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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남편이 시킨 택배다.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데, 남편이 "저거 참 맛있겠다. 요즘 날씨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네. 살까"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바로 핸드폰을 가져다 주문한다. 이번에 주문한 것은 알탕 밀키트였다. 동태와 알, 육수, 매운 매운탕 양념이 들어 있어서 바로 끓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평범한 밀키트가 미나리를 넣으니 훌륭한 알탕이 되었다.
▲ 알탕 매운탕  평범한 밀키트가 미나리를 넣으니 훌륭한 알탕이 되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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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퇴근하며 마트에 들러서 미나리 한 단도 사 왔다. 밀키트 한 봉지는 적을 것 같아서 전골냄비에 알탕 두 봉지를 넣고 육수를 부었다. 냉장고에 있는 호박과 무도 납작납작 썰어 넣었다. 보글보글 끓을 때 매운 양념을 넣고 마늘과 미나리를 넣었다. 미나리 향이 참 좋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미나리를 넣으니 정말 유명한 매운탕 집에서 파는 알탕처럼 고급스러운 음식이 됐다. 마지막에 썰어 놓은 대파를 넣으니 먹음직스러운 알탕 매운탕이다. 
 
고온 멸균해서 보내준 꼬막이라 뜨거운 물에 해동하니 바로 꼬막 무침이 되었다.
▲ 꼬막 무침 고온 멸균해서 보내준 꼬막이라 뜨거운 물에 해동하니 바로 꼬막 무침이 되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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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냉장고에는 남편이 홈쇼핑에서 주문한 밀키트가 많다. 남편은 스스로 서 세프라고 하며 음식 만드는 것을 즐거워한다. 오늘은 알탕과 꼬막무침이다. 꼬막도 홈쇼핑에서 주문한 것인데 껍질을 벗기고 고온 살균한 것이라 뜨거운 물에 해동한 후에 바로 초고추장에 무치면 맛있는 꼬막무침이 된다. 그냥 파만 송송 썰어 넣고 초고추장과 레몬즙만 조금 넣어 무쳐서 알탕과 같이 먹었다. 나는 꼬막 비빔밥을 좋아해서 밥에 꼬막무침을 넣어서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외식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둘 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외식을 많이 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면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먹고 치우는 시간도 만만찮기에 주로 퇴근하면서 간단하게 사 먹고 들어갔었다. 식구도 둘이다 보니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돈도 적게 들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먼저 퇴직하여 집에 있다 보니 텔레비전 시청이 많아졌다. 요즘 채널을 돌리다 보면 홈쇼핑을 건너뛸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저녁 시간에는 왜 그리 먹는 것이 많이 나오는지, 보는 것마다 다 맛있어 보인다. 홈쇼핑 쇼 호스트는 언어의 마술사라 방송하는 것마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나둘 사서 냉동실에 쌓아놓고 꺼내서 요리해 먹다 보니 남편의 음식솜씨가 늘었다.
  
감기에 걸린 우리 부부는 따끈한 도가니탕으로 몸이 따듯해졌다.
▲ 도가니탕 감기에 걸린 우리 부부는 따끈한 도가니탕으로 몸이 따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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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이것저것 응용하게 되어 원래 제품보다 훨씬 맛있는 요리로 변신했다. 내가 맛있게 먹자 남편도 요리에 재미가 붙어서 요즘 우리 집 주방의 주방장은 남편인 서 세프가 됐다. 나는 상 차리고 치우는 보조가 되었다. 얼마전에는 냉동실에 있는 도가니탕을 꺼냈다. 요즘 둘 다 감기에 걸려서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는데, 도가니탕에 파를 듬뿍 넣어 오래 끓여서 먹으니 국물이 뜨거워 목이 시원해졌다. 얼마 전 담근 총각김치가 맛있게 익어서 함께 먹으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남편이 홈쇼핑에서 주문한 요리 재료, 매일 꺼내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 우리집 냉동실의 다양한 식품 남편이 홈쇼핑에서 주문한 요리 재료, 매일 꺼내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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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냉동실에는 알탕과 꼬막 외에도 부대찌개, 안동 간고등어, 떡갈비, 간단하게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핫도그 등이 있다. 기본으로 김치와 파김치, 총각김치, 오이지무침, 멸치볶음, 구운 김 등이 있어서 그냥 하나만 꺼내서 요리하면 한 끼는 충분하다.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점심은 직장에서 먹다 보니 남편과 함께 먹는 식사는 저녁 한 끼뿐이다. 저녁을 가볍게 먹어야 한다지만, 우리 집은 저녁을 가장 잘 먹는다. 그것도 남편이 즐겁게 요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메뉴도 늘 남편이 정한다.

벌써 주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우리 집 서 세프가 무슨 음식을 해줄까 기대된다. 아마 주말이니까 고기를 사서 구워 먹고 부대찌개 정도 해 먹지 않을까 싶다. 어쩜 나 몰래 다른 밀키트를 주문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홈쇼핑 사랑으로 저녁 식사마다 우리 집은 유명한 맛집이 된다. 냉동실에 가득한 밀키트가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유명 세프가 본인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것이라 우선 믿고 구입해 본다.
▲ 홈쇼핑에서 남편이 주문한 제품 유명 세프가 본인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것이라 우선 믿고 구입해 본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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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에 나오는 밀키트는 대부분 유명 세프가 자기 이름을 걸고 파는 것이라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사 먹어보고 맛있으면 다음에 재주문을 한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런 것은 다음에 다시 주문하지 않는다. 이런 고객의 마음을 알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벽한 제품을 만들 거다.

요즘 요리하는 것이 참 편하다. 요리학원 다니지 않아도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동영상으로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재료와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재료 다듬는 것까지 세밀하게 알려준다. 요리에 관심만 가지면 누구나 훌륭한 요리를 할 수 있다. 방송에도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나니 누구나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 가질 수 있다.

요리 재료를 사러 가지 않아도 손 터치 한 번으로 새벽에 문 앞까지 배달해 준다. 사러 다니는 수고가 필요없다. 다양한 맛간장과 소스 등도 다 만들어 보내주니 얼마나 쉬운가. 요리에 꼭 필요한 재료를 비교하여 최적의 재료도 구입할 수 있다. 요리를 쉽게 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도 다 먹자고 하는 일이다.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저녁에 가족과 맛있는 음식 만들어 먹는 것이 행복이다. 남편이 만든 요리를 앞에 두고 "임금님 수라상보다 훌륭하다"고 한다. 그 말에 남편이 어깨를 으쓱한다. 아마 내일도 냉장고에 있는 밀키트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할 예정입니다.


태그:#홈쇼핑, #밀키트, #남편, #서세프, #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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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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