 말 친구 4명과 송년모임을 하다 적금 얘기가 나왔다. 한 번 해볼까 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우린 그 자리에서 바로 일 년짜리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한 달에 10만원씩.

쏜 화살같은 세월은 허무감만 주는 게 아니여서, 적금만기로 나는 120만 원을 받았다. 거금 120만 원이라는 큰 금액과 이자 8만원은 우리에겐 그야말로 선물 같았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러다 40만원은 나를 위해 쓰기로 하고 10만원은 다시 적금, 30만원은 집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 사고 나머지 40만원은 남편과 딸아이에게 특별보너스를 줬다.  이리하여 내 수중에 꽁돈 40만 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생겼다 

요즘 딸아이가 지구 환경을 생각한다며 텀블러에 물을 갖고 다닌다. 친구가 선물해 준 예쁘고 귀여운 물병에. 물 마시고 친구 생각도 하고 일석이조란다. 이게 화근이 됐다. 

화요일 가족톡에 긴급메시지가 떴다. 딸이 동아리 모임이 있어 가는 도중, 왜인지 옆구리가 축축해(?) 불안한 마음으로 가방을 열어보니 텀블러 뚜껑이 반쯤 열려 있더란다. 옷이 젖은 건 괜찮은데 노트북이 물을 잔뜩 먹었다고 한다. 그날따라 넉넉히 마시겠다고 물도 꽉 채워가더니만... 아이가 마시기 전 이 녀석이 홀라당 다 먹어버린 거다. 상황설명을 끝낸 아이는 톡으로 묻는다. 

딸 : "이럴 땐 어떻게 해요?"
아빠 : "전원 켜지 말고 일단 물기를 닦아라."
엄마 : "되는 대로 일찍 오기 바람."
딸 : "오늘 알바라 10시에 끝나는데요."


이런~ 그러면 일찍 와도 밤 10시 30분이다. 서비스센터는 저녁 6시까지니 다음날을 기약해야 한다. 수요일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니 아이가 근처 서비스센터를 찾아놨다.

다음날 찾아간 센터, 내 앞에는 충분히(?) 수분을 보충해 표정이 풀린 노트북이 있다. 이 노트북을 본 수리기사님은 옅은 미소와 작은 한숨을 동시에 뿜어내셨다. 권해주신 자리에 앉았으나 불안한 마음에 좌불안석이었다.

도르륵 십자 드라이버가 빠르게 돌아가며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각형의 기계가 해체되었다. 노트북 안은 손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부품들의 정교한 집합체였다. 얇디얇은 노트북 속에 이렇게 많은 칩과 부품이 있을 줄이야! 정교하고도 익숙한 손놀림의 기사님이 핀셋과 드라이버로 그것들을 하나씩 떼어내셨다.  

그냥 딱 봐도 노트북 뱃속에 이미 작은 물길의 흔적이 있었고... 중간중간 하얗게 된 부분도 보였다. 노트북이 진짜로 물을 많이 먹긴 했나보다.

"부품을 다 뺐으니 깨끗한 물로 세척해서 말려야 해요. 부분적으로 하얗게 보이는 건 벌써 부식이 진행됐단 거고요. 커피나 단 음료였으면 끈적거림까지 겹쳐 말려도 부팅이 제대로 안 될 때가 많은데요. 다행히 물만 먹었으니 하룻밤 말려보고 부팅시켜 보겠습니다. 확률은 반반이고요. 상태를 봐서 본체를 갈아야 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비용은 80만 원쯤..."

헉. 80만 원. 이쯤 되면 새로 사는 게 낫지 싶은데, 딸에게 물으니 며칠 후 있을 동아리 발표회 자료가 다 노트북에 담겨있어 그럴 수도 없단다. 얼굴 표정을 풀며 애써 웃어 보였지만, 갑자기 나온 수리비를 생각하는 내 속은 타들어갔다. 

다음날 오전. 기사님에게서 본체가 다시 살아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단 물에 젖은 상태로 하룻밤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액정이 좀 심하게 부식돼 있어서 이건 갈아야 한다고. 그러면 35만 원이란다. 수리를 부탁한다 말씀드리고 다행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늦은 오후 서비스센터에 갔다. 심리적인 것이겠지만 어제보다 조금 홀쭉해진 노트북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님 말씀이 이어졌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어온다는 물 먹은 노트북 
 
물먹은 노트북은 사진과 같이 세워 말려야 합니다.
▲ 노트북 응급처치법 물먹은 노트북은 사진과 같이 세워 말려야 합니다.
ⓒ 백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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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물 먹은 노트북이 실려 와요. 이 친구의 골든타임은 빠를수록 좋답니다. 당장 서비스센터에 갈 수 없는 상황이면 우선 바로 전원을 끄고 충전기와 분리하세요.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거꾸로 세워서 말려주세요.  절대 접어놓지 마시고요! 노트북을 접어서 그대로 두면, 내부에 습기가 더 차게 되거든요." (사진과 같은 모양으로 말리면 된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럼 휴대폰은? 갑자기 노트북만큼이나 우리 몸 어딘가에 늘 붙어있는 휴대폰에 물이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여쭤봤다. 전문성 있는 기사답게 바로 답이 나온다.

휴대폰에 물이 들어갔을 때의 대처 방법. 

1. 일단 전원을 끄고 유심칩을 분리한 후 깨끗한 마른수건으로 닦아준다.
2. 충전 단자를 아래로 하여 물기를 털고 세워둔다.
3. 서늘한 곳에서 자연바람이나 선풍기로 말린다. 단 뜨거운 바람은 부품 고장의 원인이 되니, 헤어드라이기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사용하려면 찬 바람으로 말린다.
4. 그래도 휴대폰이 돌아오지 않을 땐 서비스센터에 방문한다.


만약 일반 물이 아닌 바닷물이나 음료에 빠졌다면?

1. 빨리 전원을 끄고 배터리가 분리되는 제품은 배터리를 뺀다.
2. 이물질이나 염분, 당분을 빼는 과정이 필요하니 깨끗한 물에 1~3분 정도 넣어둔다. 그렇지 않으면 메인보드가 급속도로 부식이 된다고.
3. 서비스센터를 방문한다. 바로 방문하기 어려울 땐 우선 서늘한 곳에서 찬 바람으로 말린다.


또한 요즘엔 집에서 샤워할 때 폰을 갖고 들어가는 경우가 꽤 있는데, 욕실내의 습기때문에 부품이 부식되어 기기 수명이 짧아진다고 하니 이 역시 주의하라는 말씀까지 덧붙이셨다.

6시 정각이 되기 10분전, 기사님에겐 피로가 몰려오는 시간이었을텐데 우리 모녀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다니 감동이었다. 비타민 음료를 건네며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밖에는 따뜻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노트북과 물병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준비했습니다.
▲ 노트북케이스와 물병주머니 노트북과 물병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준비했습니다.
ⓒ 백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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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길로 우린 생활용품집에 가서 노트북케이스와 물병주머니를 샀다. 앞으론 노트북도 물병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아이에게 물병 뚜껑 닫고 한 번 더 확인하라고 일러뒀다.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네 그려. 이리하여 내 꽁돈은 날개가 돋친 듯 날아가 버렸다. '5만 원밖에 안 남았다'와 '5만 원이나 남았다' 사이에서 그날 나는 후자를 택했다.

와, 5만 원이나 생겼다니 횡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올릴 것입니다.


태그:#노트북, #응급처치, #치료법,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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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차 일본어강사입니다. 더불어 (요즘은) 소소한 일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며 글로 씁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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