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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미 팀장은 지난 2006년 9월 7일 교통사고로 숨진 육군 A대위 사건을 조사해, 고인이 졸음 운전으로 사망했다고 결론내렸던 과거 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뒤집고 A대위의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한상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 2팀장 한상미 팀장은 지난 2006년 9월 7일 교통사고로 숨진 육군 A대위 사건을 조사해, 고인이 졸음 운전으로 사망했다고 결론내렸던 과거 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뒤집고 A대위의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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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17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육군 A대위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2006년 9월 7일 밤 발생한 사건은 비교적 단순해 보였다. 과거 군 수사기관은 휴가를 받아 경기도 파주의 소속부대를 출발해 전북 익산의 집으로 향하던 A대위가 앞에서 주행하던 12톤 화물트럭의 뒷부분을 그대로 들이받아 현장에서 사망한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당초 쟁점은 지휘관으로부터 휴가를 득해 집에 오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순직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헌병(군사경찰)이 사고 원인으로 추정한 "전방 주시 태만 및 졸음운전"으로 정 대위가 목숨을 잃었다 해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순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유족 측의 요청이었다. '휴가 출발 중 사고사'가 인정된다면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터였다.

사건을 담당한 진상규명위 한상미 조사3과 2팀장은 국방부와 육군으로부터 고인에 대한 기록들을 입수해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군 수사기록을 살펴보던 한 팀장은 석연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

"당시 트럭 운전자의 진술이 좀 어색했어요. 자신은 시속 70km로 '정주행'하고 있었는데, A대위의 차가 뒤에서 들이 받았다는 거예요. 보통은 70km 정도로 주행했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이분은 '정주행'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 저는 좀 거슬렸어요."

수사기록과는 다른 현장 사진... "뭔가 이상했다"

한밤중 캄캄한 고속도로 2차선에서 일어난 사고. 한 팀장은 남아 있는 수사기록들을 한 자 한 자 꼼꼼히 들여다봤다. 군사경찰이 작성한 기록은 너무 부실했다. 관련 사진도 달랑 4장뿐, 사고현장을 찍은 사진 2장과 정 대위가 운전하던 무쏘 차량 사진 2장이 전부였다. 들이박혔다는 트럭 사진은 아예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차량의 손상부위가 군 수사기록과는 달랐던 것이다. 정속으로 주행하던 트럭의 뒷부분을 그대로 들이받았다는 차량의 앞부분이 운전석 부분으로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A대위가 운전했던 무쏘 차량은 운전석 쪽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 A대위가 운전했던 무쏘 차량 A대위가 운전했던 무쏘 차량은 운전석 쪽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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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운전자의 말과는 달랐어요. 차량이 진행하던 방향 그대로 추돌했다면 망인 차량 정면이 망가졌어야 하는데, 사진으로는 정면 추돌은 아니었어요. 손상 부분이 틀어져 있다는 건 측면에서 충돌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부실한 수사기록이었지만, 다행히 현장에 출동한 수사관이 실측해 작성했던 상황도는 남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A대위 무쏘 차량은 트럭과 충돌한 후 6.7m를 이동한 후 정차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추돌 직후 무쏘가 화물트럭에 뒷부분에 결착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뒷부분을 들이박힌 화물트럭 운전자가 충돌을 감지한 후 브레이크를 밟고 정차한 거리 역시 6.7m란 결론이 나온다. 만약 트럭 운전자의 진술대로 '시속 70km로 정주행하고 있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정지 거리였다.
 
A대위 사망 사고와 관련 헌병(군사경찰)이 작성한 현장 세부 약도.
▲ 현장 세부 약도 A대위 사망 사고와 관련 헌병(군사경찰)이 작성한 현장 세부 약도.
ⓒ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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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장은 교통사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누락된 군수사기록을 수소문했다. 육군본부 법무실에 보관됐던 관련 자료가 지난해 7월 충청전라지역 검찰단으로 이송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망사건 관련서류는 영구보존을 해야 해요. 기록이 없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혹시 전자화되지 않고 종이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서류 창고에 가서 박스들을 일일이 다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간곡히 요청해서 그쪽 주무관이 창고를 다 뒤졌어요. 그랬더니 누락된 부분이 나왔던 거예요."

이렇게 찾아낸 기록 중에는 사고 직후 트럭 뒷부분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트럭 번호판 아래 철제 바가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 있다는 사실은 A대위의 차량이 뒤에서 정면으로 추돌했다는 트럭 운전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밀분석을 의뢰했던 교통사고조사 전문가 2명이 군 수사기록을 근거로 추돌 상황을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A대위의 무쏘 차량과 화물트럭의 손상부위를 미루어 볼 때 두 차량이 정주행 중 충돌했다는 현장 상황도에는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사고 당시 트럭의 속도가 시속 18km~20km에 불과했고, 충돌 당시 화물 트럭은 갓길에서 2차로로 진입하고 있었다고 추정했다.

반면 A대위의 과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충돌지점은 도로가 우측으로 굽은 곡선구간이 시작되고 약 250m를 진행한 지점으로 A대위의 차량은 정상적으로 곡선궤적을 따라 진행한 것이 확인되어 졸음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또한 A대위가 사고지점 고속도로 제한속도인 110km로 주행하다 위험을 감지하고 급제동해 충돌 당시 (추정) 속도인 64km로 감속했다는 사실 역시 그가 졸음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전문가들은 A대위가 전방주시를 태만히 했을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하향전조등이 비추는 범위가 40m 내외이고, A대위가 사고지점 고속도로 제한속도인 110km로 주행했다면 갑자기 갓길에서 2차로로 진입한 트럭을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길이가 10m가 넘는 트럭의 측면에는 아무런 등화장치도 없었다.

국가기관의 한 교통사고 분석 전문가는 "충돌시 화물차량과 같이 18km/h로 왼쪽 사선 진행하는 것을 40m 이내에서 확인하게 된다면 무쏘 운전자(A대위)가 화물트럭과 충돌을 피할 가능성은 없음"이라고 결론 내렸다. A대위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 만에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한 팀장은 진술조서 작성을 위해 A대위 유가족과 옛 상관, 부하를 만났던 일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ROTC 출신인 A대위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사고 당시 그는 첫돌을 갓 넘긴 아들을 만난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고 했다.

"검열과 훈련이 계속 이어지면서 부인과는 사고 나기 3일 전 통화한 게 마지막이었다고 해요. 부인은 남편이 휴가 나온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들었던 거예요. 어머니께는 사고 나기 30분 전에 전화를 해서 '곧 집에 도착해요'라고 했는데, 그게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어요."

지금은 장군이 된 A대위의 옛 대대장은 한 팀장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사고 당시 A대위 차량 조수석에는 대대장이 사준 아들의 첫 돌 선물이 놓여 있었다.

"이분은 A대위가 사고가 난 직후 영안실까지 와서 염하는 것까지 직접 봤는데,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어서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며 우시더라고요. 자신의 부하 중 가장 군인다운 군인이었다면서요."

A대위와 함께 근무했던 부사관은 그를 유달리 책임감이 강했던 지휘관으로 기억했다.

"행군 중 휴식 시간에 A대위가 군화를 벗었는데, 발톱 몇 개가 빠져서 온통 피범벅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차량으로 이동해서 먼저 치료부터 받으시라'고 했더니, '그러면 병사들 통솔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끝까지 행군을 마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발톱 10개가 다 빠졌더래요. 일과 시간 중에는 핸드폰도 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군인이었는데, 항상 품속에 간난장이 아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했답니다."

한 팀장은 A대위의 부인에게 조사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전화를 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부인은 처음에는 조사결과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그때까지도 이 분은 망인이 잘못을 했는데, 그래도 순직으로 처리될 기회가 생겼나보다 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래서 그게 아니라 '트럭이 사고를 유발해서 망인이 돌아가신 거다'라고 말씀드렸는데,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다가 전화가 그냥 툭 끊겼어요. 나중에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서 서 있을 수가 없었데요.

순직처리가 가능하다는 것보다도 사고가 졸음운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으셨어요. A대위 부모님들조차도 그렇게 성실하고 반듯하던 아들이 졸면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불명예처럼 받아들이셨던 거예요. 졸음운전으로 결론 내린 헌병 수사가 이분들께는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깊은 상처였던 겁니다."


"군복 입고 돌아가신 분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한 팀장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진상규명위는 지난 6월 22일 A대위가 "순리적 경로로 귀가하던 중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고속도로 갓길에 정차해 있던 화물트럭이 충분히 가속하지 않은 상태로 도로에 진입함에 따라 이를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다"며 "타인의 불법행위에 의해 불가피하게 사고를 당했음을 밝혀 진상규명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A대위의 사망구분을 순직으로 재심사해 줄 것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지난 2018년말 진상규명위가 조사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팀장은 50건을, 2팀은 총 268건의 군사망 사건을 처리했다. 5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긴 했지만, 위원회 조사 대상이 되는 전체 비순직 군인 사망자가 3만900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진상규명위 활동시한이 오는 9월 13일로 다가옴에 따라 한 팀장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완벽하진 않다고 해도, 어떻게든 단서를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라도 국방부 조사본부든 별도의 기관이든 그래도 뭔가를 해볼 실마리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가를 위해 군복을 입었다 돌아가신 분들인데,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하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태그:#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한상미, #졸음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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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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