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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아카바에 돌아왔습니다. 아카바는 요르단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해안 도시입니다. 덕분에 아카바에서는 이집트로 향하는 페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도 배를 타고 이집트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육로로 이집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경유해야 하거든요. 아카바에서 배를 타면 곧바로 이집트의 뉴웨이바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택시를 타면 다합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뉴웨이바로 향하는 페리
 뉴웨이바로 향하는 페리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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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에서 출발하는 배는 밤 10시에 출항할 계획이었습니다. 정시에 출발한다면 새벽 2시 경에 뉴웨이바 항구에 도착하죠. 하지만 페리는 바다의 상황에 따라 정시성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게다가 제가 탑승한 날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애초에 페리 탑승이 10시 30분은 되어야 시작됐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정도 지연은 예사라고 하더군요. 배는 자정이 다 되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뉴웨이바에는 새벽 4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해가 뜬 뒤였습니다.

이집트 비자를 받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다합까지 도착한 것은 8시 30분을 넘어서였습니다. 게다가 지도에 표시된 숙소의 위치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아 한참을 헤맸습니다. 겨우 와이파이를 잡아 숙소의 제 위치를 확인한 뒤 방에 들어가자 벌써 10시가 넘었습니다.
 
다합의 바다
 다합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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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웨이바로 향하는 배에서도, 다합으로 향하는 차에서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다합에 도착한 뒤 예상 외로 길까지 헤맸습니다. 그러자니 아주 피곤했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숙소에서 나와 다합 시내를 둘러 봤습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시내를 여유롭게 걸어 보았습니다. 밤새 바다를 건너 왔는데, 그제야 다합의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청아한 푸른 빛의 바다에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다합의 바다
 다합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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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건너 온 아카바 만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이제 정말 아시아를 떠났구나. 이제 아프리카에 들어왔구나.

물론 저는 아직 수에즈 운하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다합은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 도시니까요.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아직 아프리카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바다를 건너 왔다는 느낌 때문일까요, 저는 이제 저의 아시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6개월을 넘게 아시아를 여행했습니다. 다합의 바다를 바라보며, 그간 다녔던 아시아 곳곳을 생각했습니다. 중화민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각국을 여행했습니다. 인도와 네팔에서 두 달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의 도시들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튀르키예와 서남아시아를 여행했습니다.

거대한 아시아 대륙의 각지에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를 만났습니다. 그것들이 쌓인 다양한 역사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라는 대륙 안에서, 아시아인이 얼마나 놀랍도록 다르고 또 놀랍도록 닮았는지 보았습니다. 그들이 역사를 구성하고 국가를 만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가득찬 시간이었습니다.
 
아카바 만
 아카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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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은 세계의 여행자가 모이는 평화로운 휴양지입니다. 하지만 시나이 반도 전체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죠. 작년까지만 해도 다합을 포함한 시나이 반도 전역이 여행경보 3단계 '출국 권고' 수준이었습니다. 10여년 전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탑승한 버스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까지 벌어졌죠.

시나이 반도는 현대사의 격전지였습니다. 수에즈 운하와 인접해 있으니, 그 전략적 중요성이 상당했죠.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서는 시나이 반도를 두고 분쟁이 오갔습니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차지했죠.

이집트는 1973년에야 4차 중동 전쟁으로 시나이 반도를 어느 정도 회복했습니다. 지금처럼 시나이 반도가 완전히 이집트에 돌아온 것은 1982년의 일입니다. 그 사이 시나이 반도의 치안 상태는 심각하게 악화되었죠.

이스라엘이 지배하던 시기, 본토의 3배에 달하는 거대한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이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집트가 돌아온 뒤에도 시나이 반도에는 여러 테러 단체가 준동했습니다.
 
다합의 바다
 다합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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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상황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다합을 비롯한 휴양지의 여행경보는 1단계 '여행 유의' 단계입니다. 시나이 반도 남부 지역은 2단계 '여행 자제' 단계를 유지하고 있죠. 지난해에는 시나이 반도 남부 샤름 엘 셰이크에서 UN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7)도 열렸습니다.

그러나 시나이 반도 북부는 여전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저도 시나이 반도를 지나며 군인이 서 있는 검문소를 몇 번이나 거쳐야 했습니다. 경로상 시나이 반도 북부로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다합의 밤
 다합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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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는 도시가 시나이 반도의 작은 휴양지라는 사실이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끝없이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지역. 그 사이에서 사람들이 찾아낸 바닷가의 작은 마을.

이곳이야말로 여행의 한 장을 정리하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그 바다를 건너 온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그 바다를 건너기 위해 지나야 했던 수많은 아시아의 도시를 떠올려 봤습니다. 모두들 평화와 혼란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여행하고 있지만, 모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만 다녔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여름이지만, 그늘에 서면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마주하고 있는 다합의 바다를 바라봅니다. 저는 그렇게 아시아를 떠나 새로운 대륙으로 갈 준비를, 새로운 바다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이집트, #다합, #아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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