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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잠든 지 두 시간 만에 눈을 떴다. 깨어있는 동안엔 항상 뉴스 기사를 본다. 가슴 졸이며 휴대폰의 뉴스 창만 들락날락한 지 세 시간째, 조국에 있는 친구 한 명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아버지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의 고위 관료 일원이다. 아뿔싸. 그는 전화 넘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무장군인에게 붙잡혀 구금됐다고 전했다. 자식으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던 친구의 무력감이 틴OO씨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무렵, '뚝' 소리와 함께 대화가 끊겼다. 군부가 미얀마 전역의 통신망을 차단했다. 그는 다음 날까지 조국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군부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가족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단다." 어린 시절, 항상 말조심을 당부하던 부모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민주주의 체제가 생소했던 2000년대 초.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기본 의료서비스조차 제공되지 않았던 그 시절. 어렸던 그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지만 어째서 느끼는 공포는 그대로일까.

틴OO씨는 몇 해 전 조국 미얀마를 떠나 해외에 거주 중인 버마(Burma) 이주 노동자다. 2021 쿠데타가 발발한 지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에게 미얀마 해외이주민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Justice for Myanmar’ 문구가 적힌 패드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틴OO씨
 'Justice for Myanmar’ 문구가 적힌 패드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틴OO씨
ⓒ 틴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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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그는 이민국의 한 회사 신입사원으로서 밝은 미래를 그렸지만 그의 조국엔 쿠데타라는 어둠이 다시 드리웠다. 미얀마는 과거부터 지속해서 군부 세력 영향 아래 있었다. 현재 '20·30세대'를 포함한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까지, 3개의 세대는 모두 한 번 이상의 쿠데타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1962년과, 1988년,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1년이다.

​과거 2020년 총선 당시엔 민주주의 민족전선(NLD)정당의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이 선출됐다. 하지만 민주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기쁨도 잠시,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미얀마 군부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2021년 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약 두 달 뒤인 4월 1일, 임시정부 '국민통합정부(NUG)'는 반군부 세력과 소수민족 방위군을 구성하고 내전에 돌입했다. 틴OO씨의 지인 중 몇몇은 이 NUG 산하의 무장 부대인 '시민방위군'과 그 외 단체에 합류해 최전선에서 군부 세력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극악무도한 군부의 탄압은 실존한다

시민에 대한 군부 체제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 방식은 지리에 따라 달라졌다. 조국의 친구들은 그에게 수도 '양곤(Yangon)'을 포함한 도시권에선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길에 나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전해왔다. 군인이 불시에 보안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검문은 휴대전화를 뺏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후 소셜 미디어(SNS) 포스트와 카메라 갤러리 앱(Application)에 저장된 사진을 샅샅이 살핀다. 혹 시민이 반정부 단체에 가입했거나, 군부에 대해 나쁜 말을 한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검문 방식은 상상외로 치밀해요. 소셜 미디어 앱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다운로드를 명령한 후 새로 설치한 앱의 기존 데이터를 검토해요. 휴대전화가 없다고 말하거나, 소셜 미디어 계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 몰아세우며 구타 후 구금하죠. 차라리 체포당해 경찰서로 끌려가면 양반이에요. 만약 '수용소(Interrogation Camps)'에 끌려간다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어요. 거기선 고문과 살인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와 달리 농촌 지역은 정보 공유 측면에서 폐쇄적이란 이유로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2023년 8월 2일 미얀마 언론 '더이라와디(The Irrawaddy)'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4월 11일, 군부는 사가잉(Sagaing) 주 '파지기(Pa Zi Gyi)' 마을에 전투기로 폭탄을 투하해 어린이 42명을 포함한 총 157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또한 '데페이인(Depayin)' 지역에선 무려 6024채의 집을 불태운 군부의 역대 최다 방화 공격이 있었고, '렛얏콘(Let Yat Kone)' 마을에선 헬기 2대가 약 200명의 학생이 수업 중이던 학교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농촌 지역에서 군인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약탈하고, 살인한다. 주민들은 집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 시도 때도 없는 야간 공습 탓에 편히 잠들지도 못한다. 그저 도망 다니고, 또 도망 다닐 뿐.

​"언제쯤에야 시민들에게 확산된 공포가 수그러들까요? 최근 본 소셜 미디어의 한 게시물 사진의 잔상이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무장군인에게 살해된 한 시민의 시신을 촬영한 사진이었죠. 조각조각 절단된 팔과 다리. 무참히 갈라 벌려진 그의 배와 그 속에 끼워져 있는 참수된 머리. 상상도 하지 못한 잔인함에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어요. 수많은 희생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군인에게 참수당하고, 팔다리가 잘려요. 시신을 훼손해야만 시민들이 경각심을 느껴 군부에 저항하지 않는다나? 여성은 강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대부분은 인권 모독을 겪은 직후 무참히 살해당하죠."

체포라는 폭력 아래, 내 터전은 사라졌다

미얀마는 국민의 해외 이주율이 높다.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이 그 원인 중 하나다. 2001년 쿠데타 이후 약 2년간 4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미얀마를 떠났다. 하지만 이들이 무사히 조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해외에 거주 중인 틴OO씨의 친구는 조만간 조국에 돌아갈 예정이지만 군부 측 군인에게 체포당할 수도 있는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그의 주민등록증에 적힌 출생지가 '사가잉(Sagaing)' 주이기 때문이다.

"​사가잉 지역은 반군부 진영의 주요 거점 지역 중 하나에요. 군부는 사가잉 주에 가장 심한 무력을 행사했죠. 손에 꼽히는 잔인한 공격은 모두 사가잉 지역에서 벌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본래 이 지역은 그 어느 지역보다 평화로웠지만 쿠데타가 터지자 자체적으로 '무기 없는 군부대'를 결성하는 등 여러 민주화 운동을 벌였어요. 만약 제 친구처럼 출생지가 사가잉 지역을 뜻하는 표식 '5/'가 적힌 주민증을 가지고 있다면 조국 땅을 제대로 밟아보기도 전에 공항에서 체포돼 심문당할 확률이 높아요."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같지만 혹시 모를 체포 위험을 감수하긴 어렵다. 지난해 그의 어머니는 미얀마 만달레이 공항으로 출항하는 비행기에서 한 미얀마 여성을 마주쳤다. 그녀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군부 측 군인에게 체포됐고, 어머니는 놀란 마음에 틴OO씨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저는 약 3년간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여러 민간 단체에 기부한 이력이 있어요. 이에 따라 체포될 가능성이 없진 않죠. 아무도 체포 기준은 모르거든요. 조심해야 해요. 미얀마는 내가 나고 자란 곳이지만, 난 더 이상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체포'라는 말이 아직도 현실 같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실제 체포된 지인이 둘이나 있어요. 한 명은 2021년 8월경,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시민 방위군 훈련에 합류했지만 양곤에서 코로나19에 걸려 치료받고 있는 딸을 걱정했죠. 그는 잠시라도 딸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양곤으로 몰래 들어가려 했지만 결국 체포됐어요. 아픈 딸은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렸을 텐데.

다른 지인은 수용소로 끌려가 수개월 동안 심문을 받고 있어요. 그의 처남이 '학생 반정부 조합'의 지도자라는 소문이 시발점이었죠. 그는 해 쨍쨍한 대낮에 잡혀갔고 그의 가족은 지인의 생존 여부를 여전히 확인할 수 없죠."


​'미얀마 출신 이주민'이란 짐도 무거운데...
 
2월 15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중앙은행 근처에 배치된 장갑차 옆에서 시민들이 '시민 불복종 운동' 지지 팻말을 들고 지난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2월 15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중앙은행 근처에 배치된 장갑차 옆에서 시민들이 '시민 불복종 운동' 지지 팻말을 들고 지난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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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부가 2023년 10월 1일부터 해외에서 돈을 버는 이주노동자와 사업가에 대해 10%의 소득세를 국가에 납부하도록 연방법을 개정했다. 이에 각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해외 이주노동자의 반발이 거세다.
 
"우리는 이미 타국에서 일을 하며 이주한 국가를 상대로 성실히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어요. 결국 이중과세가 요구되는 실정이죠. 소식을 접한 이주노동자 중 일부는 군사 정부에 세금을 지불하는 대신 수익의 10%를 임시 정부에 기부하기로 했죠. 그럼에도 군부 측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해외 체류 여권 기한 연장이 금지되며 이후 3년간 해외 취업도 금지한다'라며 입장을 완고히 하고 있어요."


틴씨는 "현재 군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경제를 원활히 유지하기 위해선 외화가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라며 세법을 발표한 원인을 추측했다. 아울러 "내전에 필요한 무기와 탱크 유지를 위한 연료 등은 아마 화폐가 아닌 외화로 구매할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결국 해외 이주민에게 받는 별도의 세금은 군부를 돕는 데 직접적으로 쓰일 확률이 높잖아요. 저는 이 세금을 내는 것은 현재 열악한 상황 속 군부와 치열하게 투쟁 중인 자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 여겨요. 제 주변 해외 이주민도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제 여권 유효기간은 몇 년 내로 만료돼요. 유효기간을 연장하려면 이민국의 미얀마 대사관에 찾아가면 되지만, 혹시라도 거부당할 경우엔 미얀마로 직접 찾아가야 해요. 하지만 소득세 10%를 납부하지 않으면 당국에서 연장을 거부당할 확률도 높아요. 어쩌면 뇌물을 요구할 수도 있죠. 막 두렵지만은 않아요. 때가 되면 다른 나라에 정치적 망명을 청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쿠데타 이후 좋지 않은 시국 탓에 많은 미얀마 시민이 이민국으로부터 학생·취업 비자 발급을 거절당하고 있다. 틴OO씨의 형제는 실제로 비자 발급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그 사유는 '당신이 우리 국가에 오면 이후 너의 조국에 영영 돌아갈 수 없을까 봐'였다. 틴씨는 "이 사유가 과연 비자 거절 사유로 합당하다고 볼 수 있을진 의문이다"라며 격앙된 얼굴로 말했다.

"나라의 사정은 뒤로하고 시민들은 그저 타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싶을 뿐이에요. 애초에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 와중 어렵게 해외에 정착한 자국민에게 소득세 납부를 의무화 한다는 뉴스는 그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는 숨 가쁜 정치적 격변 속, 미얀마의 새로운 이슈를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고통이지만, 조국에서 투쟁하는 동료들의 고통에 비기진 못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들 모두 쿠데타 이전엔 잠재력 가득한 청춘이었고, 빛나는 삶이 있었을 텐데.

"전 비록 조국에서 내전에 참여하는 시민만큼 용감하지 않지만 손 닿는 한까지 기부 등의 도움을 줄 거예요. 훗날 제 고향에 민주화 시대가 도래하는 그날이 올 때, 돌아가 제가 가진 지식과 기술로 나라를 재건하는 데 기여하는 날까지요. 국민 1/3 이상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 만큼, 어쩌면 길고 긴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저희는 국제적인 도움이 절실해요. 하지만 결국 봄날은 올 거예요. 저는 희망을 믿지 않아요. 사실을 믿지."

태그:#미얀마 쿠데타, #군부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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