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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이라는 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모두가 안정을 바라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기존의 근로계약 관계에 속하지 못하고 플랫폼이나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으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애매해지는 이들. 근로계약의 형해화,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비표준적인 고용 형태는 노동자의 권리를 갉아먹으며 날로 확대하고 있다.

기간제 노동자는 4년 새 89만 명이 증가했다.1) 경력 인정을 받지 못해 10년 넘게 일해도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불안정노동자들의 생존에 대한 목소리는 개별화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집단화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불안정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이 노동조합이 아니라, 정부라 호도하며 노동조합 혐오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노동권연구소 장귀연 소장을 비대면으로 만나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권리가 해체되는 지금, 우리가 모색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6월 16일,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의 20주년 기념토론회에서 장귀연 소장이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16일,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의 20주년 기념토론회에서 장귀연 소장이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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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노동

불안정노동은 노동자의 필요가 아니라 명백히 자본의 전략과 필요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자본은 자율, 선택이라는 수사로 마치 일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불안정한 노동에 의존하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불안정노동을 양산한다. 이는 특히 제조업과 같은 전통적 산업 외에 새로운 산업에서 급증했다. 건설기계 운전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등 '특수고용직'의 종류만 놓고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불안정노동이 자본의 전략으로 쓰이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비용 문제다.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값싼 임금으로 노동자를 장시간 사용하고 있죠. 장시간 노동도 문제지만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 바로 초단시간 노동입니다. 장시간 노동은 기업에 부담이 돼요. 오래 일한 만큼 수당을 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짧게 짧게 쓰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서비스업 같은 경우는 한창 바쁜 특정 시간대가 있죠. 그럴 때만 쓰는 거예요. 그러면 건강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 등 다 제외할 수 있잖아요. 장시간 노동이 오히려 초단시간 고용 형태를 부추겨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나라는 생각 도 듭니다."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취업자는 작년 기준 158만 명으로 역대 최고였다.2) 그 수는 2000년 43만 6000명(2.1%)에 불과했으나, 2005년 59만 6000명(2.6%), 2010년 77만 9000명(3.2%), 2015년 86만 6000명(3.3%)으로 점차 꾸준히 늘어났다. 특히 사업, 개인, 공공서비스 및 기타 분야에서 2021년에 비해 1년 사이 4만 4000명이 늘어났다.

짧게 일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의 증가는 불평등의 심화를 가속한다. 근로기준법상 퇴직금과 주휴일, 연차 휴가와 초과노동에 대한 가산 임금, 육아·출산 및 직장내괴롭힘 관련 법과 일부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받지 않은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초단시간 일자리의 상당수가 여성과 고령, 청년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어 이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불안정노동을 양산한다

장귀연 소장은 지금의 근로기준법은 변화하고 있는 고용관계를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강조했다. 특히 웹 기반 플랫폼 노동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미치는 영향도 있다고 분석한다.

"근래 불안정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용하지 않고 노동자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노동자와 고용관계를 맺는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사용하는 거죠. 전통적 의미에서 노동자라는 개념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했다면, 이제는 그 개념 자체가 흐려지고 있는 거죠.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은 특수고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요. 배달 라이더를 생각했을 때, 출퇴근이 강제되지 않는 것도 상당히 많죠.

전통적 의미에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만큼의 시간은 사용자에게 바치겠다고 여겨지는 것이 사라지고 있는 거예요. 또 동시에 여러 사업자와 일을 하거나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한꺼번에 여러 앱을 쓰기도 하죠. 전통적 의미에서의 특수고용과는 다른, 훨씬 더 사용자의 의미가 약화한 것처럼 보여요. 노동자들이 동시에 여러 사업자의 일을 하는 상황을 자본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예요.

혹시 웹 기반 플랫폼을 이용해 본 적 있나요? 정말 다양한 일들이 올라와 있어요. 그걸 보면 아무도 정식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어요. 모든 일이 외주화가 가능해요. 직원을 하나도 고용할 필요가 없으면서 자신의 사업을 유지하는 게 '프리랜서 고용'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죠. 이게 가능해진 조건은 기술의 발전도 한몫했어요. 사업장이든 사무실이든 어떤 장소에 반드시 모여야 했다면, 이제 는 한 공간에 없어도 바로 소통이 되고 일을 할 수 있죠. 고용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출퇴근해라, 이런 지시를 내릴 필요도 없는 거죠."


사용자에게 더 강한 책임을 묻자

올해 5월 1일 노동절에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 확립과 고용세습 타파, 노동 시장 유연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온라인에 남겼다. 모두 노동조합을 겨냥한 것이었다. 모순적이게도 대한민국 헌법을 거론하며 모든 국민에게 자유롭게 일할 권리가 있으니, 선진형 노사관계로 가기 위해 노동 약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노동현장의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겠다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 혐오 정치는 노동 양극화를 부추기고,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뿐이다. 정부는 또한 노동 및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사회복지 정책을 축소시키고 있다. 지난 6월 9일 열린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의 춘계학술대회에서 홍영준 학회장(상명대 교수)은 "실패했던 시장화 민영화 프레임을 반복하려는 것에 많은 사회복지학자가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3) 이 같은 메시지에 대해 장귀연 소장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노동자의 존엄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걸 지키게 만들도록 하는 거예요. 어떻게 사용자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많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지금의 자본이 지는 책임은 너무 약해요. 그렇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에 국한되지만, 직접 고용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조법 2, 3조 개정운동도 진행되고 있는데 사용자 정의를 확대함으로써 적어도 교섭에 나갈 의무를 지우게 하는 거죠.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일부 책임을 묻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이러한 법과 제도가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만약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노동자의 경우 사각지대에 놓이는 거죠.

사용자성의 불명확성으로 책임을 다 묻기는 어렵고, '최소한'이라도 책임지게 하면 된다는 대안들은 계속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 즉 책임을 점점 면제해 주는 방식의 논리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그런 방향이 아니라, 어떻게 책임을 물리게 만들것인가의 방향으로 명확히 가야 하는 거죠."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불안정노동자를 대표하는 게 바로 지금의 정부라고 하는 주장이다. 정부는 법치를 강조하지만 경영계의 이해를 적극 반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약화 시도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폭과 수위를 더 크게 낮춰야 한다는 개정 의견을 기획재정부에서 노동부에 작년 8월 제출한 것만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결코 불안정노동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불안정노동의 시대에 우리에게 놓인 과제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고 있는 기업에 책임을 분명히, 제대로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싸움은 개별화되었을 때 불가능하다. 집단화되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자본과 국가에 책임을 물어온 노동조합이 만들어낸 변화를 끝까지 지키고, 더 진전시키자.

1)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 사 부가조사를 가지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분석 한 결과, 기간제 노동자는 증가 추세다. 2019년 380 만명(18.5%)이던 기간제 노동자는 2022년 469만명 (21.6%)로 늘었다.
2) 작년 '주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취업자 158만명…역대 최대, 2013.01.12.,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view/AKR20230111148500002)
3) 사회복지도 경쟁 붙이자는 '윤석열표 뇌피셜 복지'의 오작동, 2023.06.09., 한겨레 (https://www.hani.co.kr/ arti/society/rights/1095324.html)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나래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8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불안정노동, #노동_파편화, #사용자_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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