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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차 수요시위 평화로의 풍경
▲ 펜스에 둘러싸인 평화의소녀상 1,600차 수요시위 평화로의 풍경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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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바라며 시작된 수요시위가 1600차를 맞이했다. 이날 수요시위를 시작하기 전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피해생존자와 운동 단체를 향한 비난 현수막이 나부꼈고, 역사부정세력들은 수요시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틀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했다.

평화의소녀상은 펜스에 둘러싸인 채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혹시 모를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을 테다. 하지만 이전처럼 시민들이 평화의소녀상에 다가가 묵념을 하고, 기억의 장소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 평화의소녀상과 시민들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정의기억연대에서 준비한 사진전에서는 피해생존자와 활동가, 그리고 시민들이 일궈온 1600차 수요시위까지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했던 김학순 할머님과, 해방 이후에도 한국에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머물다가 1975년에 피해 사실을 고백했던 배봉기 할머님의 모습도 보였다.

피해생존자들은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순결과 정조의 책임을 물었던 가부장적인 사회에 맞서 용기 있게 증언했다.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은 수십 년 동안 침묵으로 묻어두었던 식민지-군국주의 성폭력 문제를 다시금 사회적 과제로 대두시켰다.
 
1,600차 수요시위 평화로의 풍경
▲ 1,600차수요시위 사진전  1,600차 수요시위 평화로의 풍경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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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남과 북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국제회의장에서 만나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남측의 강일출·황금주 할머니, 북측의 김영숙·박영심 할머님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사진은 70년간 지속된 대결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함께 겪은 식민의 상처까지는 분단시킬 수 없음을 말하는 듯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의 '위안부' 피해자들과 연대하였다.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무력 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해생존자들은 다른 이의 상처에 자신의 상처를 겹쳐가며, 적극적으로 평화와 인권을 실현하는 멋진 활동가로 성장하였다.

정의가 지연된 순간

1600차 수요시위는 대곡초등학교(경기, 고양시) 학생들이 준비한 '바위처럼' 율동으로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수 만든 피켓에는 31년 전부터 외쳐온 피해생존자들의 바람이 적혀 있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세계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님이 수요시위 현장에 등장하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용수 할머님은 마이크를 꼭 쥐며 수요시위 참가자들에게 '고맙다'라는 인사를 보냈다. 이용수 할머님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커뮤니티에서 든든한 막내 동생을 자처하는데, 이번에도 수요시위 참석 전 '나눔의 집'에 계시는 이옥선 할머님을 만나고 오셨다.
 
  "한 분이 이옥선 할머니라고, 이 할머니는 2월 달부터 투석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너무 안타까운데. ... 저한테 하는 얘기가 나는 죽어도 괜찮은데 윤대통령 후보 때 오셔가지고 약속했던 거 꼭 지켜야 한다. 이용수한테만 한 게 아니고, 국민한테도 했습니다. ... 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해달라고 울면서 약속했습니다."
-1,600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님의 말씀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님이 1,600차 수요시위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하였다
▲ 1,600차 수요시위에서 발언하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님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님이 1,600차 수요시위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하였다
ⓒ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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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님도 이옥선 할머님도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윤석열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아니, 오히려 역사정의에 역행하며 참담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31년을 거쳐 온 수요시위는 누군가의 무릎을 꿇리고자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미래조차 생각하지 않는 운동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촉구하는 일은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조건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역사부정세력은 혐오와 모욕적 표현을 통해 1,600차 수요시위를 방해하였다.
▲ 역사부정세력의 혐오와 모욕으로 얼룩진 현장 역사부정세력은 혐오와 모욕적 표현을 통해 1,600차 수요시위를 방해하였다.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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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님이 등장하자, 역사부정 세력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경찰이 저지했고,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며 현장을 지켰지만, 악에 받쳐 내뱉는 '설도(舌刀)'는 곳곳에 박혔다. 버젓이 이용수 할머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도, 할머님을 향해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모욕이 쏟아졌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짜깁기하여 일본군'위안부' 역사 전체를 부정하였고, 여성이 겪었던 성폭력 구조 자체를 은폐하였다.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매춘은 성폭력이 아니다'라는 이들의 논리는 피해생존자뿐만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낙인이자,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시도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평화로 간다!

"정부는 못 믿어도 우리 국민들은 믿는다." -(故)김복동 할머님

김복동 할머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다. 국가는 언제나 주춤했고, 숱하게 퇴행했다. 식민지 피해 문제의 해결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 전반의 문제 제기까지, 피해생존자의 용기를 이어온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피해생존자들은 기억과 행동으로 맺어진 두터운 연대 아래에서 평화로 나아갔던 지난 1600번의 투쟁을,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온 시민들을 믿고 있다. 그래서 퇴행의 시대는 두렵지 않다.

어떤 모욕도 평화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혐오는 절대로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보여줄 때다. 나비처럼 훨훨 해방의 몸짓을 실천했던 피해생존자들의 삶을 기억하자. 그리고 오늘 우리를 가두고 있는 폭력의 세계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몸짓을 계속하자. 1600번의 수요시위를 딛고 우리는 함께 평화로 간다.
 
1,600차 수요시위 핵심 구호는 "우리는 함께 평화로 간다"였다.
▲ 1,600차 수요시위 "우리는 함께 평화로 간다" 1,600차 수요시위 핵심 구호는 "우리는 함께 평화로 간다"였다.
ⓒ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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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600차수요시위, #일본군'위안부', #평화로, #평화의소녀상, #역사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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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인권과 평화로 빛날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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