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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헌 주민이 그리고 있는 모습
 배재헌 주민이 그리고 있는 모습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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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안동 시내에서는 "한 마을 전봇대에 희한한 그림을 그려 놨더라"라는 소문이 스멀스멀 돌았다. 전봇대 13개, 전주 11개에 그림이 추가로 그려지자 "희한한 그림이 있는 예술마을이 생겼더라"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안동 와룡면 이하1리이다. 산매골이라 불리는 이 마을 중앙을 35번 국도가 관통하기에 소문이 자동차 속도처럼 퍼져 나간 것이다.
 
주민 김순한의 작품. 하나 그리고 나서 두 번째 그린 작품이어서 인지 색감도 풍부해졌고, 형태미도 즐거움을 준다.
 주민 김순한의 작품. 하나 그리고 나서 두 번째 그린 작품이어서 인지 색감도 풍부해졌고, 형태미도 즐거움을 준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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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그린 이들은 모두 마을 주민이다. 화가도 두 명 있지만, 나머진 미술이라는 걸 학교 때 그려본 것 외에는 평생 처음 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대부분 "내가 어떻게 그릴 수 있나"라며 주저하였다 한다. 작년 문화도시 안동의 '시민제안 실험실 생활 실험 백百서'라는 프로그램에 '추상화 그리기'가 선정되어 15명의 주민이 추상화 수업을 받은 것이 자신감 있게 화가로 변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 옆에 서 있는 산매골 마을이장 박영괄
 자신의 작품 옆에 서 있는 산매골 마을이장 박영괄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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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다는 그 쾌감을 즐기세요", "현재, 지금의 내가 무언가를 그린다는 그 자체가 의미 있다"라는 강사의 가르침에 처음에 다들 어리둥절하고, 주저주저하며 선 하나 긋기가 힘들어했다 한다. 500장이 넘는 추상 작가의 작품관람을 통한 '눈 키우기' 과정을 통해 '마음껏 끄적이기'라는 그림 자체의 즐거움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한다.

형상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붓질이 조금씩 가능해지자. 대상의 본질 표현, 심상 표현을 하는 추상화의 쾌감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고 그것이 올해 전봇대 그림에 폭발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한다.
 
주민 김순한이 작업을 마치고 작품 옆에서 기념 촬영
 주민 김순한이 작업을 마치고 작품 옆에서 기념 촬영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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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김순한은 볏짚을 한 움큼 묶은 자체 붓을 크기별로 만들고 그것으로 바탕과 밑칠 작업을 자유롭게 하였다. 일필휘지요, 액션페인팅이었다. 그 위에 붓질로 마무리하였다. 본인은 그려놓고도 "잘 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으나 어느 화가의 추상 작업에 뒤떨어지지 않는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 되었다.
 
주민 유재관이 자신의 작품을 마치고 환한 미소로 서 있다.
 주민 유재관이 자신의 작품을 마치고 환한 미소로 서 있다.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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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유재관의 작업도 놀랍다. 형태를 단순화시키는 능력과 그 자유로운 형태, 그 단단한 선맛은 상쾌한 바닷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청량감을 준다. 오징어인지, 문어인지, 낙지인지 중요하지 않다. 사실 묘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생각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그려지는 그 자체의 즐거움이 중요한 것이다. 본인도 다 그리고 나서는 "그린다는 그 자체의 쾌감을 느꼈다"라고 했다.
 
자신의 작품 옆에서 활짝 웃고 계신 권대석 노인회장
 자신의 작품 옆에서 활짝 웃고 계신 권대석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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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석 노인회장도 그림 그리기 전에는 주저하며 첫 붓질을 하기 힘들어했으나 그리고 나서는 무언가 해놓은 것에 대한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그린 나무, 곡괭이, 써레는 그만의 것이고, 그만의 힘, 에너지, 살아온 삶이 스며 있는 가치 있는 그림인 것이다.
 
시인인 주민 이위발이 자신의 작품 옆에서 찰칵
 시인인 주민 이위발이 자신의 작품 옆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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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들은 '문화도시 안동, 깊은 안동 프로젝트-마을 문화난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다. 산매골 주민들은 올해 마을사업의 이름을 '희희락락 산매골'로 정하고 이름처럼 기쁘고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이로 인해 13명의 주민이 희희낙락하는 화가, 전봇대 화가가 되었다. 이제 안동시 와룡면의 산매골은 소문이 아니라 진정 '추상 그림이 있는 예술마을'이 되고 있다. 아니, 되었다.

태그:#산매골, #문화도시, #안동, #예술마을, #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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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행위미술, 설치미술, 사진작업을 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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