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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김미숙씨가 김용균 조형물의 손을 잡고 그를 쳐다보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김미숙씨가 김용균 조형물의 손을 잡고 그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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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고 그리운 그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구호가 외쳐진 5년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는 동료들이 그를 불렀다. 죽음의 책임이 있는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다는 유가족도 그를 불렀다.

"용균아, 엄마랑 네 친구들 왔다."

6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살아 있었다면 스물아홉 번째 생일(12월 6일)을 맞았을 그였다. 오전 8시 반 서울을 출발해 3시간 만에 도착한 발전소 정문에는 김용균 대신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 '김용균'이 있었다. 어머니 김미숙(김용균재단 이사장)씨는 안전모를 쓰고 배낭을 멘 김용균을 부둥켜 어루만졌다. 그의 생이 스러진 사고 현장 아래에는 직장 동료들의 국화가 한 송이씩 차곡차곡 쌓였다.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고 현장 아래에 마련된 영정 아래에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고 현장 아래에 마련된 영정 아래에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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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났지만 미안하고, 또 미안해

김미숙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태안을 찾는다. 추모제 직전 기자와 만난 그는 올해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참척의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그리움으로 괴로워했다. 스물네 살에 삶이 멈춰버린 아들을 떠올리며 김씨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들 생일날 죽은 장소에 오는 걸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용균이를 보러 오는데, 조형물만 저렇게 내버려 둬서 미안하죠."

김용균의 직장 동료들도 발전소에 모여들었다. 그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동료 이태성(발전비정규직노조 대표자회의 간사)씨는 "그 이후로도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자는 기본적인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며 "동료들은 5년간 단 한 번도 김용균을 잊어본 적 없다. 그의 외침처럼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구호에서 하루빨리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태안화력 5·6호기에서 근무하는 김일권(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장)씨는 "지난주에도 이곳에서 화상 사고가 발생했다. 발전소 노동자들은 지금도 감전, 폭발, 질식, 추락, 절단 사고를 당하며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다"며 "우리 노동자들 모두가 김용균이 되어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마땅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했다.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고 현장 아래에 마련된 영정을 향해 추모제 참가자들이 묵념을 올리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고 현장 아래에 마련된 영정을 향해 추모제 참가자들이 묵념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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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김미숙씨(가운데)를 비롯한.추모제 참가자들이 '더 안전하지 않은 노동, 비정규직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사고 현장 아래까지 행진하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김미숙씨(가운데)를 비롯한.추모제 참가자들이 '더 안전하지 않은 노동, 비정규직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사고 현장 아래까지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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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용균 조형물 앞에서 열린 추모제는 김용균 5주기 추모위원회,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공공운수노조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추모제에 모인 100여 명은 김용균이 생전 그랬던 것처럼 줄줄이 손팻말을 들었다. "중대재해법·산안법 개악 반대", "더 안전하지 않은 노동,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 팻말과 현수막의 문구가 이날 발전소에서 한목소리로 외쳐졌다.

이들은 발전소 앞에서 사고 현장 아래까지 행진한 뒤 김용균 영정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지난 2018년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에서 순찰 업무를 하던 도중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미숙씨는 추모 행렬 사이에서 국화를 내려놓은 뒤 영정을 쓸어내리며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아들이 처참히 죽어간 이곳에 오게 됐다"며 "아무도 구해줄 수 없는 어두운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2인 1조 원칙만 지켜졌더라도 용균이는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용균이를 비롯해 죽어간 수많은 고인에게 기업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명복을 빌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지난 2020년 광주 폐자재처리공장 조선우드에서 일하다 파쇄기에 몸이 끼여 숨진 고 김재순씨 아버지 김선양씨는 "용균이가 죽은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사이 수많은 법이 개정되고 또 제정됐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죽임을 당하며 안전하게 일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하다 죽어서는 안 된다고 수도 없이 외쳤지만 그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국가를 과연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종합예술단 봄날'이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종합예술단 봄날'이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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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한 추모제 참가자가 흰 현수막에 보라색 펜으로 '일하다 죽지 않게 함께 싸우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한 추모제 참가자가 흰 현수막에 보라색 펜으로 '일하다 죽지 않게 함께 싸우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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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사망' 1·2심 무죄... 7일 대법 선고

김용균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은 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법안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행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2024년 1월에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정부와 여당은 적용 시기를 2026년으로 미루려 하는 상황이다.

법안만큼 재판도 지지부진했다.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권유한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원·하청 관계자들 역시 2심에서 대부분 형량이 줄어들어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에 그쳤다. 이들은 오는 7일 오전 대법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30분께 추모제와 행진을 마치고 김미숙씨는 다시 정문 앞에 서 있는 김용균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형물 주변에 난 잡초를 골라낸 뒤 "미안하다"를 반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들을 꼭 껴안은 뒤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작별 인사를 했다.

"용균아, 엄마 또 올게. 자주 못 와서 미안해. 잘 있어야 해."

정차해 있던 버스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김미숙씨는 서울에서 출발해 서울로 되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는 내일 아침 <오마이뉴스>와 함께 자택에서 대법원으로 이동해 김용균 사망 관련 책임자들의 최종 선고를 지켜본다. 엄마는 오늘도, 내일도 아들을 대신해 싸운다.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추모제가 끝난 뒤 김미숙씨가 김용균 조형물 주변에 난 잡초를 골라내고 있다.
▲ 고 김용균 5주기 태안 현장 추모제 6일 오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추모제가 끝난 뒤 김미숙씨가 김용균 조형물 주변에 난 잡초를 골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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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용균, #5주기, #추모제, #태안화력발전소,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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