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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죄를 전하는 언론사 유튜브 영상의 제목이나 썸네일은 사이버 렉카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흉악범죄를 전하는 언론사 유튜브 영상의 제목이나 썸네일은 사이버 렉카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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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공포와 불안감이 높아졌다. 언론은 범죄 예방과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두고 사건을 보도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범죄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며 공포와 불안감을 부추기는가 하면 범죄와 밀접한 관련이 없는 피의자 신상까지 자세히 전했다. 또한 범죄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용어를 보도에 주로 사용했다.

'보지 마'라는 제목으로 클릭 유도하는 역설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7월 21일 조선일보는 '3분간 광기의 칼부림…신림 살인마, 뛰어다니며 4명 찔렀다' 제목의 온라인 기사로 범죄의 잔혹성을 부각했다.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유포"되며 시민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온라인뿐 아니라 이튿날 신문 지면에서도 '대낮 칼부림…마주치는 시민들 찔렀다' 제목의 기사로 같은 내용을 전했다.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도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과 썸네일의 영상들이 주를 이뤘다. YTN은 '"사람 막 찔러요"…신림동 흉기 난동 목격자의 '충격 증언'' 제목의 영상으로 범죄 상황을 전했다. SBS는 '1명 사망·3명 중상…대낮 서울 신림동서 흉기 난동' 제목의 영상으로 사건을 건조하게 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썸네일 화면에 사용한 제목은 '대낮 신림동 충격의 칼부림 "여유 있게 걷더라"'이다. 또한 SBS는 '"보지마, 끔찍해" 잔혹한 범행 장면이 그대로…CCTV 무차별 확산' 제목의 영상도 올렸다. 썸네일 제목도 '"끔찍해, 괜히 봤어…" 마구 퍼지는 신림동 CCTV'이다. 제목만 보면 CCTV 확산을 우려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릇된 호기심을 자극해 클릭 수를 유도했다.

범죄 보도는 최대한 건조해야 하며 혐오감과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유튜브라고 해서 이러한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흉악범죄를 전하는 언론사 유튜브 영상의 제목이나 썸네일은 사이버 렉카1)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범죄와 관련 없는 피의자 신상을 자세히 전하기도 했다.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다룬 MBC 〈실화탐사대〉 8월 24일 방송에서는 피의자의 중학교 졸업사진과 카카오톡 프로필이 공개됐다. 동창생 A씨는 피의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제작진에게 보여주며 "'얘 왜 이러지?' 싶었다"고 말했다. 공개된 카카오톡 프로필 이미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으며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는 일본어로 '역사를 바꾸는 프로그램 개발'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사건과 직접 관련된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

해당 방송 이후 피의자의 졸업사진과 카카오톡 프로필을 내걸고 클릭을 유도하는 온라인 기사가 쏟아졌다. '팔짱 끼고 멍하니…'서현역 흉기난동' 최원종, 졸업사진 공개됐다'(파이낸셜뉴스), '욱일기 배경+노무현 대통령 뜬금…'서현역 흉기난동' 최원종 카톡 프사'(뉴스1), '"얘 왜 이러지?"…동창 놀라게 한 '서현역 흉기난동' 최원종 프사'(머니투데이), ''노무현+욱일기' 분당 흉기난동 범인의 심상찮은 카톡 프사…졸업앨범도 떴다'(서울경제) 등이다.

범죄와 관련 없는 피의자 신상을 자세히 전하는 것은 보도에 필요가 없을뿐더러 피의자의 기이함만 강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피의자의 기이함이 강조되면 흉악범죄의 근본적 문제는 외면한 채 '피의자 신상 파헤치기'로만 여론이 흐를 수 있다. 게다가 '흉악범죄는 피의자의 기이함에서 발현되기 때문에 예방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까지 불러올 수 있다.

10년째 되돌이표 찍는 범죄 보도

또한 언론은 불특정 다수 대상의 흉악범죄를 보도하며 주로 '묻지마 범죄' 또는 '무차별 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용어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며 결과적으로 시민의 공포와 불안감을 지나치게 증폭시킬 수 있다. 또한 범죄의 동기와 대상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측면을 부각해 예방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어렵게 한다.

경찰이 2022년 1월 '이상동기범죄'라는 용어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일부 언론이 '이상동기범죄'를 대신 사용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상동기범죄' 역시 '뚜렷하지 않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동기를 가지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벌이는 흉악범죄'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기존 용어들과 큰 차이가 없다. 범죄의 배경이 된 사회구조적 원인은 배제한 채 피의자 신상이나 범행 수법 등 피의자 개인의 문제와 자극적 요소만 강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에 제기되었다.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상당수 언론은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후 시사IN이 ''묻지마 범죄'는 이 세상에 없다' 제목의 기사에서 이를 지적했다. '묻지마 범죄' 용어 자체가 본질을 흐릴 수 있고 범죄 원인 분석에서 놓치는 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이번에도 상당수 언론은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건 이후 허프포스트코리아는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가 부적절한 이유' 제목의 기사에서 용어 사용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 뒤에도 잘못된 용어 사용과 그에 대한 지적은 되풀이됐다.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상당수 언론은 또다시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한국기자협회보는 '관행처럼 쓴 '묻지마' 수식어, 뜻은 제대로 알고 쓰나요' 제목의 기사에서 "'묻지마 범죄'란 관행적인 용어로 사건 성격을 규정하는 상당수 보도에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2022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동기범죄'라는 용어도 이미 해당 기사에서 먼저 등장했다.

즉, 언론은 스스로 '묻지마 범죄' 용어 사용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성의 목소리는 잠시뿐이고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또다시 '묻지마 범죄'를 사용하는 보도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범죄 보도 행태는 이처럼 되돌이표를 찍는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6항은 "범죄·폭력·동물학대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문보도가 아니더라도 언론이라면 응당 지켜야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행태는 반복된다.
 
흉기 난동 사건 기사 제목으로 ‘묻지마’ 용어가 사용된 사례들
 흉기 난동 사건 기사 제목으로 ‘묻지마’ 용어가 사용된 사례들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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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보도를 끝내기 위해 우리가 묻고 따지자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시민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변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를 통한 뉴스 이용률은 증가하는 반면 TV와 종이신문을 통한 뉴스 이용률은 감소하고 있다. 지금 시민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창구는 주로 포털 등의 검색 엔진 사이트, 이슈 큐레이션 등의 뉴스 수집 서비스,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이다.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기존의 구독자를 잃어버린 전통적 언론사들은 포털과 유튜브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생산해 조회수 경쟁을 벌인다. 흉악범죄 보도 역시 예외일 수 없기에 잘못된 보도가 반복된다. 윤리기준이나 가이드라인도 조회수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조회수 경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들은 시민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과 차별성을 갖춘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건강한 시민의 뉴스 소비 창구로 거듭나야 한다. 물론 상당수 언론이 양질의 콘텐츠 생산보다는 당장 조회수 경쟁을 통한 수익 창출에 급급한 현실 속에서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언론의 자구책이 아니라 법적 규제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를 언론 스스로 바로잡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시민의 미디어 리터러시2)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언론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요구하는 시민이 많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클릭의 유혹을 누르고 좋은 기사를 읽으면서 범죄의 원인과 예방 대책을 고민하는 시민이 제대로 된 범죄 보도를 만들 수 있다.

1) 화제가 되는 사건들에 대한 자극적 영상을 쏟아내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를 가리키는 신조어. 사설 견인차처럼 사건·사고가 나면 빠르게 몰려들어 이득을 취한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2) 다양한 매체를 이해하며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덧붙이는 글 | 글 박진솔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2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범죄,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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