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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고요한 아침의 나라 Land of Morning Calm'라는 명칭의 유래를 아시나요?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퍼시발 로웰Percival Lowell이라는 미국인을 기억하시나요? 조선의 방미사절단 '보빙사'의 미국 방문을 도왔던 바로 그 사람. 그가 1884년 말 조선에 대한 수백 쪽의 책을 냈는데 그 제목이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었습니다. '모닝 캄'은 거기에서 유래된 것이죠. 
  
미국 아버님이 1886 년 초에 보내주신 신문에 책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답니다. 

"Lowell이 쓴 책에 대한 신문 기사들을 보내주셔서 뭐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유익하고도 흥미로왔답니다. 호평을 받고 있다니 기쁩니다. 로웰이 여기에 머물렀던 시간이 짧았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잘 썼군요. 그러나 큰 오류도 여럿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여성의 지위에 대한 것도  무언가 부족하군요. 차별과 고립 속에 사는 조선 여성의 신세는 통탄할 만하지요. 그러나 다른 면에 있어서는 조선인들은 로웰이 묘사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답니다." - 1886.3.13  편지

여러분, 그 책을 보시거든 조선전도를 유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일본제 조선전도를 활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지도 제목 '朝鮮全圖'의 글자체가 일인의 것입니다. 로웰의 조선전도에는 동해가 'SEA OF JAPAN', 제주도는 'QUELPART'라 되어 있군요. 울릉도와 독도는 나와 있지 않구요. 그러나 다른 지명들은 한국 고유의 지명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군요.

백두산은 'PEK DU SAN OR THE EVER WHITE MOUNTAIN'이라 표기하고 도이름과 지명, 강산의 이름들도 조선의 명칭을 반영했군요. 가장 큰 아쉬움은 당시 조선에는 탁월한 지도들이 많이 있었는데 왜 하필 일본제 지도가 사용되었는지 하는 것이죠.

조선에서 내게 가장 깊은 감명을 안겨준 건 바로 지도였습니다. 1884년 11월부터 조선의 남부지역을 여행했을 때에 내내 대동여지도를 활용했습니다. 지도의 아름다움과 정확성에 매번 감탄을 삼키곤 했죠. 그 대동여지도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미국에 있습니다.

그걸 미국 아버님에게 보냈는데 아버지가 훗날 미국 지리협회에 넘겼으니까요. 대동여지도만 훌륭한 게 결코 아닙니다. 그 외에도 경탄스러운 지도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눈을 빛내며 조선지도들을 수집하여 미국으로 보냈지요.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나요? 조선의 빗장이 열린 지 얼마되지 않았던 1885년 전후의 시기에 어떤 서양인이 조선전도에 적힌 수천개의 지명, 모든 강과 산의 이름, 모든 섬의 이름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지도 위에 영자로 옮겨 놓는 일이 가능할까요? 

마치 수도승이나 수행자가 경전을 사경하듯이 그는 조선 땅의 모든 지리 지명을 하나하나 손글씨로 지도에 새겼습니다. 아니 영혼에 새겼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에는 조선의 대지와 바다, 산과 강과 섬들이 아로새겨졌던 것입니다. 이 사람, 조지 포크 이야기입니다. 

그걸 지금 미국 지리협회 AMERICAN SOCIETY OF GEOGRAPHY 디지털 자료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게 귀찮다면 보다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한국인이 쓴 책 <1402 강리도>를 들춰봐도 될 겁니다.

1884~1885년 당시 내가  지도 위에 지명을 영자로 새긴 것은 꼭 직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다 보니 계속 빨려들었고 신들린 듯 몰아지경이 되었지요. 다 완성 되었을 때에 스스로도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조선 지도에는 주술적인 마력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402 강리도'는 천둥같은 지도입니다. 태종 2년에 만들어졌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말입니다. 그 지도는 내가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냈던 교토의 어느 고찰(西本願寺 니시혼간지)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토록 가까이 있었던 그 지도를 끝내 보지 못한 채 나는 어느날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말았죠. 

그 지도가 천둥같은 지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알고 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수북이 담겨 있더군요. 많은 사례 중에 한두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조선의 방미 사절 민영익과 서광범 및 변수와 함께 미국 군함에 승선하여 저 머나먼 조선을 향해 뉴욕항을 출항한 것은 1883년 말이었습니다.

북대서양을 건너고 지중해를 가로질러 인도양을 거쳐  조선으로 향하는 여정이었지요. 뉴욕에서 유럽의 지중해 입구까지 가려면 망망대해를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항로의  중간에 아조레스 섬이 있습니다. 망망한 항해 끝에 땅을 처음 밟은 곳이 바로 그 섬입니다. 

아조레스Azores 섬이 지구상에 생긴 이래 최초로 조선인들을 본 것이 바로 그 때였고 조선인들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 섬에 발을 디딘 것 또한 그 때였습니다. 나아가 그 섬은 대서양상에서 조선인들이 최초로 발을 디딘 섬인 셈입니다. 여러모로 인연과 유서가 깊은 곳이죠.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 섬이 1402 강리도에 표시되어 있다면 믿어지나요? 더구나 당시 어떤 서양 지도에도 그 섬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 당시 우리는 그런 사실을 꿈에서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아니 강리도라는 지도 자체를 몰랐지요. 그 당시 만일 우리가 강리도를 아조레스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더라면? 아니 지금이라도 보여준다면? 그들의 눈동자가 얼마나 커질까요?

그런 사례가 강리도에 부지기수로 담겨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하나만 더 들어 보겠습니다. 스벤 헤딘Sven Hedin(1865-1952)을 한 번 검색해 보시길. 그는 당시 대통령 몇 명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유명한 탐험 영웅이었습니다. 19세기 말까지  중앙아시아의 오지는 어떤 지도에도 정보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리상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스벤 헤딘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그 지역을 탐험하여 유적을 발굴하고 지리상의 공백을 마침내 메꾸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가 1900년 3월 28일 타클라마칸 사막(타림 분지)에서 발견한 고대 왕국 '樓蘭Loulan' 은 세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원 전에 쓰여진 중국의 역사서에 누란에 대한 언급이 나올 뿐, 언제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그 유적지는 어디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죠. 

만일 단 하나의 지도에라도 그게 표시되어 있었다면 스벤 헤딘의 누란 발견은 그토록 놀라운 일이 못 되었을 겁니다. 완전 깜깜한 공백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헤딘은 세계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죠. 지금까지도 누란을 표시한 옛지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허나, 딱 하나가 있습니다. 1402 강리도!  2022년 11월 빛을 본 <1402 강리도>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교토의 깊은 산속 공동 묘지에 묻혀 있는 내가 1402 강리도를 이렇게 소상히 알게 된 데에는 기구한 까닭이 있지요. 나는 1893년 5월 어느날 37세를 일기로 일본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었습니다. 유해는 내가 봉직했던 동지사 대학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했던 까닭에 나는 구천을 떠도는 고혼이 되었건만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찾아 오지 않습니다. 

헌데 이 웬일입니까? 2018년 5월 어느날 어떤 한국인이 찾아 온 것입니다. 내가 1884년 조선에 첫 발을 디뎠던 그 날짜에 맞춰 125년 만에 찾아온 그는 놀랍게도 조선의 막걸리를 내게 정성스레 바쳤습니다. 그 순간 모든 원한과 원망 고독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지요.

그로부터 4년 반 후에 그가 낸 책이 바로 <1402 강리도>입니다. 강리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나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를 그가 일부러  책 속에 끼워 넣었더군요. 거기 내 영혼과 강리도가 파동치고 있습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조지포크, #강리도, #누란, #아조레스, #스벤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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