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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의 가시오이
▲ 오이 텃밭의 가시오이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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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기 전에 오이를 땄다. 포기마다 노오란 꽃이 방실대며 웃고 있었다. 오이는 앙증맞은 크기에서 어느새 늘씬하니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했다. 제법 오이꼴이 난다 싶더니 불과 며칠 사이에 그렇다. 한번 열리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몇 개가 동시에 자랐다. 땅바닥에 닿은 오이 하나가 휘어지고 있었다. 가위를 들고 조심스럽게 오이꼭지를 잘랐다.

가시오이는 이름값을 했다. 진녹색에 우둘투둘 성깔을 있는 대로 부렸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만지기 힘들 정도로. 온몸으로 싱싱함을 뽐내는 녀석을 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내 말의 가시들은 누군가에게 닿아 사납고 모질게 독기를 뿜어 냈겠지만 오이의 가시는 생명력 그 자체다.

딴 지 며칠 지난 오이는 가시가 무디어져서 아프지 않다. 시들면 가시도 무뎌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 맘 속의 가시는 점차 둔해지고 때로 감출 줄도 알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이다.
 
오이깍두기용 오이
▲ 오이 오이깍두기용 오이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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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잎사귀 뒤에 숨어 있는 놈까지 다섯 개. 남편이 만든 영양제와 천연 살충제 덕분인지 시중에 파는 오이보다 1.5배는 커 보였다. 청양고추와 풋고추도 조롱조롱 매달렸다. 미인고추 다섯 포기, 청양고추 세 포기. 집 뒤 빈터엔 가지와 호박 그리고 방울토마토 두 포기씩을 심었다.

농사를 소꿉장난처럼 짓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도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둘이 먹기에 충분하다. 소일거리 삼아 하는 데다 건강한 먹거리를 얻고 싶어서니 욕심부릴 것 없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힘에 부치면 꾀를 부리게 된다.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키우려면 적당한 양이다. 
 
집 뒤 빈 터에 심은 방울 토마토와 가지
▲ 방울토마토와 가지 집 뒤 빈 터에 심은 방울 토마토와 가지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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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오이깍두기

잘 자란 오이를 보니 어릴 적 아버지가 키우셨던 어릴 적 텃밭의 오이가 생각났다. 꼼꼼한 성격의 아버지는 지줏대를 세우고 줄을 촘촘하게 매서 오이 줄기가 잘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하셨다. 동네 사람들은 어린애 팔뚝만 한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보고 어쩌면 그리 잘 키웠냐고 입을 모았다.

어머니는 텃밭의 오이로 깍두기를 담갔다. 오이깍두기는 오이를 깍두기처럼 썰어 텃밭에서 자란 부추를 섞어 버무리면 되는 손쉽게 담을 수 있는 김치다. 여름 반찬으로는 그만한 게 없었다. 갓 버무려도 아삭한 맛이 일품이지만, 잘 익어 약간 새콤한 맛이 돌면 여름 더위에 잃었던 입맛이 살아났다.

냉장고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작은 항아리처럼 생긴 주황색 플라스틱 김치통에 오이깍두기를 담아 우물 속에 매달았다. 참외나 오이, 수박도 우물물을 길어 담가 놓으면 시원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도 해마다 여름이면 오이깍두기를 몇 차례 담는다. 예전엔 오이소박이를 만들었다. 오이소박이는 모양이 예쁘고 먹음직스럽긴 하지만 손이 많이 간다. 직장 생활하면서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은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텃밭의 오이와 부추로 담근 오이깍두기
▲ 오이깍두기 텃밭의 오이와 부추로 담근 오이깍두기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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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있어야 말은 다정해지고 음식도 섬세해진다. 오이깍두기는 숭덩숭덩 썰어서 금방 담글 수 있고 하나씩 집어 먹기도 편하다. 오이가 크고 실해서 7개 같은 다섯 개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씨를 제거해야 끝까지 아삭아삭 하게 먹을 수 있다. 어제 잘라 둔 부추를 섞어 버무리니 작은 김치통 하나 가득이다. 간도 심심하니 딱 좋다. 올해 첫 번째 오이깍두기는 성공.     

뒷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 준비할 시간. 시원한 콩국수가 생각났다. 어릴 적부터 밥에 든 콩은 골라냈지만 콩국수나 콩국은 좋아했다. 어머니는 여름철 별미로 콩국수를 자주 해 주셨다. 밭에서 수확한 흰콩을 삶아 여름철이면 콩물을 만들어 국수를 말아먹거나 콩죽을 끓여 주셨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고기대신 원기를 보충하는 방편이었지 싶다. 그땐 밤새 불려둔 콩을 삶아 맷돌에 갈았다. 마루에 큰 대야를 놓고 그 안에 맷돌을 넣었다.

나도 어머니 옆에 앉아 맷돌 입구로 한 숟갈씩 콩을 넣거나 맷돌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맷돌 사이로 뽀얀 콩물이 곱게 갈려 나왔다. 믹서기로 가는 것보다 맷돌로 가는 것이 콩의 입자가 살아 있어 더 고소하게 느껴졌다. 그 맛을 잊지 못해서인지, 어머니를 그리워해서인지 여름이면 콩국수를 즐겨 먹는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한다.

두부와 우유, 견과류면 콩국수 준비 끝
 
두부를 이용한 콩국수와 오이깍두기로 차린 저녁상
▲ 두부로 만든 콩국수 두부를 이용한 콩국수와 오이깍두기로 차린 저녁상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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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불려 놓지 않았다. 콩국수 한 그릇 먹자고 옷 갈아입고 차 타고 나가기는 더 번거롭다. 오늘처럼 갑자기 콩국수가 먹고 싶을 때 간단한 방법이 있다. 두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일반 두부를 이용해도 되지만 손두부가 고소한 맛이 있어 좋다. 늘 장을 보는 대형 마트에 국산 콩으로 지역에서 만든 손두부를 판다. 집에 떨어지지 않는 식재료 중 하나다.

믹서기에 두부와 우유, 견과류 한 줌, 땅콩버터 한 숟갈 넣고 소금 간하면 끝이다. 물론 콩을 삶아서 갈아 만든 것보다 맛은 덜하다. 하지만 국수만 삶으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니 여름철에 자주 이용한다. 아들이 며칠 전 전화로 콩국수를 사 먹었는데 대식가인 아들이 남기고 싶을 만큼 맛이 없었단다. 엄마표 두부 콩국수가 훨씬 맛있었다고 하니 적어도 몹쓸 맛은 아닌 걸로.

가만히 있어도 열기가 치솟는 여름철엔 요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불 앞에서 한두 시간 일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은 활화산 같이 달아오른다. 밑반찬을 만들어 두어도 제때 먹지 않으면 쉽게 상해서 버린다. 애써 만든 음식이 저세상으로 가게 되면 맘도 상한다.

오늘은 여름철 불 앞에 서는 시간을 줄여 주는 효자 음식 두 가지를 만들었다. 오이깍두기는 여름 내내 식탁 위에서 존재감을 뽐낼 테고 콩국수는 단골손님이 될 것 같다. 콩국수에 아삭한 오이깍두기 한점 곁들이니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식물매거진 Groro에도 실립니다.


태그:#여름음식, #오이깍두기, #오이김치, #콩국수, #여름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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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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