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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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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정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국가 살림을 가정 살림에 비유해서 이해하는 버릇 때문에 생긴다. 가정 살림의 원칙은 간단하다.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릴 수 있고 수입이 줄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원칙은 정반대다. 내수가 안 좋아서 세수입이 줄면 오히려 지출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돈을 안 쓰면 경기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 생산이 줄고 생산이 줄어 다시 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은 국가의 지출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거꾸로 경기가 과열돼 세수입이 늘면 정부가 지출을 줄여야 한다. 요는 경기조절을 위해 국가지출을 가정 살림과 정반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리플 위기의 진앙지는 '정부'였다
 
2008년 이후 소비가 감소한 분기의 경제 상황 비교
 2008년 이후 소비가 감소한 분기의 경제 상황 비교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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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가 안 좋다고 한다. 올해 2분기 소비는 전 분기보다 무려 0.7%나 감소했다. 투자와 수출도 각각 0.1%, 0.9% 감소했다. 이렇게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위기'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4분기 이후 3개 부문이 모두 감소한 분기는 처음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누군가 이 위기를 끝내야 한다. 누가 끝낼 수 있을까? 가뜩이나 수입이 줄어든 민간부문이 내수를 살리겠다는 충정으로 지출을 확대할 수 있을까? 당연히 정부가 끝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감소할 때 정부소비와 정부투자는 증대됐다. 당시 민간소비는 3.8% 감소했지만 정부소비가 2.8% 증가했고, 전체 소비 감소가 -2.4%에 그치도록 막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민간투자가 4.9% 감소할 때 정부투자가 1.6% 증대돼 전체 투자 감소 수준이 -3.8%에 그치도록 떠받혔다.

그러나 2023년 2분기 소비와 투자 감소는 민간이 아니라 정부발 위기다. 민간소비 감소는 -0.1%에 불과한데 정부소비 감소가 무려 -2.1%다. 정부소비 감소가 전체 소비 감소 -0.7%의 주범이다. 투자 감소는 더 극적이다. 민간투자는 0.1% 상승했는데 정부투자가 1.3% 감소해서 전체 투자 감소가 음수가 됐다.

내친김에 2008년 이후를 살펴보면, 소비가 줄어든 분기는 5개 분기에 불과하다. 금융위기와 코로나 위기를 제외하고는 소비가 줄어드는 일은 사실상 없다. 다만, 2018년 1분기에 소비가 정체한 적(-0.03%)이 단 한 번 있었다. 이때도 민간소비(-0.1%)와 민간투자(-5.7%)가 감소했지만, 정부소비(0.3%)와 정부투자(9.9%)는 증대해서 경기를 떠받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2008년 정부는 트리플 위기 상황에서 정부지출과 정부투자 증대로 소비와 투자 감소를 막았다. 그러나 2023년 2분기에는 민간소비와 민간투자는 거의 줄지 않거나 오히려 다소 증가했다. 정부소비와 정부투자의 급격한 감소가 위기의 진앙지가 됐다. 2023년 현재 소비·수출이 줄어들어 경기가 좋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지출을 줄인 이유는 '재정건전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정책임성과 재정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다니
 
지난 6월 28일 각계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 대응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재정 확대 및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각계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 대응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재정 확대 및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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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고 홍보한다. 이때 말하는 '정상 예산안'은 '건전 예산안'과 동의어다. 벌써 세 번째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아직도 '과거의 비정상' 운운하며 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이 볼썽사납다. 그런데 과연 국가 예산이 과거에는 불건전했다가 이제야 건전해지는 것인지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취임해서 첫 추경을 편성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인 재정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결산 결과는 역대급 흑자로 24조 원이나 남았다. 2018년에는 더욱 의지를 불태웠으나 사상 최고 수준의 31.2조 원 흑자를 달성했다. 2019년 예산은 드디어 나름 적극적 재정 운용을 꾀했고 그 해 재정수지는 12조 원 적자였다. 그러자 당시 야당과 언론은 '곳간이 거덜 났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수지를 들여다보자.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취임 후 25조 원의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을 포함해 62조 원의 역대 최고 규모 추경을 단행했다. 그 해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64.6조 원으로 역대급이었는데 이에 추경이 한몫했다는 의미다.

올해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4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며 내년도 재정수지 목표치는 -44.8조 원이다. 즉, 2019년 재정수지가 -12조 원일 때는 곳간이 거덜 난다고 난리를 쳤는데 내년도 -44.8조 원의 예산안은 건전재정이라고 홍보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vs 윤석열 정부 재정수지 상황
 문재인 정부 vs 윤석열 정부 재정수지 상황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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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23년 예산안을 놓고 "건전재정과 따뜻한 복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자랑했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도 어렵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트리플 위기의 주범이 될 정도로 정부지출을 줄이면서도 수십조 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해 불건전 재정을 이룩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렇게 '재정책임성'과 '재정건전성'을 모두 놓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감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023년 법인세율을 낮추면서 "법인세율을 낮춰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기적의 논리를 폈다. 법인세율을 내리면 기업 투자가 늘고 내수가 좋아져서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율을 내렸을 때 세수가 줄지 않는다고 증명한 실증연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당장 기재부도 추 장관의 말을 부정한다.

기재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법인세율 인하에 따라 향후 5년간 법인세수는 약 28조 원 감소한다. 다른 감세 조치까지 반영하면 5년간 세수가 60조 원이 넘게 줄어든다고 기재부도 인정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5년간 74조 원이 줄어든다고 봤다. 그러나 이후에 정부는 반도체 등 세금 감면을 추가 확대했다. 이 효과까지 따지면 향후 5년간 80조 원 이상의 세금이 줄어든다. 국가의 지출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고 재정건전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감세 정책은 달콤하다. 아무도 세금을 내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금이 줄어들어 재정지출 여력이 떨어지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없다. 이미 반도체 등 국가경쟁력이 줄어들었는데 이 와중에 내년 R&D 지출이 많이 줄었다. 산업재해 노동자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이고 출생률 최저 기록은 매년 갱신된다. R&D 지출을 늘리고 싶다. 산업재해, 노인 빈곤, 저출생 관련 예산에도 돈을 더 쓰고 싶다. 이런 사업을 하려면 지출을 늘려야 하고 지출을 늘리자면 세금을 더 내거나 부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달콤한 감세 사탕, 그러나 많이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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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릴레마는 삼중 모순을 의미하는데, 세금·국가지출·국가부채 사이의 삼중 모순을 '재정의 트릴레마'라고 한다. 이 삼중 모순 관계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국가 경영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균형점은 어디에 있을까? GDP 대비 전체 세금 및 사회보험료를 합친 국민부담률은 한국의 경우 2021년도 기준 29.9%로 OECD 평균 33.6%에 못 미친다. 연봉이 약 5000만 원 정도 되는 근로소득자는 연봉의 약 4.9% 정도 근로소득세를 내는데, 그렇게 많이 내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이 세금을 많다고 느끼는 이유는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 공제를 마치 세금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세금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이다. 세금은 많이 내지만 국가가 내게 해준 것은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국가가 해주는 것도 많다. 고3까지 거의 무료로 공교육을 제공한다. 그것도 공짜로 밥까지 먹여주면서 말이다. 만약 건강보험을 시장에서 구매하고자 한다면 국가에 내는 건강보험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국가에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내는 것은 개인이 시장에서 의료서비스나 행정서비스를 구매하는 것보다 싸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싸고 효율적인 '납세 공동체'와 '국가예산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도록 우리는 세금에 대해 더 많이 토론하고 함께 합의해나가야 할 것이다. 적정한 세금과 예산은 결국 정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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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은행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계절조정, 실질)

덧붙이는 글 | 글 이상민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1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국가재정, #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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