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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영산성지의 대각 터에 세워진 일원상. 둥근 일원상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멋스럽다.
 원불교 영산성지의 대각 터에 세워진 일원상. 둥근 일원상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멋스럽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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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가? 불교인데, 석가모니 부처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일원상'이 있다. 일원상은 세상의 모든 진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속이 텅 비어 있지만, 가득한 우주만유(宇宙萬有)를 상징한다. 허상일 뿐,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영광 길용마을로 가는 길이다. 길용마을은 이른바 '영산성지(靈山聖地)'로 알려져 있다. 원불교의 태 자리다. 원불교를 창시한 대종사 박중빈이 태어난 곳이다. 박중빈이 큰 깨달음을 얻고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영산성지로 가는 도로의 이름도 '성지로(聖地路)'로 붙여져 있다. 이 곳을 지난달 28일 찾았다. 
  
모두 둥그렇다
 
영광 길용마을로 가는 길. 줄지어 선 나무가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영광 길용마을로 가는 길. 줄지어 선 나무가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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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 탓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둥그렇다. 산도, 들도, 바다도 모난 곳이 없다. 밭이랑도 부드럽게 구부러져 있다. 감, 콩이 동그랗고 고추, 가지도 매한가지다. 어쩌다 마주친 교무(敎務)의 얼굴도 일원상처럼 둥글둥글하다. 교무는 원불교의 성직자를 일컫는다.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표정까지도 환하고 밝다.

박중빈 대종사가 얘기한 '부처님'들이다. 박중빈은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부처'라고 했다. 모든 사물도, 누구라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때와 장소, 대상을 가리지 않는 참선을 얘기했다.

원불교는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불교의 오랜 관습을 반대한다. 출가한 수행자 중심이 아닌, 신도 중심을 외쳤다. 사후 세계가 아닌, 현세의 건강한 삶을 목표로 내세웠다. 낮에는 일상생활을 하고, 밤에 수도하는 생활 속 종교다.
  
고추밭 너머로 보이는 옥녀봉. 어린 박중빈이 기도하러 자주 올라 다닌 봉우리다.
 고추밭 너머로 보이는 옥녀봉. 어린 박중빈이 기도하러 자주 올라 다닌 봉우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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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빈 생가에서 본 길용마을. 밭 이랑에 콩이 심어져 있다.
 박중빈 생가에서 본 길용마을. 밭 이랑에 콩이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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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성지'로 통하는 길용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에 속한다. 마을이 크고작은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산이 많은 지역이다. 상대적으로 논밭이 적다. 환경은 열악했고, 주민들은 가난했다. 산에서 한 땔감을 갖고 법성포에 가서 팔고, 생필품을 샀다.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은 1891년 5월 5일 길용리 영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범상치 않았다. 아니 별났다. 전해지는 이야기도 동화 같다. 박중빈은 산속에서 자주 기도를 했다. 15살에 혼인을 했다. 여전히 도사를 만나겠다며 세상을 떠돌았다. 가족의 생계는 관심 밖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박중빈은 '폐인'이었다고 한다. 얼굴엔 병색이 완연했다. 기도한다고 몇날 며칠 밤을 지새기도 했다. 하루종일 '멍'을 때리며 서 있는 일도 다반사였다. 모든 것이 깨달음과 구도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 터에 세워진 일원상. 세상의 모든 진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 터에 세워진 일원상. 세상의 모든 진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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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박중빈이 몰아의 경지를 넘나들며 터득한 큰 깨달음이다. 1916년 4월 28일, 원기(圓紀) 원년 음력 3월 26일이었다.

박중빈은 자신의 깨달음이 부처의 행적과 가르침에 서로 통한다고 봤다. 불법을 근간으로 새 세상을 열 것임을 밝혔다. 박중빈은 1918년 제자 9명, 신도 40명과 함께 대규모 간척사업에 나섰다.

일하고 공부하는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 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영혼에 치우친 종교의 편향이나 육신의 안일만을 찾는 세속의 삶을 떠나 몸과 마음의 합일을 지향하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생활종교인 셈이다.

소박한 문화 
  
박중빈 대종사의 생가. 원불교의 성보 제1호로 지정돼 있다.
 박중빈 대종사의 생가. 원불교의 성보 제1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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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도실 터에 세워진 조형물. 일원상과 9명의 제자를 상징하고 있다.
 구간도실 터에 세워진 조형물. 일원상과 9명의 제자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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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촌에 박중빈 대종사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1981년에 복원했다. 생가는 원불교의 성보 제1호로 지정돼 있다. 대종사가 9명의 제자와 함께 마련한 첫 수련의 집, 구간도실 터도 생가 옆에 있다. 초가에 가로와 세로 각 3칸, 모두 아홉 칸의 방이다. 9명의 제자와 함께 9칸의 방에서 도(道)를 익히고 기도했다고 구간도실(九間道室)이다.

생가 뒷산의 옥녀봉은 어린 박중빈이 자주 올라다니던 곳이라고 한다. 널따란 삼밭재 마당바위는 박중빈이 산신을 만나기 위해 날마다 기도했던 곳이다. 마을 가운데에 있는 구호동 집터는 박중빈이 큰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산 곳이다. 이 집은 깨달음을 얻은 대종사가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다. 당시 집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박중빈이 선 채로 경지에 들었다는 선진포 입정 터, 큰 깨침을 얻은 노루목 대각 터도 있다. 박중빈이 일원의 진리를 깨치며 새 세상을 여는, 대각(大覺)을 얻은 곳이란다. 여기에 옥녀봉에 새겨진 법신불 일원상과 '만고일월(萬古日月)'이 새겨진 대각비가 세워져 있다. 원불교의 야외법당인 셈이다. 원불교 성지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 터에 세워져 있는 대각비. ‘만고일월(萬古日月)’이 새겨져 있다.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 터에 세워져 있는 대각비. ‘만고일월(萬古日月)’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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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평 방죽에 세워진 일원상. 바닷물을 막아 만든 간척논 한쪽에 방죽이 만들어져 있다.
 정관평 방죽에 세워진 일원상. 바닷물을 막아 만든 간척논 한쪽에 방죽이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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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을 막아 만든 간척논도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관평 방언답이다. 박중빈이 제자들과 함께 삽과 괭이로 일궜다. 방언답은 초기 교단의 물적 토대가 됐다. 방언답 한쪽 방죽에 수련이 가득하다. 성지에서 만나는 수련이 더 고고해 보인다. 마음도 편안해진다.

원불교의 역사와 초기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창립관, 원불교 성직자를 양성하는 영산선학대학교, 대안학교인 성지고등학교도 마을에 있다. 검소하면서도 소박한 원불교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영광 백수해안도로 풍경. 크고 작은 섬과 기암절벽이 한데 어우러져 멋스럽다.
 영광 백수해안도로 풍경. 크고 작은 섬과 기암절벽이 한데 어우러져 멋스럽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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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백수해안도로에서 만나는 괭이갈매기 조형물. 바다 위를 걸으면서 전망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영광 백수해안도로에서 만나는 괭이갈매기 조형물. 바다 위를 걸으면서 전망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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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성지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백수해안도로도 아름답다. 어느 쪽에서 출발하든지 상관없이 오감만족을 선사할 것이다. 칠산바다에 떠 있는 크고작은 섬과 기암절벽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이룬다. 해안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손가락에 꼽히는 도로다.

해안도로변에 새로운 볼거리도 많이 들어서 있다. 칠산바다를 상징하는 괭이갈매기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바다 위로 놓인 투명한 유리 위를 걷는 스카이워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단골손님'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가수 조미미의 노래비도 있다. 영광은 조미미의 태 자리다. 해질 무렵 만나는 황홀한 노을은 덤이다.
  
백수해안도로에서 만나는 가수 조미미의 노래비. '바다가 육지라면' '단골손님' 등을 부르며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누렸던 조미미는 영광에서 태어났다.
 백수해안도로에서 만나는 가수 조미미의 노래비. '바다가 육지라면' '단골손님' 등을 부르며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누렸던 조미미는 영광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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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영산성지, #원불교, #일원상, #영광영산성지, #백수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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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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