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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고전문구 소개에 앞서 먼저 말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에 눈이 감겨 있거나, 입이 없거나 하는 캐릭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산리오의 헬로키티, 영아트의 베이비캣, Mr.k의 발렌 등. 뭔가 공감이 되지 않는 느낌이어서였는지, 감정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는지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키티나 발렌을 좋아할 때에도 나는 그들에게 정이 가지 않아 멀리하곤 했다. 
 
슬리핑코 우산
▲ 슬리핑코 우산 슬리핑코 우산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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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은 캐릭터를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들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고전문구를 모으다보니, 가치가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나의 최애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들이 몇 개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크면서 점점 알게 된다. 취향은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나는 선천적인 건강 문제로 인해 가을이 되면 코피를 거의 매일 흘린다. 이제는 익숙해져 불편할 것은 없지만, 감기 기운과 겹쳐서인지, 올 가을이 특별히 그런 건지 요즘은 코피를 흘리고 난 다음에는 너무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겪게 된 과수면은 내 생활에 불편을 가져왔다.

부모님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어릴 때도 낮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만큼 밤에 푹 자고 낮에 컨디션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코피가 나기는 하지만 체력은 정말 좋지'라고 자부할 정도였는데, 어마어마한 격차의 갑작스러운 나의 변화, 혹은 노화는 나를 더욱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버스에서도 너무 잠이 와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잠깐만 앉아 있어도 고개를 숙이고 졸게 된다. 내가 왜 이러나 싶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 머릿속에 하나의 캐릭터가 떠올랐다.
 
슬리핑코 수첩
▲ 슬리핑코 수첩 슬리핑코 수첩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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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의 이름은 슬리핑코. 이름 그대로 쿨쿨 자고 있는 토끼이다. 몽실몽실한 생김새의 슬리핑코는 보는 사람도 졸리게 만드는 모습이다. 어릴 때는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재미가 없어 보여서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 신발장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고전문구 슬리핑코 우산에서 쿨쿨 자는 캐릭터가 꼭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이긴 하지만 어린이들이 뽀로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들과 신체비율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튼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는 어린이와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슬리핑코는 낮잠을 자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지금, 시도때도 없이 쿨쿨 자는 어른이 된 나는 그 작은 토끼에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 이 슬리핑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취향이 변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때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것도 나의 노화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상황 변화의 이유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어른스럽게 이 변화를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앞서 다른 기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동네 근처에는 바른손꼬마또래 매장이 있다. 슬리핑코는 바른손꼬마또래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이고,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간 관심이 없던 세월이 무색하게 갑자기 슬리핑코의 매력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말 그대로 널부러져 자고 있는 모습,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나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뒤늦은 입덕의 단점은 '내가 왜 이걸 몰랐지?', '내가 이걸 왜 놓쳤지?' 하고 나를 끊임없이 책망하게 되는 것이고, 장점은 발견할 매력과 상품과 일러스트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미 좋아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길들을 향유할 수 있다.
 
슬리핑코 6공 다이어리 속지
▲ 슬리핑코 6공 다이어리 속지 슬리핑코 6공 다이어리 속지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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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지간한 캐릭터는 줄줄 꿰고 있는 나이기에 새로움을 느끼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슬리핑코 6공 다이어리 속지, 슬리핑코 미니 쇼핑백, 슬리핑코 메모판을 찾으며 오랜만에 새로운 것을 찾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취향이 변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더 재밌게 만들어주기 위해 필요한 성장이 아닐까. 내가 변하면서 나와 달랐던 것들이 나와 같아져서 좋아지기도 하고, 내 마음이 넓어져 그들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나의 노화로 인해 얻게 된 변화는 슬프지만 오랜만에 깨달음과 즐거움을 얻게 된 것은 기뻤다. 앞으로 또 어떤 캐릭터들이 내 마음에 들어올지. 기대가 되는 가을날이다.

태그:#고전문구, #바른손, #슬리핑코, #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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