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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매일 아침 습관처럼 FM 클래식 채널을 튼다. 오전 9시, 귀에 익은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온 뒤 DJ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엄마가 우울해서 빵을 샀어"라고 하면 어떤 아이는 "왜 우울했는데?"라고 묻는 반면 어떤 아이는 "무슨 빵을 샀어?"라고 묻는다고. MBTI에 관한 이야기였다. 

"왜 우울했는데?"라고 묻는 아이는 상대의 감정에 중점을 두는 반면, "무슨 빵을 샀어?" 하고 묻는 아이는 사실에 더 관심을 둔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고 그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 뒤이어 방송을 듣고 바로 실험해 본 엄마의 웃픈 사연이 전해졌다. "우리 집 아이는 '빵 어디 있어?'라고 묻네요. T인가 봐요." 

아이가 전자에 속하는지 후자에 속하는지 궁금한 게 엄마들의 마음이려나. 어떤 사람이 사실에 집중하는지 감정에 공감하는지 그것부터 확인하려는 게 사람들의 심리일까. DJ가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다름을 알아채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일 테지요." 

DJ의 말에 백 번 공감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MBTI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유형 분류로 상대를 다 안다고 결론짓는데 쓰이는 건 아닐까. 상대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 아니라 이해의 결론으로 삼는다고 느끼는 건 나만 그런 걸까. 

MBTI, 이해의 시작인가 끝인가

사람들은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장소와 상대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과 심리상태에 따라 사람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집에서의 나와 회사에서의 나, 특정 모임에서의 나는 미세하게 다르다. 그 사람의 강한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더라도 관계와 상황에 따라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른 방향의 내가 발현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검사 결과가 ESTP 거나 ISTP라고, ENFJ나 INFJ라는 사실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같은 ESTP더라도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자라온 환경과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말과 행동, 생각은 무한대로 달라진다. 성격 유형만이 아니라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여 관계의 역동은 형성된다.    

한 사람의 성격에서 기본적인 틀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과 상대에 따라 자신이 가진 성향의 강도는 꾸준히 변모한다.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도 자신보다 더 내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조금 외향적인 위치에 놓이고 즉흥적인 사람이더라도 자신보다 더 즉흥적인 사람과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무언가를 챙기고 준비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내향적인 나도 오랜 친구를 만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이 상기되어 끝없이 말을 쏟아 놓는 것처럼. 

내향형인 내 안에도 희미한 외향성이 존재한다. 나는 강력한 N형이지만 어떤 순간에 S형 기질이 발현되기도 하고 부정할 수 없는 F형이지만 T형의 면모를 발휘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편하게 느껴 주로 사용하는 성격이 표면적으로 강력하게 드러나지만 그 반대 성향 또한 우리 내면에 싹을 틔운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신종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팬데믹을 거치며 나의 I성향은 강력해졌지만 작년에는 E성향이 고개를 들어 여러 모임을 기웃거렸다. 용기 내어 글쓰기 모임과 책 읽기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다양한 관계를 엮었다. 1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도 다르고 하는 일도 제각각인 사람들을 만났다. 내 안의 조그만 E성향이 활약한 덕분에 작은 방에 고여있던 나의 생각과 사고는 서서히 넓어지고 그만큼 삶도 풍요로워졌다.  

MBTI 검사는 융(Carl Gustav Jung)의 성격 유형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융은 서로 반대되는 특성인 직관과 감각, 그리고 사고와 감정이라는 기능과 내향형, 외향형이라는 두 가지 태도의 조합으로 유형을 나누었고 양 극단에 있는 성격의 통합을 강조했다.

지나치게 한쪽의 성격만 고수할 때, 무의식에서 반대의 성향이 억압되고 억압된 성향은 열등한 기능이 되어 반대 성향의 사람을 비난하거나 질투하는 식의 부정적 양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그래서 융은 열등한 기능을 살리고 발전시켜 성격을 통합하면서 성숙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심리학자 이지안의 <다중인격 같은 나, 어떤 사람인 걸까> 참조). 

열등한 성격과의 통합이 성숙의 길
 
우리는 사지선다형 질문의 한 가지 답처럼 납작하고 단순할까?
 우리는 사지선다형 질문의 한 가지 답처럼 납작하고 단순할까?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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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 결과로 나와 타인을 단정 짓는 대신 융의 이론을 좇아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숙시키는 도구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감정형인 내가 책을 읽고 논리적으로 글을 써보려 노력하거나 내향적인 내가 외향적인 누군가를 만나 그 영향으로 용기 내지 못한 일에 도전해 보는 식으로.

타인을 대할 때도 드러나는 성향만 대충 훑지 말고 내재된 반대 성향에 흥미와 관심을 기울여 볼 수 있겠다. 조금 더 입체적이고 복합적으로 상대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관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주지 않을까. 

'역시 T스러워', 'F라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틀에 가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화에 MBTI 이야기가 오르면 또 시작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빠르게 상대를 분류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아닐까.

나도 타인도 단순하게 이해해 버리고 쉬워지고 싶은 욕망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지선다형 질문지의 정답처럼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납작하고 단순한 사람들이 아닐 테니까.  

MBTI를 묻는 사람들에게 순순히 답을 주지 말아볼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저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인데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주관식으로 저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해 보고 싶다.

나만의 주관식 답안도 적어 보고 싶다. 변화하는 역동체로서 나를 이해하고, 열등한 성격을 통합하며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의 성숙이란 평생에 걸쳐 해야할 일이다. 역시 F야, T라 어쩔 수 없어, 하며 체념하는 대신 어떻게 발전시키고 성숙할지 고민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MBTI, #나라는사람의역동성, #성격유형, #성격의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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