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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회사를 다니다 육아를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택배회사에 OP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근무하며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택배 터미널 앞에 10톤 트럭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일반 평일이라면 한두 대 서 있을 대형트럭들이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대기하는 숫자도 늘어난다. 대형트럭의 트레일러에서는 흡사 대형 곤충이 알을 쏟아내듯 택배 물량이 쏟아진다.  

사무실에서는 추석 특수 대책회의가 한창이다. 회의 중 들리는 소리가 사뭇 무겁다.

"네가 쓰러지면 큰일난다. 너 쓰러지면 우린 무너지는 거야. 무리하지 마."

걱정 어린 말이 무색하게 그 택배기사는 오늘도 심야배송 해제를 요청한다. 심야배송을 하려면 본사에 해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런 조취는 과로사 하는 기사들이 늘어나자 생긴 '언발에 오줌 누기'식의 회사 내규다.

심야배송을 하지 않으려면 판매기업과 당일 배송이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본사는 당일 배송 조건의 계약을 점점 더 늘리는 추세다. 이에 대한 부담은 온전히 기사들 몫이다.

하루 평균 배송 물량 300여개
 
추석에 특히 많은 택배는 일명 '생물'이라 불리는 먹거리다
 추석에 특히 많은 택배는 일명 '생물'이라 불리는 먹거리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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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수기로 접어들자 늘어나는 물량만큼 당일배송 물량도 늘어난다. 기사들은 며칠째 심야에도 배송을 하지만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어제보다 더 많은 양의 택배가 다음날 기사들을 기다린다.

9월 들어서자 택배 물량이 하루 평균치 300개를 진작에 넘어섰다.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대명절을 앞두고 국민과 함께 기사들은 웃을 수 없다. 연이은 심야배송에도 넘쳐나는 물량을 어쩌지 못해 배송 지연에 대한 불만 전화가 쏟아진다. 고객들은 추석이라 물량이 많은 것은 이해하지만 본인의 택배가 지연되는 것은 이해 못한다. 빨리 배송해달라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추석에 특히 많은 택배는 일명 '생물'이라 불리는 먹거리다. 생물은 하루라도 늦으면 변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한다. 수확기인 가을을 맞아 거둬들인 곡물과 과일 등이 택배 차량에 태워진다. 집하 당시 먹거리의 상태를 알 수 없는 기사들은 도착지로 배송을 시작한다.

당일 배송을 하더라도 상태에 따라 컴플레인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컴플레인도 고스란히 기사가 감당해야 한다. 당일 배송을 했더라도 전산 오류로 인한 배송완료 문자를 고객이 받지 못했다면 이에 대한 책임도 기사 몫이다. 문자를 보내놓았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클레임이 발생하기도 한다.

배송이 많아지면서 주소를 잘못 기재하는 고객의 수도 많아진다. 고객이 주소를 오기재해서 잘못 간 택배도 고객은 잘못한 게 없다. 그렇게 오배송된 제주도에서 올라온 갈치가 누군가의 현관 앞에 놓였다. 집주인은 이를 수거해달라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택배사에 연락했다. 본래 주인에게 내용을 전달했지만 고객은 치울 생각이 없다. 고객의 실수로 오배송된 택배의 처치도 결국 기사 몫이다. 

기사의 몫은 어디까지일까? 기사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당 구역이 며칠 비었던 적이 있다. 고객은 기사가 개인적 사정이 있다고 마음대로 비워도 되느냐 고객센터에 항의를 접수했다. 고객이 주문한 애견 사료를 제날짜에 받으려면 기사에게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기다림은 선택적이다. 구매한 곳에서 배송 시작을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다릴 수 있지만 택배사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는 기다리기 어렵다. 고객이 사는 지역에 도착한 택배가 하루가 지났는데 왜 오지 않느냐며 채근하는 전화가 부지기수다. 

기사는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객의 기다림을 일분일초라도 줄이기 위해 택배기사는 본인의 건강을 포기해야 한다. 누군가는 누가 시켜서 하느냐, 다 본인들 선택이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고객 클레임 중에서 들은 얘기다. "누가 택배 기사 하라고 시켰냐,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왜 고객을 힘들게 하느냐"고 말이다. 고객의 힘듦이란 단 이틀의 기다림이었다. 

택배기사가 받은 따뜻한 전화

어느 기사가 상을 당했다. 대체인력이 투입됐지만 담당 지역이 미숙한 대체기사는 택배를 오배송하고 말았다. 컴플레인이 가장 클 수 있는 생물이었다. 당일배송을 못가고 하루 지나 고객에게 배송됐다.

날씨가 덥지 않아 생물의 상태는 양호했으나 걱정이 됐다. 무조건 컴플레인을 진행될 거라 생각했으나 고객은 "식음에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상중이신 기사님은 괜찮으시냐, 그분께 피해가 가지는 않느냐"며 기사를 걱정했다. 이렇게 따뜻한 전화는 처음이었다. 

누구나 기쁘게 맞이할 우리나라 대명절 추석이 코 앞이다. 추석이 되면 거둬들인 곡식과 먹거리들로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진다. 이 여유로움도 누구에게는 친절하게 전해지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불친절할 수 있다. 그 여유로움을 택배기사들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태그:#택배, #추석택배 , #명절선물, #명절선물택배보내기, #택배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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