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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에서 며칠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발하는 미니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다합에서 카이로로 향하는 버스입니다. 9시간을 달려야 하는 아주 긴 노선입니다. 버스에는 빈 자리 없이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다합에서 큰 길을 따라 시나이 반도를 관통했습니다. 한참을 달려 수에즈 운하를 넘었습니다. 가는 길 곳곳에 검문소가 있더군요. 버스 기사는 아예 승객들의 여권과 신분증을 걷어갔습니다. 검문소가 나올 때마다 신분증 한 뭉치를 경찰에게 건넵니다.
 
하저터널로 건넌 수에즈 운하
 하저터널로 건넌 수에즈 운하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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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를 건넌 뒤에도 두 시간을 더 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카이로에 도착했습니다. 평화로웠던 다합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대도시였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예상하지 못해서, 처음에는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물론 카이로 여행의 핵심은 기자의 피라미드였습니다. 카이로뿐 아니라 이집트의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만큼 피라미드 방문에 대해서도 여러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카이로에 도착한 첫날 마주한 혼란스러운 도시의 분위기 덕에, 그런 주의사항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매표소 직원부터 뇌물을 요구한다든지, 끈질기게 호객을 하는 현지인 상인이 있다든지, 카메라를 들고만 있어도 팁을 요구하는 낙타 몰이꾼이라든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도 성행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자 피라미드로 향하기 전, 조금은 긴장했습니다,
 
기자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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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제가 들었던 이야기와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얼마 전 정부 당국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했다고 하더군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함인지, 입장권은 아예 현금 결제가 불가능했습니다. 무조건 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었죠. 이것은 피라미드 뿐 아니라 카이로 내 관광지가 대부분 그랬습니다.

유적 내부에 입장한 뒤로는 경찰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호객을 하는 상인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대답에 세 번 이상 되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넓은 유적 안을 이동하기 위해 낙타나 말을 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조차 강요하는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유적에 들어와 이내 안심했습니다.

사실 그런 주의사항을 신경쓸 겨를도 썩 없었습니다. 7월의 해는 뜨거웠지만, 그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신경쓰기에는 피라미드의 분위기가 너무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죠.
 
기자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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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피라미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제가 받은 인상은 그저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느낌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 거대한 규모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피라미드는 그리 보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따로 입장권을 구매하면 피라미드 내부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피라미드 벽면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관리에 더 신경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유적 주변도 더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 관광을 마치고 나온 지금의 회상입니다. 막상 안에서는 그런 것도 썩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내 눈 앞에 거대한 조형물이 있다는 것. 이 거대한 건물을, 벽돌을 한 장 한 장 올려 쌓아냈다는 것. 그것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저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압도되었습니다.
 
피라미드에 오르는 사람들
 피라미드에 오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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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지역에 처음으로 고대 국가 형태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6000년 경입니다. 나일강 상류와 하류를 통일한 이집트 제1왕조가 등장한 것이 기원전 3150년 경이죠.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인 제32왕조가 멸망한 것이 기원전 30년입니다.

기자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은 고대 이집트 제4왕조 시절입니다. 기원전 26세기에 만들어진 유적이죠. 그러니 기자의 피라미드가 세워지고도 2500년이 넘게 지나서야 고대 이집트는 멸망한 것입니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깊은 역사를 품은 유적입니다.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고대 이집트가 멸망할 때까지의 시간이, 이집트 멸망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깁니다. 이집트의 역사도, 피라미드의 역사도 그만큼이나 긴 시간을 거쳐 왔습니다.
 
기자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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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거의 5천여 년 전의 유물입니다. 그동안 이 피라미드 앞을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인류가 느꼈을 경이감과 압도감은 시대를 뛰어넘어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거대한 유물은 사라지지도 파괴되지도 않고 5천 년의 시간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파괴나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실제로 세계의 수많은 유물이 그런 방식으로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자에 서 있는 세 구의 피라미드만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어쩌면 이 앞에 선 정복자들조차, 결코 무너뜨리거나 무시할 수 없는 압도감을 공유했기 때문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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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전, 인류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5천 년 가까운 긴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우리 눈 앞에 무너지지 않고 서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이것을 파괴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앞에 섰을 때의 경이를 인류가 함께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저 거대한 벽돌의 무지일 뿐입니다. 높게 쌓은 사각뿔 모양의 건축물입니다. 정교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는 외장에 칠했다던 대리석마저 다 벗겨져 원형을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벽돌 한 장 한 장이 모여 그 거대한 형태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시대도 언어도 인종도 관계 없이 우리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피라미드를 쌓은 것은 고대 이집트의 한 왕조였습니다. 피라미드의 건설도 이제는 미스터리나 신화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피라미드를 지킨 것은 이집트를 거쳐 간 전 시대의 인류가 함께 해낸 것이었습니다.

제가 피라미드에서 느낀 압도감은 꼭 그 높이와 거대한 크기에서만 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든 인류가 이 앞에 서서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는 사실.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이 유물을 지켜냈다는 사실. 피라미드의 경이는 그 역사성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이집트, #카이로,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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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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