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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의 위기를 가장 크게 느끼고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바로 활동가다. 위기론은 계속되지만 새로운 대안은 나오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과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활동가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과연 활동가들은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떻게 새 길을 찾아가고 있을까? 다양한 도전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과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패널 박효경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
       아정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IW31) 활동가
        황경희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배분팀장
 
시민사회단체 위기론에 대한 활동가 좌담
 시민사회단체 위기론에 대한 활동가 좌담
ⓒ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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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황경희(이하 '황') 동행은 활동가들을 위한 협동조합인데요. 활동가들 간의 상호부조, 의료비, 학자금, 재충전 등을 지원하고 있어요.

아정(이하 '아')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IW31(이하 IW31)는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고문 피해자1)가 시설 밖으로 나왔을 때 31명이 하루씩 돌아가면서 그의 일상을 조력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어요. 구성원은 IW31의 전업 활동가가 아니고, 장애인권·동물권·퀴어·군사기지반대운동 등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활동가의 문제의식이 스며들어 지금은 '시설화된 사회'로 운동의 관심이 확장됐습니다.

박효경(이하 '박') 빠띠는 사람들이 대화하고 협력하고 활동할 수 있는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해요.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플랫폼을 활용해서 일상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고요.

– 활동가라는 게 흔한 직업은 아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가족이나 친척에게는 활동가가 어떤 직업인지 아예 설명하지 않아요. 엄마는 준(準)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거 같고요(웃음). 예전에 다니던 직장도 서울시 위탁 기관이었거든요.

아 처음 보는 사람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냐"고 대뜸 물어보기도 해요. 이건 무례한 질문이잖아요. 활동가들이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일 하십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죽겠어요(일동 웃음). 활동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너무 귀찮아서 그냥 "좋은 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 이 일을 계속할지 고민한 적이 다들 있었죠(웃음)? 여러분 혹은 주변 경험을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우선 일이 너무 많아요. 활동으로 결과를 내야 하고 동시에 활동을 지속할 자원도 마련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난 뭘 하기 위해 사는 건가' 싶은 거죠. 역량을 채울 시간도 갖기 어렵거든요. 나는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은데 해결할 사회문제는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고.

 동행 심리상담 참여자들은 번아웃(burnout)이 왔다고 많이 이야기해요. 그리고 2019년 설문조사에서 '활동을 후회한다'고 답한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보니까 '생활이 불안정하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어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영리기업에 있는 친구들과 차이가 벌어지니까 살짝 현타2)가 오더라고요.

 저도 번아웃이 여러 번 왔는데요. 힘든 걸 아예 자각하지 못한 적도 있고, 자각하더라도 참았어요. 그러다가 마지막 번아웃이 왔을 때는 심각성을 인정하고 지원사업을 통해서 심리상담을 받았고요.
 
황경희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배분팀장
 황경희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배분팀장
ⓒ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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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시민사회단체의 위기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위기 수준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시겠어요? 그리고 각자 위기를 실감한 경험도 나눠주세요.
 음… 80점이요.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예전에 환경단체에서 일했는데요. 단체에 속하지 않은 시민들은 카페 일회용 컵 사용 실태 모니터링도 하고 쓰레기 줍깅3)도 하면서 축제처럼 활동하더라고요. 그때 '단체가 사람들을 모으고 활동으로 만드는 데 과연 전문성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위기를 실감했어요.

 단체들은 늘 위기였지만 계속 활동해 왔잖아요. 여전히 가능성도 크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한 60점으로 할까요? 저에게 가장 강렬한 위기의 기억은 이전에 있던 조직에서 서울시 위탁사업 관련 감사를 받은 것이에요. 전혀 정파적인 일이 아닌데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직격탄을 받더라고요.

 100점이라고 하고 싶지만, 너무 극단적일까 봐 일단 80점이요(웃음). 단체의 집회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듣는 사람이 없고요. 참가하는 사람도 맨날 똑같아요. 우리 편을 만들려는 노력을 더 해야죠.

– 위기 진단이 나오는 이유가 한 가지는 아닐 텐데요. 핵심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제 현수막 걸고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는 단체가 발신하는 목소리가 시민에게 잘 가닿지 않는다고 봐요. 같은 방식을 30년 했으면 달라져야죠.

 시민들이 일상에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들고 그 중심에 시민사회단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단체가 전문성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나 싶어요. 마치 활동가만 활동하는 것처럼 된 거죠. 과연 시민들은 시민단체가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파트너'라고 여기고 있을까요?

 띠 두르고 피켓 드는 식의 방법이 먹히지 않는 것 때문에 단체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기존 단체와 새롭게 등장한 주체들은 잘하는 영역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기존 단체들이 집중할 영역이 있는데 '이목 끌만 한 거 없어?' 이런 고민만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 단체들도 시민 소통의 중요성을 알고 더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단체들이 답을 정하는 걸 너무 급한 일로 여기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의 힘을 모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공론장을 열어서 시민 의견을 물어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만약 단체가 답을 정해서 전달하더라도 시민들에게 그 과정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단체 안에서는 많은 토론과 고민을 해서 결론을 내는 거니까요.

 단체가 회원들에게도 더 집중하면 좋겠어요. 회원들의 생각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다른 시민들과의 소통전략도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단체 토론회에 가보면 너무 오랫동안 똑같은 패널들이 나와서 똑같은 말만 반복해요. 패널부터 바꾸면 좋겠어요. 게다가 패널들은 시민과의 어떤 접점도 만들지 않고서 발언을 하죠. 내가 왜 맨날 저 사람 생각을 듣고 있어야 하나 싶더라고요.
 
박효경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
 박효경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
ⓒ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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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다양한 주체가 공익활동을 하는데,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전통적 시민사회단체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아 요즘엔 동네 책방에서 북토크를 열어 열댓 명이 모이는 식의 활동도 많은데 전 너무 반가워요. 횃불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모닥불 같은 운동도 필요하잖아요. 단체들이 이런 모닥불들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때로는 횃불도 들어야 할 테고요.

 단체는 사실 무게감이 있어서 다양한 실험이 어렵죠. 대신 작은 주체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고민하면 좋겠어요. 실제로 페미니즘 모임과 빠띠가 기자회견을 하는데 여성단체가 매뉴얼을 공유해 줘서 잘 대응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큰 단체들 사정도 잘 아니까 '그쪽도 넉넉하진 않은데' 그런 생각도 드네요(웃음).

 저도 공감해요. 자원과 노하우가 많은 단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의 파트너가 되어주는 시도가 필요해요.

– 여러 주체와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아요. 때로는 시민들이 "단체가 참여하면 순수성이 훼손된다"면서 시민사회단체를 배제하고요.
 '깃발을 들고 오는 단체는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끌고 갈 거야'라는 불신이 있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단체를 믿지 않는 게 근본적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빠띠 사업을 통해 활동하던 커뮤니티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빠띠가 사안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때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연대에 대해서 서로 생각을 맞춰갔어요. 아무래도 개인은 뿔뿔이 흩어져있으니까 단체와 힘의 차이를 느끼는 것 같아요. '단체가 이해하고 더 설득해야 하겠구나' 싶었어요.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잘 협력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당사자고 누구는 조력자라는 위치 설정 자체가 되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아이고, 고민이 더 많아지네요(웃음). 여러분들이 활동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을 나누는 것으로 좌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시민이 소유하는 활동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시민의 플랫폼에서 생산된 결과물은 모두 공공재잖아요. 단체들도 함께 하면서 공동의 자산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IW31가 '갇혀도 되는 존재는 없다'고 문제 제기하면서 여러 운동과 연결되었어요. 장애인권·동물권·성노동자권리 운동과도 만나고 있고요. HIV 감염인이나 약물 사용자를 부당하게 격리 구금하는 문제에 대응해서도 함께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편을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 운동하고 싶어요.

황 공익활동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중받았으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잘 드러내고 싶고요. 그래서 초등학생이 장래희망으로 '공익활동가'라고 적는 날이 오는 것이 제 꿈입니다.
 
아정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IW31) 활동가
 아정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IW31) 활동가
ⓒ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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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류 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난민 신청자 M씨는 독방에서 두 손과 발을 뒤로 결박당한 채 일명 '새우꺾기' 자세로 격리되었다. 이 사건이 사회적 논란이 되자 M씨는 일시 구금해제로 풀려났다.
2)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
3)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

덧붙이는 글 | 사회 및 정리 박효원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사진 박상환, 녹취 조연우.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9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시민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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