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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겨울

방 하나에 이불 한채
따뜻하지 않는 방에 여섯 식구가
한이불 밑에 잠자고 있으면
소변 한번 보고 오면 내 자리는 없어져서
힘을 주워 끼워 들어가면 내 자리가 생기고
형제들도 아무 불편 없이 서로 부듬켜 안고
잠자든 그시절이 이제 생각하니 그리운 옛날

운경재단 경산시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은빛나루 문해교실'에 참여하는 82세 정미조(가명) 할머니가 쓴 시다. 
 
경북 경산 할매 할배들이 손준호 시인의 시 쓰기 강의를 듣고 시를 쓰고 있다.
 경북 경산 할매 할배들이 손준호 시인의 시 쓰기 강의를 듣고 시를 쓰고 있다.
ⓒ 박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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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나루 문해교실'은 사회적, 개인적 사정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이 생활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어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회 참여 활동으로 3년간 진행되어 왔다.

뒤늦게 한글 공부에 빠진 경북 경산시 어르신들은 대구시인협회 소속 손준호 시인의 시 쓰기 강의를 듣고 보름만에 시를 써냈다. 

정미조 할머니는 첫 시간에 손준호 시인으로부터 '시란 무엇인가, 어떻게 쓰는가?'란 주제의 특강을 듣고 두 번째 시간에 무려 다섯 편의 시를 써냈다.

정평동에 사는 장동현(가명)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 와서 시작된 결혼 생활과 자식 돌봄으로 바쁜 나날 속에서 잊고 지냈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애절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중방동에 사는 이순자(가명) 할머니가 쓴  '공부하는 날만 기다리다'라는 시도 가슴을 울린다. "해보다 더 일찌감치 눈 떠 얼른 밭일 끝내고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공부하러 간다". 중앙동에 사는 신숙선(가명) 할머니는 난생 처음 써본 '재채기'라는 시에서 할아버지와 다정다감하게 살아가는 부부애와 가족 간의 사랑을 표현했다.

중앙동에 사는 김선자(가명) 할머니는 어릴 적에 집안 형편이 안 좋아 남의 집을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썼다. 엄마와 헤어지기 전에 먹었던 조밥을 생각하며 쓴 시라는데 지금도 그리운 어머니와의 마지막 밥이 될 줄 몰랐다고 한다.
 
환토리연구소는 교육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읍·면 지역에 문해교사를 파견해 경로당 및 마을회관에서 한글교육을 하고 있다.
 환토리연구소는 교육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읍·면 지역에 문해교사를 파견해 경로당 및 마을회관에서 한글교육을 하고 있다.
ⓒ 박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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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같이 한글교실에 다니는 평산동에 사는 김사열(가명) 할머니의 글은 시어머니를 향한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했다. 늦깎이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 장동연(가명) 할머니는 글을 배우고 난 후, 어려워서 쓰지 못했던 받침 있는 글자도 마음대로 적을 수 있고, 시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행복해 하신다. 몸이 아파 약 봉지를 친구처럼 달고 다니니 마음이 우울했는데 이제 꿈과 희망이 생겼다고 활짝 웃었다.

환토리연구소는 새해에도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읍·면 지역에 문해교사를 파견해 경로당 및 마을회관에서 한글교육을 계속 펼쳐나갈 계획이다.

김지권 환토리연구소장은 "그동안 어르신들이 떨리는 손으로 열심히 공부하시며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시 쓰기를 처음 시도해봤다"면서 "효과가 매우 커 부모님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 쏟아져 나와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쓴 시는 곧 책으로 출간돼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눌 예정이라고 한다.

태그:#할매할배, #문해교실, #시창작, #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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