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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녹색 잎 위에 하얀 꽃이 피었다. 가장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9월이다. 잎은 호박잎을 닮았고 줄기는 오이 덩굴과 흡사하다. 하천가 주변 산책로를 뒤덮었다. 산책하는 주민들이 발길을 멈춘다. 호박도 칡덩굴도 아닌 것이 아름답게 하얀 꽃을 피우고 씨앗을 품고 있어서다. 이 식물의 이름, 가시박이다.
 
가시박, 열매가 송이를 이루고 각 열매는 종자가 하나씩 있다(2023/9/13)
 가시박, 열매가 송이를 이루고 각 열매는 종자가 하나씩 있다(2023/9/13)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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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식물 같지만 우리 고유종에 침투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외래종이다.

<한국식물생태 보감>에 나와 있는 가시박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호박의 습성과 많이 닮았으며 속명 씨키오스(Sicyos)는 희랍어로 오이 또는 박을 의미한다. 줄기에 간격을 두고 달린 잎은 널찍하고, 줄기가 길게 뻗으면서 자라는 모양이 박과(Cucurbitaceae) 식물의 전형이다. 호박처럼 줄기 마디에서 서너 갈래로 갈라진 덩굴손이 나와서 땅 위를 기어가다가도 다른 물체나 식물을 타고 오르면서 뒤덮어 버리기도 한다."

순식간에 다른 식물들의 자리를 빼앗는 가시박 
 
괴물처럼 보이는 가시박 군락지,어단천(2023/9/13)
 괴물처럼 보이는 가시박 군락지,어단천(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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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이 자라는 곳에는 다른 식물들이 자랄 틈이 없다. 5월에 싹이 나고 그 후에는 주변 식물들과 경쟁해,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살길을 찾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넓은 잎으로 들녘을 덮어 황량한 벌판에 조경수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순식간에 다른 식물들의 자리를 뺏는다. 넓은 잎은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광합성을 방해하고, 가시박 덩굴손은 나뭇가지를 휘어 감는다. 그리고 더 이상 뻗어나갈 나무를 찾지 못한 가시박은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고, 지붕 위까지 뻗어 오른다. 들녘이 그들의 세상이다. 가시박이 침투를 하면 자생식물들은 그 자리를 내주고 떠난다. 

강릉원주대 김희석 조경학 박사는 "날이 갈수록 가시박의 번식 속도는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라며 "더 큰 문제는 가시박으로 인해 우리 고유의 식물종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그 심각성을 말한다.
 
집앞까지 덮은 가시박(2023/9/13)
 집앞까지 덮은 가시박(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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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은 덩굴식물이기에 언뜻 보면 칡과 비슷하면서도 줄기와 잎이 호박에 가깝다. 한때 가시박이 엄청난 성장과 빠른 증식으로 우리나라 고유 식생을 파괴하고 농업에도 피해를 줘 환경부에서 지난 2009년 6월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얼마 전, 마을 길가에는 가시박 제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씨앗이 퍼지기 전에 제거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시박은 열매 속에 종자가 하나씩 있다. 그러므로 꽃이나 종자가 형성되기 전에 생식기관이나 식물체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길가 주변에 심어놓은 감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뿐만 아니라 아카시아, 소나무 등 주변에 나무를 감고 숲을 이루어 다른 종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강릉시 박월동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경입니다. 한번 번식을 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길가 주변만 제거 작업을 해서는 효과가 없어요"라고 제거 작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산책로 주변, 가시박 제거작업, 강릉시 구정면 박월동(2023/9/13)
 산책로 주변, 가시박 제거작업, 강릉시 구정면 박월동(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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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에 둘러쌓여 고사하고있는 아카시아(2023/9/13)
 가시박에 둘러쌓여 고사하고있는 아카시아(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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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가 가시연에 쌓여 시름하고 있다(2023/9/13)
 왕벚나무가 가시연에 쌓여 시름하고 있다(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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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은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솜털처럼 예쁘게 생긴 가시가 독을 품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줄기에는 수백 개의 가시가 돋아있다. 열매의 가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나 동물의 접근을 불허한다. 작업을 하다가 줄기의 가시에 긁히거나 스치기라도 하면 피부염이 생기기도 하고, 늦가을에 길거리를 걷다가 꽃가루를 만났다간 가려움증과 알레르기를 경험할 수도 있다. 

제거 작업에 참여한 근로자는 "한번 긁히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며칠 동안 피부가 가렵고 상처가 나기 때문에 고생합니다"라며 "다른 식물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만 사람에게도 해로운 식물입니다. 하루빨리 퇴치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천 전체에 퍼진 가시박,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가시박 덩굴손과 꽃, 강릉시 구정면 어단천(2023/9/13)
 가시박 덩굴손과 꽃, 강릉시 구정면 어단천(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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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은 1년생 식물로서 1년간 생을 마감하고 포기당 400~500개의 종자를 남긴다. 가을에 종자를 남기기 때문에 장마나 태풍으로 인해 하천물이 불어나면 물길을 따라 씨앗이 번져 하천 주변에 뿌리를 내린다. 또한 환경을 고려치 않은 하천공사는 가시박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강릉시 박월동에 사는 서순자 주민은 "동사무소에 오늘 신고했어요. 가시박이 하천을 뒤덮어 큰 비가 오면 범람할 수가 있어요"라며 "몇 년째 제거 작업은 하고 있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가고 있어요. 하천을 뒤덮어 그 기능을 상실하기 전에 하천 전체에 퍼져있는 가시박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가시박이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고 있다(2023/9/13)
 가시박이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고 있다(2023/9/13)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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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은 수입사료나 종자 수입과정 등 다양한 경로를 타고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과 경상북도 일부에서 발견된 이후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확산세가 커지고 있다. 생태계 교란식물로 지정된 후 퇴치운동이 벌어졌지만, 정부에선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책을 나온 한 시민은 "이렇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외래종인 줄은 몰랐습니다. 길가에는 가시박으로 덮여가고 있고 다른 식물들이 보이지 않아요"라며 "지금쯤이면 이곳에는 코스모스며 우리 종 야생화가 보기 좋게 피어야 하는데, 올해는 볼 수가 없어요. 가시박을 퇴치하는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r가시박에 둘러쌓여 고사하고있는 나무들(2023/9/13)
 r가시박에 둘러쌓여 고사하고있는 나무들(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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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이 나무를 덮고있는 하천(2023/9/13)
 가시박이 나무를 덮고있는 하천(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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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지붕위 박꽃처럼 소박하게만 보였던 가시박이 우리 하천과 강, 심지어는 마을까지 공격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건강해야 할 숲과 우리 종이 가시박으로 인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천을 뒤덮고있는 가시박, 강릉시 구정면 어단천(2023/9/13)
 하천을 뒤덮고있는 가시박, 강릉시 구정면 어단천(20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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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시박, #외래종, #우리종의 공격, #하천, #호박과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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