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3살 때였으니까, 아마 광수는 9살이었을 거야. 나를 참 잘 따랐어. 그날 선생한테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에 저수지로 멱을 감으로 들어갔는데 나오지를 않았어. 죽은 거지. 빠져 죽은 건지, 맞아 죽은 건지, 잘 모르겠어"
소년강제소용소로 알려진 선감학원(안산 대부도) 피해자 혜법스님(곽은수)은 이렇게 말하며 무덤가를 쓰다듬었다.
혜법 스님을 만난 곳은 선감학원 원생들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선감묘역(선감동 산37-1번지)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가 2차 시굴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진화위가 25일 오전 시굴 결과를 발표했다. 진화위와 시굴을 책임진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 선감학원 피해자, 취재진 등 15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굴 결과가 공개됐다.
이번에 발굴한 봉분은 40여 기다. 이 중 15기에서 치아 210점과 금속고리 단추, 직물 끈 등 유품 27점을 찾아냈다. 치아는 13개 분묘에서, 유품은 8개 분묘에서 수습됐으며, 치아와 유품이 함께 발굴된 분묘는 6기이다.
40여 기의 분묘 길이는 대부분 110cm~150cm 미만이었으며, 깊이도 50cm 미만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길이가 85cm에 불과한 분묘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우종윤 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은 "분묘 규모와 조성방법을 볼 때, 길이가 1m 전후에서 1m 50cm 이하가 대부분이고 모든 분묘 형태도 정상적 매장에 의해 묻은 게 아닌 비정상적인 방법(가매장 형태)으로 매장한 것으로 보이고, 치아의 감식을 통해 추정된 사망 당시 나이는 12세에서 15세"라고 설명했다.
진화위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아동 집단 암매장이 사실로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진화위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식 기록에 의한 선감학원 원생 사망자는 24명에 불과하다. 두 차례 시굴을 통해 이미 45기의 아동 암매장 분묘에서 치아와 단추 등의 유물이 수습돼 기록상 사망자 24명을 훨씬 넘어섰다.
진회위는 지난해 9월 1차 시굴 당시 5기 분묘에서 치아 68점과 단추 등 유품 7점을 수습한 바 있다.
"본격적인 발굴 하지 않으면 여기 묻히신 분들 햇빛 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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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선감묘역 2차 시굴결과 발표 |
| ⓒ 이민선 | 관련사진보기 |
선감학원은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42년에 세워져 1982년까지 운영된 아동 강제 수용소다. 40여 년 동안 수많은 아동이 끌려가 강제노동과 구타, 굶주림 등의 인권유린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감묘역은 익사, 구타 등으로 사망한 선감학원 입소 아동 유해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지난 2016년 8~9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 허일동씨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18년 경기도의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을 위한 사전조사 계획수립 용역 보고서'에 따르며, 이곳에 150여 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진희 진화위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조사팀장은 "오늘이 진화위가 하는 마지막 시굴일"이라며 "선감학원은 직접 운영한 경기도나 행정안전부에서 본격적인 발굴을 하지 않으면, 여기 묻히신 분들은 햇빛을 볼 수 없다"라고 국가 차원의 발굴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곳에서 보호를 받아야 했을 아이들이 왜 목숨을 걸고 탈출했는지를 알아내는 게 진실규명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진화위는 올 초 선감학원 사망자 유해 발굴을 위한 보조금을 경기도에 지급하기로 했지만 경기도가 이를 거절해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현재 요원한 상태다. 유해 발굴 사업은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였다.
관련해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시굴 현장을 보면서 그나마 흔적을 알 수 있는 유해인 치아의 흔적이 갈수록 풍화되고 부식이 심해지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이번 시굴을 계기로 국가와 지방정부가 신속히 나서서 선감학원 아동들이 묻혀 있는 선감학원 일대의 전면적인 유해 발굴을 시급히 요청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