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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 23일(현지시간) 촬영한 가자지구 북부의 모습. 이스라엘군 공습 이후 연기가 치솟고 파편이 날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양측에서 6천500명 이상이 숨졌다.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 23일(현지시간) 촬영한 가자지구 북부의 모습. 이스라엘군 공습 이후 연기가 치솟고 파편이 날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양측에서 6천500명 이상이 숨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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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 가자 지구를 거점으로 한 무장단체 하마스의 대대적 침공으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하마스의 침공 이유로는 이스라엘 정부가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의 서안지구 불법 점거와 2023년 4월 벌어진 이슬람-기독교-유대교 공동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충돌이 꼽힙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를 지지해온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흐름 속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경제난 속에 지지율이 30%대까지 하락해 사람들의 시선을 외부 적으로 돌리려는 하마스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스라엘 집권세력 역시 올해 초 대규모 시위로 민심 이반을 겪은 만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의 극단주의 세력들이 '적대적 공생'을 벌이는 모양새입니다.

이렇듯 양쪽 모두에게 일방적으로 전쟁 책임을 묻기 힘든 도덕적 공백 상태에서 국제사회 여론을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리기 위한 허위 선전전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수언론도 줄줄이 오보를 내는 상황에서 해외취재 역량이 부족한 국내언론 역시 해외언론을 추종 보도하면서 같이 오보를 내고 있습니다. '아기 참수' 허위정보 유포 사건이 대표적이며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알 아흘리 병원 폭발 사건'도 언제 오보가 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언론 대서특필 '아기 참수' 사건, 사흘도 안돼 미확인 주장
 
i24뉴스의 ‘아기 참수’ 보도를 인용한 국내언론 보도. “40명 이상 참수”와 같은 단순 인용을 넘은 단정적 표현을 썼다(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캡쳐).
 i24뉴스의 ‘아기 참수’ 보도를 인용한 국내언론 보도. “40명 이상 참수”와 같은 단순 인용을 넘은 단정적 표현을 썼다(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캡쳐).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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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초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하마스의 '아기 참수' 사건은 사흘도 안 돼 이스라엘 당국자에 의해 직접 부정됐습니다. 이스라엘 방송사 i24뉴스는 10월 10일 한 군인을 인용해 이스라엘 남부 크파르 아자 키부츠(이스라엘식 집단농장)에서 영유아 시신 40여구가 발견됐으며 그 중엔 목이 잘린 아기도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이스라엘 정부가 직접 같은 내용의 발표를 하고 '더 타임즈' 등 권위 있는 외신들이 1면에 보도하자 국내언론도 수많은 관련 기사에서 이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인 10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정부측은 "대통령을 비롯한 관리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어린이들을 참수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10월 12일(현지시간)에는 이스라엘 당국자가 미국 CNN에서 "하마스가 참수 등 잔혹행위를 한 사례가 있었지만 피해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성인인지 어린이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물러섰습니다. 사라 시드너 CNN 앵커는 "조금 더 신중하게 말했어야 하는데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SNS에 실었습니다.

국내언론의 보도 흐름을 보면, 10월 11일 오전 YTN <사망자 천8백명 넘어..."참수된 아기 시신도">(10/11)은 "한 현지 언론은 영유아 시신이 40여 구가 발견됐는데 그 가운데 참수된 시신도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라고 서술해 인용보도라는 측면이 드러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정적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군 대변인의 공식 입장이 나온 이후인 10월 11일 저녁 뉴스1 <하마스, 아기까지 참수...영유아 시신 40여구 발견>(10/11)은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투원들이 참수한 영유아 시신 40여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며 좀더 단정적 어조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자의 '미확인 주장 시인' 보도가 나온 이후 국내언론 기사는 연합뉴스 <하마스 '아기까지 참수' 주장 놓고 진실공방 격화>(10/12), 서울신문 <하마스 '아기까지 참수' 주장 두고 진실 공방>(10/12)처럼 이스라엘 하마스 양측이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흐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서울신문 <"아기 참수, 미확인" 말 바꾼 이스라엘…정보심리전 데자뷔>(10/16), 매일경제 <아기 수십명 참수?…가짜뉴스에 극단 치닫는 '이·팔 전쟁'>(10/18)등 소수 언론이 '가짜뉴스 확산'을 경계하며 해당 사건을 언급하는 데 그쳤습니다.

언론 혼란시킨 '알 아흘리 병원 폭발' 사건 책임 공방

10월 17일(현지시간) 영국 성공회가 141년째 운영하고 있는 가자지구 내 알 아흘리 병원에서 폭발이 일어나 대규모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측은 각각 '이스라엘의 공격', '팔레스타인의 로켓 오발'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전쟁 보도에서 진실보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줬습니다.

팔레스타인측의 '병원 공습' 주장에 맞서 이스라엘측은 로켓이 공중 폭발하는 듯한 영상과 폭발 흔적이 크지 않다는 점을 들어 가자 지구 내 제2의 조직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오발에 의한 사고이며 사상자 규모도 훨씬 적다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측 국가들의 정보기관과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 서구 외신들의 독자적 검증 결과는 '로켓 오발'에 쏠리지만, 알 아흘리 병원 원장은 폭발 다음날 이스라엘 군이 자신에게 전화해 "어제 포탄 두 발로 경고를 했는데 왜 대피하지 않느냐"고 경고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제3자에 의한 조사를 통해 진위 여부가 가려져야 할 것입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0월 23일(현지시간) 편집자 주를 통해 "초기 보도가 지나치게 하마스 주장에 의지했고, 그런 주장들이 즉각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며, "두 시간 만에 기사 제목과 본문에 폭발의 범위와 책임에 대한 논쟁이 반영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언제 또 '편집자 주'를 내고 해명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병원 폭발' 사건, 미국이 국내언론에 미치는 영향력 확인
 
네이버 뉴스에서 “병원 공습”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10월 19일 정오를 전후해 ‘병원 공습’이라는 용어가 급속히 사라지고 ‘병원 폭발’로 대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네이버 뉴스검색 화면 캡쳐).
 네이버 뉴스에서 “병원 공습”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10월 19일 정오를 전후해 ‘병원 공습’이라는 용어가 급속히 사라지고 ‘병원 폭발’로 대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네이버 뉴스검색 화면 캡쳐).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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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부터 24일까지 알 아흘리 병원 참사에 관한 국내언론 보도량은 네이버 포털 검색 기준으로 수천 건에 달합니다. 보도에는 사건 진위에 대한 혼란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통신사인 뉴시스 속보를 보면 10월 18일 오전 2시 32분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보건부를 인용한 알자지라 보도를 재인용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최소 20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날 3시 19분엔 다시 가자 지구 보건부를 인용해 사망자가 최소 500명이라고 보도했고, 같은 날 오전 4시경부터는 '로켓 오발로 인한 것'이라는 이스라엘 측 반론이 같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알 아흘리 병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병원 폭격' 또는 '병원 공습'이라고 표현하던 언론의 기류가 바뀐 것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발언이 기점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해 "병원 공습은 다른 쪽(이슬라믹 지하드) 소행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에 '병원 공습'이라는 표현은 10월 19일 정오를 전후로 사라지고 '병원 폭발', '병원 참사' 등 좀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전에도 이스라엘은 같은 주장을 했지만, 국내 언론은 결국 미국 당국의 주장에 큰 비중을 둔 셈입니다.

자극적 사건에만 집중하면 진짜 참상 가릴 수도

누구에게도 명분을 찾을 수 없는 전쟁 와중에 객관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언론은 '편을 확실히 하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공영방송 BBC는 10월 12일 하마스를 '테러리스트'가 아닌 '무장단체'로 표기한다는 이유로 영국 보수세력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뒤인 10월 14일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편향된 보도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데 공모했다"며 BBC 본사에 붉은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다시 1주일 뒤인 10월 22일 BBC와 인터뷰하던 이스라엘 전 총리 나프탈리 베넷은 "BBC가 가자 지구의 편을 들고 있다"며 앵커와 설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BBC는 10월 20일 하마스를 '무장단체' 대신 '영국 정부 및 기타 국가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금지된 그룹'으로 용어를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지지하고 비난해야 할지 말하는 것은 BBC의 몫이 아니다"라는 BBC 국제뉴스 에디터의 항변은 오랜 증오의 연쇄를 바탕에 둔 분쟁을 보도할 때 언론이 지켜야 할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언론이 '아기 참수', '병원 공습' 등 여론 폭발력이 큰 자극적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은 다른 수많은 참상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아기 참수'는 허위라고 해도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다수 민간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은 사실이며, '병원 공습'에 대한 진위 논란은 이틀 후인 10월 19일(현지시각)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스라엘군의 포르피리우스 정교회 성당 완파 사건을 완벽히 묻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의 사상자는 10월 25일 기준 양측에서 2만 명을 넘어섰으며, 가자 지구의 인명피해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기습공격으로 입은 인명 피해의 3배를 돌파했습니다.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더라도 언론이 객관주의를 지키고 인도주의적 위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모니터 대상 : 2023년 10월 7일~25일 네이버 포털에 게재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기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팔레스타인, #이스라엘, #하마스, #저널리즘, #허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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