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빵(자료사진).
 빵(자료사진).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엄마 손맛'을 낸다는 반찬가게 옆에 빵집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 빵집. 신도시 내에 몇 안 되는 빵가게여서 처음에는 손님이 제법 많았다. 문전성시까지는 아니어도 이른 아침부터 빵 굽는 냄새에 이끌린 손님부터 늦은 저녁 허기를 채우는 학생들까지 줄을 이었다. 특히 에그 샌드위치와 찹쌀로 만든 도넛이 인기였다.

개업 초기부터 주인이 직접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렸다. 반찬가게에선 집에서 만들기 힘든 반찬거리를 사고, 빵집에서는 식빵과 입맛을 돋우는 빵 몇 가지씩을 사곤 했다.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마시는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테이블도 여럿 있었다.

"어! 여기 OOOO 빵집이 어디로 갔지? 저번 주까지도 문을 열고 있었는데..."

순간 이 거리가 아닌가 하고 고개를 돌려봤지만, 틀림없이 마트에 가는 그 길목이었다. 개업한 지 7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빵집 간판이 사라졌다. '임대문의'라는 공인중개사 광고판이 여러 개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브랜드 빵집을 하나 개점하는 데는 최소 4억 원 이상이 든다. 인건비나 임대료, 중간에 인테리어 변경 비용까지 합치면 꽤나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사업을 시작하려는 마음먹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 사업을 접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을 터이다.

아마도 유사 경쟁업체들의 증가와 코로나라는 큰 벽 때문에 더 이상 영업을 유지하지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신도시 내 신축 빌딩의 1층이라는 목 좋은 장소는 임대료가 높아 어느 정도 영업매출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이때가 지나면 곧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겠지만, 막상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도 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3고 현상과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심리의 축소가 대표적 원인이다. 참아왔던 소위 '보복소비'도 해외여행이나 일부 업종에서 빛을 볼 뿐 서민들을 기다리는 골목상권에는 냉정한 기류만 흐른다.

대리점 사업 때문에 본사 보증금과 임대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살던 집까지 담보로 돈을 빌린 경우의 사업 중단은 가계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 빵집은 바로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살던 주민이 영업했던 터라, 사정을 아는 지인에 의하면 '최근 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다른 업종으로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회생 신청과 업종변경의 고민
 
서울회생법원 2층에서는 파산과, 개인회생과, 제1호법정이 있습니다. 회생위원실 앞에 놓인 의자는 수많은 민원인들의 대기장소이자 직원들의 휴식공간입니다.
▲ 서울회생법원 2층 서울회생법원 2층에서는 파산과, 개인회생과, 제1호법정이 있습니다. 회생위원실 앞에 놓인 의자는 수많은 민원인들의 대기장소이자 직원들의 휴식공간입니다.
ⓒ 배운기

관련사진보기

 
무더운 여름날 오후. 바깥 기온은 섭씨 37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서울회생법원을 찾은 자영업자 A씨는 열기 가득한 복도에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인지라 일하는 공무원들도 더위에 지치기는 마찬가지일 터. 뉴스타트 상담센터에서 회생신청에 관한 상담을 마치고 친구인 직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회생위원실에서 캔 커피 2개를 든 친구가 나오자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자주 만나는 사이로 보였다.

"얼굴빛이 안 좋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친구는..."
"나야 머, 그럭저럭 먹고 살지. 이번이 세 번째 업종 변경이었는데 잘 안 되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이렇게 어렵다는 얘기는 안했잖아..."
"허허허... 친구들한테 장사 안 되고 어렵게 사는 얘기하는 것도 분위기 깨고 그렇잖아."


농촌마을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질문과 답변이 간단명료했다. A씨는 오랜 고민 끝에 법원에 근무 중인 친구의 권유를 받고 회생법원을 방문해서 상담을 받은 뒤였다.

"오늘 상담은 잘 됐고?"
"처음 올 때 떨리기도 하고 오기도 싫었는데. 자네가 말해줘서 막상 와서 얘기를 듣고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네..."


두 친구의 대화 사이로 웃음과 사람들이 오갔다. 두 사람 사이로 지난한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말과 문장이 지나갔다. 복도를 울리는 급한 발걸음과 누군가의 전화통화 소리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하나로 흘렀다.

"그래, 요새 자영업 하는 분들은 파산신청을 많이들 하지만. 그래도 50대에 회생신청을 통해서 영업을 계속하려는 분들도 많아..."

"나도 상담하시는 분 말씀도 듣고, 자네 얘기도 듣다 보니까 개인회생을 생각해보던지 아니면 대출금 상환유예 신청을 해서 장사를 계속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사실 애들한테도 아빠가 무기력하게 포기하거나 쫓기며 사는 모양을 보여주면 안 좋을 것 같아."

"음... 자네 생각이 옳아. 우리가 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은 최후의 수단일 뿐, 내 의지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헤쳐 나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빚 폭탄'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2023년 6월) 속 자영업자 관련 서술 부분.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2023년 6월) 속 자영업자 관련 서술 부분.
ⓒ 한국은행

관련사진보기

 
최근 계속된 임대료 상승에 고이자에 이어 고물가 행진까지 이어지자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영업소득자인 자영업자들은 임금소득자에 비해 경기변동에 민감하고 취약하다. 빛의 속도로 계속 늘어가는 빚은 경기회복과 소비심리가 부활하면 곧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먹고 살아야 하지만, 최근의 경제상황은 그 희망이 사라지기에 적합한 구조로 변하고 있다.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자영업자의 대출에서 70% 이상을 넘고 있다. 다중채무자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지난해 4분기 말 현재 4억2000만 원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들의 다중채무 중복대출은 한꺼번에 위기상황을 치달을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자영업자 부채의 취약요인 및 연체가능성 점검, 2023년 6월) 및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규모 2022년 말 1020조 원대를 넘어서서 2023년 1/4분기에는 1033조7000억 원으로 집계된다. 이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684조9000억 원보다 50% 정도 늘어난 액수다.

자영업자의 중복대출은 경제 불안의 뇌관이자 연쇄부실의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중 자영업자인 다중채무자의 잔액만 730조 원에 이른다. 어렵게 빌린 돈으로 그전에 빌린 돈을 갚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같은 보고서를 통해 "자영업자는 임금근로자 등 비자영업자에 비해 부동산가격 하락 취약, 높은 원리금 상환부담, 단기 및 일시상환 중심의 부채구조 등이 리스크 요인으로 잠재하고 있다"면서 "향후 높은 대출금리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예상 밖의 경기회복 지연, 상업용부동산 부진 등이 발생할 경우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연체 규모가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개인회생 통계를 통해서 본 자영업자 회생 보고서

개인회생 신청을 위해 법원을 방문한 자영업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영업과 생계를 위해 월세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월세를 지불하기 위해 장사를 계속 한다고 한다. 심지어 본업뿐만 아니라 다른 부업까지 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고충을 격정 토로한다.

비슷한 이야기가 양산되는 자영업자들의 애환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정책당국은 여전히 개인의 능력과 불행으로 치부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것인가. 서울회생법원의 자영업자 관련 통계를 봐도 상황이 만만치 않다.

자영업자인 영업소득자 채무자의 2022년도 채무총액의 중위값은 약 1억1402만 원 정도로 급여소득 채무자의 중위값인 8508만 원보다 34% 정도가 더 많다. 영업소득 채무자 중 채무액이 4억 원을 초과하는 비율도 2276건 중 164건인 7.2%에 달한다.

영업소득 채무자 월수입에 관한 2022년도 중위값은 약 195만 원이고, 월수입 150만 원 이하도 19.2%에 달한다. 이는 2022년도 전체 채무자 중 월수입 중위값이 209만 원, 150만 원 이하는 13%인 것과 비교했을 때 영업소득 채무자들의 경제상황이 급여소득 채무자들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9월 말이면 85조 원 규모의 자영업자 코로나 대출금 상환유예조치가 종료된다. 금융권과 언론에서는 자영업자들의 대규모 파산의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경제적 파탄의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취약계층인 자영업자의 신용 리스크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 중요 정책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참고로 금융당국은 지난 29일 "향후 3년 동안 일괄적으로 만기연장 조치를 취했고 상환유예도 9월 대출금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은행과 협의토록 한 상환계획서에 따라서 향후 3~4년에 걸쳐서 대출금을 나눠 갚기로 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봤다(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

자영업자의 생존편향에 가려진 존재 증명
 
가게.
 가게.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자영업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대표 격인 '치킨집'이 줄지 않는 것은 일종의 생존편향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수가 외국에 비해 몇 배가 많음에도 계속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존편향'은 영업을 시작한 뒤 실패한 이들은 자주 보이지만 쉽게 잊히고, 계속 보이는 성공한 생존자들의 케이스에 집중하는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낙관론과 눈에 보이는 성공사례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이것은 경쟁과 선택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가게를 열면 개업효과로 반짝 효과를 누린다. 신장개업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상품에 대한 만족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바로 그 옆에 또 그 옆에 계속 신장개업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지만, 신장개업에 묻힌 폐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가게가 문을 닫는 순간 그 가정이 시름에 젖거나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은 새로 문을 연 가게의 화환과 네온사인에 가려진다.

다행히 단골 반찬가게에서는 여전히 각종 나물과 김치, 전과 밑반찬 등을 만들어 팔고 있다. 해질 무렵이면 퇴근하는 주민들이 이곳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대부분의 자영업은 자신들의 생계는 물론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들의 존재와 부존재 사이에 평범한 가정의 저녁이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영업자, #개인회생, #다중채무자, #생존편향, #빚폭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