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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주제로 한국 개신교의 4.3관련 연구와 운동 현황, 향후 과제를 점검하는 학술 토론회를 지난 10월 31일 개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강연홍)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해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이 토론회는 2024년에 출범 10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한국교회가 남긴 발자취들을 돌아보고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정리·평가하는 자리였다.

앞서 2019년에 '기독교 사회운동의 정체성'을, 2020년에는 '5·18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2021년에는 '냉전과 한국기독교' 등을 진행하며 한국 기독교가 계승할 유산과 과제를 조명했다.

김종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개신교 안에는 제주4・3을 '폭동'으로 바라보는 교회와 학자들이 다수 있다. 반면, 1980년대를 기점으로 제주4・3을 '항쟁'으로 보는 시선 역시 교계에서 상당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양 입장은 서로 간의 갈등 극복을 위한 대화나 이념을 떠난 학문적 접근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한국교회가 냉전과 이념대립의 담을 넘어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고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람으로 학술회의를 준비했다"라고 밝혔다.

'불교계 제주4.3 피해 연구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한 한금순 박사(제주대학교)는 2004년과 2023년 두 번의 조사를 통해 "제주 4.3시기 80개 사찰중 토벌대에 의해 47개, 무장대에 의해 2개 사찰이 피해를 입었으며, 총살 14명, 수장 1명 등 23명이 희생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교계는 출가로 속가와 인연이 없어 유족을 찾기가 어려운데다 승려의 경우 사찰에서 스승과 제자를 두어 속가의 가족과 같은 역할을 하고 담당하고 있다며 불교계 4.3 활동 관련된 유적지 지정과 관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인주 봉성교회 담임목사는 '4·3사건 속의 개신교'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가해자 모두가 혹은 대부분 개신교 신앙인이었다는 점을 수긍하기 어렵다"면서도 "구성원 중에 기독청년이 매우 적다고 해서 교회의 윤리적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무자비한 폭력 행사를 개신교 신앙이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반성하고 회개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회의에서 발제하는 김인주 목사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학술회의 ‘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회의에서 발제하는 김인주 목사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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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제주4.3을 강경 진압하는 박진경 연대장을 사살한 문상길(1926~1948) 중위에 대해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는 환경에서 성장한 민족주의자로 주민을 보호하여야 할 군대가 민간인 학살을 서슴없이 진행하는 것을 보자, 이를 멈추어야 한다고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고 밝히면서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의 첫 군사재판의 첫 사형수가 개신교인"이라고 소개했다. 

또 문상길 중위의 군사재판 최후 진술을 소개한 책자 <4・3과 인물>(김관후, 2018)을 인용해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 군정장관 딘 장군의 총애를 받은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중략)......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느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하여 주기를 부탁한다"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그가 개신교인으로서 정의 실현을 위한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 목사는 제주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서북청년단과 관련해서도 "한경직(1903-2000) 목사가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요.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요.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한경직 목사> 김병희, 1982년)'라는 말은 매우 과장되게, 자기 중심적인 이해를 드러낸 것으로, 이를 근거 삼아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4・3 현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였는지 결정한 이승만과 조병옥, 그리고 미군정의 다수가 개신교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제주인이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서북청년단을 개신교와 연관시켜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북청년단 혹은 폭력 조직은 교회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제주4.3연구가인 박찬식 제주자연사박물관 관장은 "4.3당시 제주 천주교회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이는 미국 군인들과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신도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관장은 "제주천주교는 4.3을 공산분자들의 폭력사태로 파악했으며, 주민 1만5천 명이 희생된 원인도 한라산 무장대의 습격에 의한 것으로만 인식했다. 교회는 신도들의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교회 밖 주민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막아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4・3국면을 처음부터 유심히 관찰해 온 제주본당의 스위니 신부는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경찰의 폭력과 테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라고 밝혔다.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개신교 목사 1명, 신도 12명이 무장대에, 4명이 토벌대에 희생됐음에도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공산폭동론에 동조했고, 조남수 목사의 선무 활동 공과와 편향된 저술, 기독교와 서북청년회의 연계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개와 갈등극복을 통해 평화와 인권, 화해, 정의의 가치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회의에서 질의하는 참석자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학술회의 ‘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회의에서 질의하는 참석자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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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회의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학술회의 ‘개신교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회의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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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개신교, #제주43, #학살, #서북청년단, #미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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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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