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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에서 바라본 세종시 풍경.
 호수공원에서 바라본 세종시 풍경.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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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살아오던 곳을 떠나 세종으로 이사한 지 만 4개월이 지났다. 딸네가 살고 있는 곳이라 전에도 가끔 들른 적이 있었다. 세종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세종이 마음에 들었다. 도시가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더 마음에 든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아직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나와 세종은 밀월(蜜月)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세종이 마음에 든다. 

세종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 때문이다. 국립세종도서관과 세종시립도서관이 있고, 각 동의 행정복지센터마다 도서관이 있다. 국립세종도서관과 세종시립도서관은 규모가 꽤 크고, 국립세종도서관은 호수공원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도서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각 행정복지센터에 있는 도서관 규모도 옹색한 정도는 아니다. 세종이 마음에 드는 첫 번째 이유로 도서관을 꼽은 것으로 나를 책벌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꼭 그렇지는 않다. 책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미치도록 좋아하는 독서광은 아니다. 그럼 왜? 

시간 보낼 도서관 잘 돼 있고, '뚜벅이' 보행자들 살기 좋은 도시 

세종의 도서관은 내가 갈 곳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세종으로 이사하면서 교직에서 명예퇴직했다. 3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사람에게 가장 힘겨운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갈 곳'이 없는 것 아닐까? 이 문제를 세종의 도서관이 말끔히 해결해 주었으니 세종의 도서관을 어찌 아니 좋아할 수랴. 게다가 도서관별로 쉬는 날이 달라 마음만 먹으면 거의 1년 365일 도서관에 갈 수도 있다.

세종이 마음에 드는 다음 이유는 자동차 운전하기가 나쁘다는 점이다. 분고개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운전하기 나쁜데 마음에 든다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운전하기 나쁘다는 건 자동차에게는 좋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좋을 수 있지 않겠는가. 세종으로 이사하기 전, 동료 교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보다 2~3년 후배 교사였다. 세종에 갔다 왔는데 세종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세종 도로는 대부분 제한속도가 시속 50km였다면서 사람 살기 힘든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다면 자동차가 살기 힘든 곳이지만 사람은 살기 좋은 곳 아니냐라고 웃으면서 대꾸한 적이 있다. 

세종으로 이사와 보니, 정말 운전하기 불편했다. 제한속도 50km인 곳은 그리 많지 않고 곳곳에 30km 표지판이 보인다. 차량 방지턱은 또 왜 그리 높은지. 세종에 비하면 이전 살던 도시의 방지턱은 그냥 바닥에 그려 놓은 그림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이다. 또 수시로 회전 교차로를 만난다. 요즘은 어느 도시를 가나 회전 교차로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세종은 다른 곳에 비해 회전 교차로가 월등히 많은 성싶다. 속도를 낼 수 없는 도로 구조이다. 주차 공간 또한 넉넉지 않다. 그래서 시내 어느 곳을 가야 할 일이 있는 경우 차를 몰고 가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 우선 생각해 보게 된다. 자동차가 살기 좋은 도시보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가 더 좋은 도시 아닐까?  

세종은 걸어 다니기와 자전거 타기가 참 좋다. 거의 모든 도로에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붙어 있다. 인도의 폭도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넓다. 애당초 도시 설계를 그렇게 한 듯하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도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다른 도시들이 도시를 재정비할 때 꼭 벤치마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도시마다 특성이 달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말이다. 세종 한복판을 흐르는 '제천'이라는 개울이 있다. 청둥오리가 노니는 모습과 학인지 두루미인지 모를 흰 새가 한쪽 다리로 서서 물끄러미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동차 도로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으면서 접근성이 좋아 산책하기와 자전거 타기에 참 좋다. 아, 그늘이 없다는 게 한 가지 흠이기는 하지만.

세종에는 아이들이 참 많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같은 라인에 있는 36가구 중, 아이가 있는 가구가 아닌 가구보다 더 많을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아이들을 만나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비율보다 더 높은 데서 미뤄 짐작해본 것이다. 어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인사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아이는 엄마가 인사하라고 해도 부끄러워한다. 모두 모두 어찌 그리 귀엽고 예쁜지. 또 공원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함께 나온 아이들을 흔하게 마주친다.

아이들은 병아리 떼처럼 종종종거리며 재잘재잘 댄다. 내 입가에 저절로 번지는 미소는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한다. 평화롭고 정겨운 풍경이다. 예전에 살던 도시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런 풍경으로 우리나라 전체가 꽉 차면 참 좋으련만,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암울한 현실이다.

나를 놀라게 했던 장면, '보행자 우선'

세종으로 이사 와서 한 달쯤 되었을까?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차로에서 오던 차가 횡단보도 앞에서 살포시 멈춘다. 의아했다. 건너는 사람이 없었다. 눈을 살짝 돌려 보니 한 사람이 횡단보도 한 걸음쯤 뒤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맞은편 차로의 운전자는 그 사람을 건너게 하려고 멈춘 것이다. 내 머릿속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30년 동안 산 예전 도시에서 거의 목격하지는 못했던 광경을, 세종에 온 지 한 달 만에 목격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은 세종 여기저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 모든 차량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차량이 멈춰 섰다. 마치 유럽 어느 도시의 풍경인 듯하다. 이런 자동차 문화가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도, 사람이 보이면 차를 멈춰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는 했다. 예전 버릇이 남아 있는 터라 아직까지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매번 그러지는 않는다. 차츰 멈추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 않나 싶다.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일이다.

세종이 좋은 까닭을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아직 세종에선 좋은 점만 보인다. 살다 보면 언젠가 세종의 나쁜 점이 보일 터이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진짜 세종 시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대상의 좋은 점만이 보인다면 그 대상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다만 이제까지 이야기한 세종의 좋은 점들이 전국적으로 퍼지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그러면 좀 더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듯해 품어 보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세종, #도서관, #자동차운전, #아이들,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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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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