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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노동, 민생, 민주, 평화 파괴뿐 아니라 노동자 시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후퇴와 개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노동시간 단축, 중대재해기업 처벌등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제기하고 일부 진전된 성과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해 공동행동에 나섭니다. 공동행동은 7월 초 발족하여 버스킹, 토론회, 문화 공연 등 현장과 시민과 함께하는 사업을 집중 전개해나갈 예정입니다.[기자말]
35년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군의 묘소 앞에서 참배 중
▲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5주기 35년전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군의 묘소 앞에서 참배 중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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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 2일, 당시 만 15세의 청소년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했다. 올해로 35주기다. 1973년생인 문송면은 살아 있었다면 올해 만 50세가 됐을 것이다. 지금 사망해도 이른 나이인데, 무려 35년 전에 산업재해로 세상을 떴다.

충남 서산 출신인 문송면은 산업체 부설 야간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중학교를 채 졸업하기 전인 1987년 12월 상경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니기로 하고 들어간 회사는 영등포에 있던 협성계공이다. 수은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드는 회사였다. 수은과 유기용제를 다량 사용했지만, 국소배기시설이나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위험한 작업환경이었다.

청소년인데도 하루 11시간 장시간 노동을 했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한다는 핑계로 대가는 저임금에 불과했다. 건강했던 청소년이 불과 2개월 만에 불면증, 두통, 허리와 다리의 통증, 전신 발작 등의 증상으로 일을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그 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그로부터 또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직업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뒤늦게 직업병을 진단받고도 난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88년 4월 7일 노동부에 산재요양신청서를 냈으나 회사에서 산재 신청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아, 이를 핑계로 노동부는 산재요양신청서를 반려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 사건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고, 청소년 노동자가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이다지도 빠르게 건강이 악화됐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뒤에야, 6월 말 산업재해로 승인되었다. 산재가 승인되어 산재 지정 병원으로 옮긴 지 이틀 만에 운명하고 말았다.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 
 
종합예술단 <봄날> 공연
▲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5주기 종합예술단 <봄날> 공연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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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의 죽음은 한국 사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문송면 사망 직전인 1987년 7~9월 대투쟁을 통해 건설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을 중요한 조직적인 과제로 삼게 되었다. 문송면 사망과 1987년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 직업병 투쟁에 사회운동이 함께 하면서, '산재 추방'을 목표로 하는 노동운동의 흐름도 생겼다.

노동자, 시민의 투쟁으로 한국 사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조금씩 나아졌다. 문송면의 산재 신청을 방해했던 '사업주 날인제도'는 폐지되었고, 노동 가능 최저연령도 1987년 13세에서 15세로 높아졌다. 표준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연장노동시간은 주 12시간 이내로 제한되었다.

물론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과 농축수산업의 대부분에는 노동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고, 근로계약 자체를 회피함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다른 사고성 재해가 줄어드는 속도에 비해 산재 사망 사고는 천천히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그 사이 위험의 외주화는 더 깊어지고, 이주노동자·소규모사업장 노동자·고령노동자 등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안전보건 위험이 집중되고 있다.

그래도 한국 사회는 조금씩 전진해 왔다. 산재보험 적용 노동자는 1988년 570만 명에서 2022년 2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산업재해율((재해근로자수 ÷ 산재 적용대상 근로자수) × 100)은 1988년 2.48%에서 2022년 0.65%로 낮아졌다. 이 정도 경제 수준 국가들 중 여전히 매우 높은 편이지만, 사고사망만인율 역시 1998년 2.19에서 2022년 0.43까지 낮아졌다. 하청과 도급으로, 꼬리 자르기로 산재 책임으로부터 도망쳐왔던 진짜 경영자와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은 이렇게 우리가 투쟁으로 쟁취해 온 소중한 변화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 더 이상의 확장을 막기 위한 반격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들의 시도를 '생명안전 후퇴'라고 부른다.

노동자 책임을 확대하고, 기업 책임을 줄이겠다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는 노골적이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는 얘기를 흘리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노동자의 책임을 더 분명히 해야 한다는 신조를 내비치더니,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법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노동자·시민의 공분으로 잠시 주춤한 '근로시간 개편안' 추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하루/한 주의 노동시간 제한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한 주에 12시간까지로 연장근로를 제한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 많은 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매일, 매주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부족한 제한마저 풀어 노동자의 시간을 고무줄처럼 마음대로 쓰겠다는 시도는 우리가 조금씩 만들어 온 '노동시간 제한'을 대폭 후퇴시키는 것이다.

이런 노골적인 '후퇴'만 문제가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윤석열 정권뿐 아니라 정부와 권력은 항상 '안전과 생명'을 소리높여 외치면서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움직임은 방해해왔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탄압과 방해를 뚫고, 한데 모여 산재 인정을 넓히고, 법제도를 개선하고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고, 현장을 바꿔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화물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줄여,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한 화물연대의 파업을 파괴했다. 건설 현장에서 원청의 책임을 요구하고, 안전 수칙을 만들어 온 건설노조를 공격해, 건설노동자들을 다시 고용불안과 속도전으로 내몰아, 현장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 직접적인 생명안전 관련 법 개악 시도만이 생명안전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명안전을 위협하고 후퇴시키는 것이다.

고 문송면 노동자의 자료를 정리해 두고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열사정보' 란에는 문송면 사망 일주일 뒤 발표한 건강사회실현약사협의회 성명서가 실려 있다. 문송면과 같은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천만 노동자의 투쟁과 우리 사회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만이 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말한다.

지금 윤석열 정권의 생명안전 후퇴에 맞서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온 성과를 지키고 한발 더 나아가는 것 역시 '이천만 노동자의 투쟁과 우리 사회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만이 열쇠일 것이다. 많은 노동자·시민들과 '생명안전 후퇴 개악 저지 공동행동'에 함께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태그:#문송면, #생명안전후퇴, #개악저지공동행동,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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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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