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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막아줄 구조물이 없는 철근, 형틀공, 타설 등 초기 작업의 경우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다.
▲ 기초공사중인 건설현장 햇빛을 막아줄 구조물이 없는 철근, 형틀공, 타설 등 초기 작업의 경우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다.
ⓒ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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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정의가 이번에 찾아간 폭염노동현장은 한 대규모 아파트 건설현장이었다. 8월16일 총 14동, 741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현장에는 아파트 골조 작업, 시멘트를 올리기 전 형틀 작업, 초기 단계인 철근 작업, 시멘트 타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폭염 경보가 발표된 최고 온도 32도의 땡볕에서 대부분의 건설 노동자가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늘도 없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철근은 너무 뜨거웠다. 온도를 확인해보고자 무심코 댄 손이 화상을 입을 듯 화끈거릴 정도였다. 철근 옆에 잠깐 있었는데도, 반사되는 열로 인해 금세 더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동행하게 된 현장에서는 온열질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폭염대비 안전 지침을 숙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형틀목공으로서 현장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건설노동자 E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 조례 때 오늘은 몇 도고, 무더위가 조금 예상된다, 물 섭취 잘하라 그런 얘기하는 거죠. 정부에서 아예 못하게 딱 정해져 있으면 오후 2시까지 하고 (일을) 멈추는데 권고 사항이라 자제하라고만 하니까 저희들은 그렇게 교육 받아도 현장 일을 멈출 수 없죠."

고용노동부에서는 폭염 경보가 내려지거나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야외 작업장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 작업 중단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권고사항은 강제력이 없다. 사업장에서 온열질환의 위험이 높은 날, 현장 일이 계속 되어도 멈추라고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폭염에 대비하라는 안내나 주의를 주는 것만으로는 높은 노동 강도로 작업을 해내야 하는 현장의 온열질환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 건설노동자가 충분히 쉬지 못할 만큼 짧은 공사기간도 문제다.

"공사기간도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아요. 그건 어떤 현장도 마찬가지에요. 14동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한 달에 4개 층이 올라가요. 여기도 16층이니 5개월이면 마무리 될 겁니다."

결국 공사기간을 줄이지 않고 무더운 시간을 피하려면 조기 출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일정은 7시부터 해서 점심시간 1시간 쉬고 4시 반에 끝납니다. 너무 더운 날에 빨리 끝내자고 조기 출근을 며칠 했었는데 주변에서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 와가지고 그것도 안됐죠.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조용하게 한다고 해도 시끄러우니까요, 새벽부터."
 
공사장의 철근은 햇볕을 그대로 받아 열을 방출한다.
▲ 태양열을 그대로 받는 철근 공사장의 철근은 햇볕을 그대로 받아 열을 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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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이나 휴게실, 음수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노동조합원인 형틀목공들만 110명이 일하는 이곳도 처음에는 그늘막이나 음수, 쉴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서도 (폭염 안전 대책 마련) 요구를 했는데 안 들어줬었는데, 한 3주 전에 노조가 연결해서 폭염 건설 현장에 (대한) 언론 취재가 있었어요. 그 다음부터 많이 바뀌었어요."

건설노동자 E씨는 소규모 사업장은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요구하는 건설노조가 없는 소규모 현장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열악합니다. 화장실도 제대로 안 돼 있고 한 번씩 가보면 말도 못할 정도로 열악한 편이에요. 안전시설 같은 게 굉장히 열악해요. 위험성도 높고요. 그렇게 위험이 발생하더라도 공사 일은 계속 진행이 되죠."

실제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2022년 9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2년까지 발생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총 182건 중 건설업이 92건으로 산업별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사업장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81건이 발생했다. 즉, 안전관리 역량이 떨어지는 소규모 건설현장이 폭염에 더 취약한 것이다.

매해 발표되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승인 자료(2016년~2021년 기준)를 살펴보면, 지난 2016∼2021년 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재 사망자는 29명이었으며, 그 중 20명이 건설업 종사자였다. 건설노동자 E씨는 온열질환의 위험을 감수하며 폭염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용직이니까 힘들다고 해서 쉬면 돈을 못 받아요. 그래도 참고 해야죠. 건설업이 상용직이 아니잖아요. 고용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날 출근을 안 하면 그날 임금을 못 받게 되는 구조니까요."

예전보다 더 길고 치명적인 폭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설현장에도 영향을 준다.

"엄청 덥죠. 쇠를 잡으면 장갑으로 잡아도 뜨거워요. 철근 같은 경우는 열이 상당히 있으니까요. 달궈진 쇠 위에서 작업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타설이라고 시멘트 작업을 멈출 수가 없어요. 차가 계속 부으니까요. 햇빛, 그늘막도 없는 데서 타설이 멈출 때까지, 그 차의 시멘트가 끊길 때까지 계속 일해야 해요."
 
폭염경보가 내린 당일에도 공사는 한창 진행중이였다.
▲ 햇빛을 받아 달아오른 철근과 폭염경보 폭염경보가 내린 당일에도 공사는 한창 진행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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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 E씨는 건설노조가 들어가 노동자들을 스스로 안전을 위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사업장이나 안전 관리에 취약한 소규모 건설 현장 모두 건설노동자의 안전이 지켜지도록 정부차원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한다고 말한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강제적으로 쉬는 게 법적으로 시행된다면 저희들은 오히려 더 좋죠. 민원이 좀 발생하더라도 법이 그렇다고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더운 시간을 피해 조기 출근해서 2시까지 일하고 가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죠. 그러면 공사기간도 맞출 수 있고 노동자 안전도 지킬 수 있어요."
 

온열질환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현장의 노동자는 폭염 속에서도 일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폭염 경보가 내린 건설현장 동행 날도 고용노동부의 권고로만 보면 건설현장은 멈췄어야 했다. 현장이 돌아가기 위해 재난에도 일을 멈출 수가 없다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보다 그 피해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고 재난의 소리와 형체가 없다. 환경정의가 폭염 노동 현장 동행을 통해 본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폭염으로부터 안전한 노동을 위한 사회의 시스템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환경정의 홈페이지에도 게시됩니다.


태그:#환경정의, #폭염노동, #폭염, #노동, #기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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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여성, 어린이, 저소득층 및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나타나는 환경불평등문제를 다룹니다. 더불어 국가간 인종간 환경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의(justice)의 시각에서 환경문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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