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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해마다 가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도시에 가면 발걸음부터 빨라진다. 사람들 사이를 비켜 가려면 몸동작이 빨라져야 한다. 은퇴하고 작년에 환갑을 맞았으나 아직은 노인이라 불리고 싶지 않다. 주위에 손주를 본 친구들이 많으니 할아버지가 맞나?

삶이 팍팍하기는 요즘도 마찬가지

올라간 김에 친한 동료들을 만나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였다. 어쩌다 자녀 혼사 얘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는 말이 나왔고, 누군가는 "애들이 결혼에 관심 없고 우리한테 얹혀 산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난 태어나자마자 아이들이 경쟁으로 내몰리고, 취직도 어려운데 그나마 평생 안 쓰고 모아 봐야 집 한 채 못 사지 않느냐, 또 아차 하면 가난에 쪼들리는 노인이 되는데 누가 하고 싶겠냐며 영리한 선택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래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미래를 걱정하기엔 내 눈의 대들보가 심각하다. 퇴직했을 때는 달콤했던 쉼이 금세 부담스러워지고, 좁은 공간에서 가족들과 장시간 부대끼는 스트레스와 곶감 빼먹듯 줄어드는 퇴직금에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나 나이 든 지금이나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 살 날은 더 길어졌다는데.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으며 계약직으로 종일 근무한다. 일없이 집에 있기 힘들어 돈을 벌러 나가지만, 급여에 상응하는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돈을 쓰고 그러니 은퇴 후에도 씀씀이를 줄이기 어렵다고 한숨짓는다. 결국 도시에선 쓰기 위해 번다.

한편 지인들의 불행은 내 가슴도 쿵 하게 만든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입원과 부고, 예상치 못한 사업과 투자 실패, 빚과 사기 등. 모두들 각자의 사연이 있다. 내게 그런 불행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는 어렵다는 말과 같다.

우리 동네 이웃들
 
첫눈 내린 정원 풍경
 첫눈 내린 정원 풍경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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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은 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호숫가 마을 중 하나다. 잔잔한 물밑엔 총 9개의 리(里), 620여 가구가 잠겨있다. 지형상 논밭이 없는 우리 마을엔 비슷한 외양의 슬라브 주택이 여덟 채 있다. 그중 둘은 주인이 가끔 들르는 빈집이다.

맞은편 호두나무집 ㅂ여사님은 상부(喪夫)하고 혼자 산다. 70대 후반이지만 활기가 넘쳐서 마을 반장 역할을 한다. 주중에는 용돈도 벌 겸 운동 삼아 농사일 품앗이를 다니고, 일요일엔 교회에 꼬박꼬박 간다. 만나면 은근히 도시에 사는 자식과 손주 자랑을 하신다.

70대 초반의 윗집 ㄱ사장님은 수도권 도심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분인데 작년에 사업을 접고 내려왔다. 아내가 시골 생활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혼자 사는 노인이 됐다. 길 끝 집에 혼자 사는 ㅇ여사님은 허리가 심하게 굽어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데 작년 여름에 구순을 맞아 떡과 수건을 집집마다 돌렸다.

맞은편 식당엔 노령의 부모를 모시고 식당을 운영하는 40대의 부부가 살고, 호두나무집 뒤편엔 50대 후반의 다문화가정에 아이 둘이 초·중학교에 다닌다. 언덕 너머, 도로 건너에도 몇 가구가 더 살지만 왕래가 없어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상주하는 여섯 가구 중에 네 집은 나를 포함, 1인 가구이며, 70세 넘은 노인이 다섯 분이다.

언젠가 이웃 몇 분이 인터넷으로 몇 가지 제품을 주문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별것도 아닌데 고맙다고 시루떡을 가져오셨다. 여름에도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드리면 꼭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시곤 했다. 일방적으로 받지만은 않겠다는 자존심이기도 하고, 주변을 챙기는 마음이 오래도록 밴 정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보내는 노년이 좋아 보인다

내가 사는 집 앞에는 노인회관이 있다. 마을 요양보호사가 매일 들러 어르신들의 안녕을 점검한다. 최근엔 운동기구도 설치했다. 지원 예산도 있어서 점심은 늘 이곳에 모여서 같이 드신다. 1년여 지켜보니 무료함을 견딜 힘만 있으면 큰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자가 있는 노인회관
 정자가 있는 노인회관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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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는 아직도 약간의 근력만 있으면 소액을 벌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풀고 일하기 위해 쉬었다면 시골에서의 일은 쉼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소일거리다. 주로 단시간의 농사일이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원하는 정보를 얻고 커뮤니티 속 신뢰를 쌓는 연결 통로가 될 수 있다. 물론 관계의 확장은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OECD가 통계를 발표한 지난 2009년 이후 우리나라는 내내 노인 빈곤율 1위라고 한다. 천만 노인의 시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와서 살면 어떨까?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다면 작은 땅을 일구거나 농사 품앗이부터 시작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시골엔 먹이가 적지만 그래도 빈 둥지는 많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를 잘 활용해서 노인들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은퇴 후 시골에 거주하는 트렌드가 번져서 그들을 위한 사업이 늘고, 청년 일자리도 생겨나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발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태그:#노인빈곤, #노인, #시골살이, #은퇴,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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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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