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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식 순서와 포스터. 샌프란시스코 공감의 임남희씨와 4.16해외연대의 유정선씨가 사회를 보았으며, 임토마스씨가 추모시를 낭독했다.
▲ 故 김관홍 잠수사 7주기 온라인 추모식 추모식 순서와 포스터. 샌프란시스코 공감의 임남희씨와 4.16해외연대의 유정선씨가 사회를 보았으며, 임토마스씨가 추모시를 낭독했다.
ⓒ 4.16해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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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임 토마스

보인다 눈을 감으면
천만 근 수압아래
숨바꼭질하는 내가 보인다
숨을 수도 없이 뻣뻣한 아이들을 찾아
칠흑 속에 허우적거린다
시커멓게 물먹은 베개와 담요가
주검처럼 두 다리에 감겨온다 

사라진다 눈을 감으면
햇살 같은 아내의 얼굴이
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다
마흔셋의 당당한 삶이 사라진다
눈꺼풀 너머에 도사리던 심해의 악몽 
거짓의 악몽
배신의 악몽 너머로 사라진다 

보인다 눈을 감으면
맹골수도의 거센 물살에 분해되는
수심 48미터의 유적이 보인다
탐욕과 위선의 거대한 강철 무덤
블랙홀처럼 빨려든 여린 목숨들
죽음의 공포에 함께 맞서려고
마지막 숨까지 함께 고르려고
사슬처럼 팔들을 엮고있다 

"자, 이제 팔을 풀자.
엄마 아빠한테 가야지."
.... 

아직도 보인다 눈을 감으면
아이들이 보인다
나를 부르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4.16해외연대, 미시간세사모, 샌프란시스코 공감, 스프링세계시민연대 4개 단체가 공동으로 '고 김관홍 잠수사 7주기 추모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추모식은 묵념과 추모시 낭송에 이어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잠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로그북> (2021)상영, 복진오 감독과의 대화로 구성됐다. 40여 명의 참석자 대다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에 동참해 슬픔과 분노,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나누고 기억과 연대를 이어가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잠수 작업 중에 제일 힘든 게 살배집니다. ... 그 바다는 정말 힘든 바다거든요. 산으로 치면 히말라야죠. 물이 빠르고, 시야가 안 나오고, 물이 차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곳이니까." - <로그북> 중

"쉴 시간이 별로 없이 계속 풀로다가 네 물때씩 작업을 했습니다. 날씨도 춥고 잠잘 데도 없고 먹지도 못하면서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 <로그북> 중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말고, 헤어지지 말고 서로 꼭 붙들고 함께 있자. ?모든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모든 죄상을 시정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강하고, 괴로움을 기꺼이 나누어가지면 무엇도 우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 추모식 참석자들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말고, 헤어지지 말고 서로 꼭 붙들고 함께 있자. ?모든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모든 죄상을 시정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강하고, 괴로움을 기꺼이 나누어가지면 무엇도 우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 4.16해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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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차가운 조류가 맹렬하게 몰아치고 눈 앞이 보이지 않는 가혹했던 작업 환경과 잠수병을 얻고 부상을 당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으면서도 한 명이라도 더,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이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주기 위해 휴식도 줄여가며 무리했던 잠수사들의 헌신, 이들을 공격하고 비방해서 사태를 빨리 지워버리려는 언론과 정부의 홀대와 비방을 기록했다. 

복진오 감독에 따르면, <로그북> 개봉 당시 첫 상영에 찾아온 잠수사들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작품이 세상으로 끌어내준 것에 대해 감사했으며 또 무대인사를 위해 올라와 관객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전해진 공감과 교감에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날 온라인 추모식 채팅방에서도 "그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또 눈물이 쏟아진다",  "감독님도 걱정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오랫동안 묵묵히 작업해오신 감독님을 응원한다", "끝까지 함께하겠다. 감사한다" 등의 위로와 공감, 다짐들이 쏟아졌다.

"잠을 굉장히 많이 설치고 짧게 짧게 자고를 반복해요. 어떨 때는 너무 예민해하고 갑자기 화를 내요. 그럴 때마다 제가 깜짝깜짝 놀라요.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었거든요. 많이 웃고 그런 성격이었는데." - <로그북> 중

"지금 제일 하고 싶으신 말이 뭐에요?"
"살고 싶어요." - <로그북> 중


작업 과정에서 힘들지 않았는지 묻자 복진오 감독은 "집중력 저하, 분노, 감정 기복, 무기력, 난독증, 안면인식장애 등의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며 "사실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본래 후속 작업으로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마무리를 짓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그는 "과연 완전한 치유가 될 수 있을지, 새롭게 만들고 제안한다 해도 완전한 치유보다도 견디면서 살아가는 그런 힘, 에너지를 기대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심경의 변화를 내비쳤다.

그럼에도 버티고 나아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 아픔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었다. 상담을 받고, 가족들에게 상황과 감정을 털어놓고, 영화를 찍으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된 잠수사들과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며, 복진오 감독은 "함께 공감하는 마음으로 관계가 유지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편안하다"고 고백했다.  
유정선(4.16해외연대, 사회), 복진오 감독(오른쪽)
▲ 간담회 줌화면 유정선(4.16해외연대, 사회), 복진오 감독(오른쪽)
ⓒ 4.16해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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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잠수 훈련을 하는 잠수사들은 "서로 헤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의 팔을 단단히 붙드는 일을 연습한다. 선체 안으로 진입한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구명줄을 얽고, 심지어는 스무 명이 뭉쳐서 함께 꼭 껴안고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을 발견하고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린다.

트라우마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주디스 허먼의 책은 공포나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혼자 안고 고립되는 상황이 트라우마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상처가 치유되는 길은 역설적으로 그 고립을 깨고 사회적 공동체적으로 상처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상처에 연대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상처를 나누어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위하고 남을 위하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둡고 무섭고 추운 곳에 누군가를 혼자 내버려 둘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을 그와 함께 버려두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말고, 헤어지지 말고 서로 꼭 붙들고 함께 있자. 모든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모든 죄상을 시정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강하고, 괴로움을 기꺼이 나누어가지면 무엇도 우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태그:#김관홍 잠수사, #복진오 감독, #로그북, #4.16해외연대, #샌프란시스코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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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이코노미스트, 통계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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