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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곡산 모암봉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 달성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이곳에 서면 그 옛날 너른 들이었던 성서공단과 달성습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죽곡산 모암봉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 달성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이곳에 서면 그 옛날 너른 들이었던 성서공단과 달성습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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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 김종원 박사(계명대 생물학과 전 교수)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유명한 죽곡산 모암봉으로 탐사 여행을 다녀왔다.

작고 아름다운 산이지만 무척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선사인들의 유적도 만났다. 청동기 시대에 제의(제사) 장소로 쓰였을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죽곡산 모암봉 탐사 여행에는 한 가족이 동행해 현장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소식을 전해본다.

식물박사 할배가 들려주는 죽곡산의 식물 이야기

지하철 대실역 부근 한신 휴플러스아파트 옆으로 난 나무계단을 이용해서 죽곡산을 올랐다. 김종원 전 교수와 필자 그리고 준이네 가족이 함께다. 나무계단을 오르자마자 땅바닥이 이상하다. 조약돌이 촘촘히 박힌 땅이 계속 이어졌다. 산에 웬 강바닥 조약돌일까? 탐사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김종원 교수는 손자뻘 준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설명을 이어간다.
 
산길 바닥에 박힌 조약돌을 보고 김종원 박사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산길 바닥에 박힌 조약돌을 보고 김종원 박사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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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호수나 바닷가에서 오래 전에 퇴적된 자갈바위(역암)가 6천만 년 만에 여기 우리 발치에 있는 모습이다. 왜 여기 있을까,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나님이 들어 올렸나 누가 들어 올렸지?

저쪽에 있는 팔공산이 오랫동안 땅속에서 솟아오르면서 그 주변 땅을 다 들어올리게 되는데, 그때 지면에 드러나게 된 거야. 그러니까 무척 오래 됐지. 죽곡산에 우리 동민과 주민들이 이렇게 많이 다녀도 팔공산만큼 길이 파이지 않아. 퇴적암이기 때문이야. 잘 침식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시멘트처럼 여물어서 땅이 안 파이는 것과 같아.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다녀도 잘 유지되고 있잖아."


길바닥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돼 이제 본격적인 식물사회로 이야기로 옮겨간다. 산에 들자 첫 번째로 키 작은 관목을 만났다.
 
김종원 박사가 산초 나무 앞에서 산초가 초피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종원 박사가 산초 나무 앞에서 산초가 초피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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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시 보이나? 줄기에 가시가 이렇게 마주 나는 게 있고 어긋나게 나 있는 게 있어요. 어긋나게 나면은 '산초'고 마주나면 '초피'란다. 가시가 전부 다 어긋나 있어. 그러니 이 녀석은 산초지. 산초는 먹어도 되는데 초피에 비해서 질이 떨어져. 근데 야들이 향기가 독특하지. 이 향을 누가 가장 좋아하는 줄 아나? 이 지구상에서 야 향을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사람? 사람 아니야 가장 좋아하는 게 사람 말고 누굴까?

바로 호랑나비, 산호랑나비들이 여기에 알을 낳고 애벌레가 이 잎을 갉아먹고 여기서 크고 난 뒤에 엄마가 돼 자기 옛날 생각하면서 여기에다 다시 알을 낳아. 이거 없으면 호랑나비들은 다 사라질지도 몰라."


여러 호랑나비들의 '숙주 식물'이 바로 산초나무나 초피나무란 설명이다. 추어탕에 넣어 먹는 초피가 이렇게 생겼고 산호랑나비가 그렇게 좋아하는 식물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산초나무를 뒤로 하고 오르다 바윗돌 틈에서 다시 또 한 친구를 만났다. 김종원 교수는 다시 친절한 설명을 이어간다.
 
김종원 박사가 지금은 사초라고 흔히 알려진 이 풀의 우리 이름이 싸라기풀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김종원 박사가 지금은 사초라고 흔히 알려진 이 풀의 우리 이름이 싸라기풀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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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싸라기풀'이야. 쌀보다 작은 '쌀 아기'에서 싸라기란 이름이 왔지! 아름다운 우리말 싸라기란 이름을 놔두고 지금은 한자말로 '사초'라 불러! 이 녀석은 그늘사초인데, 그러니까 그늘에 사는 싸라기풀이란 것이야! 산에 흘러내리는 흙을 붙잡는 역할이 아주 크단다."

여태껏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싸라기풀을 알게 되었다. 이어 대숲 부근에 들자 까마귀가 울고 있었다. 녀석에 대한 설명도 이어진다.

"저 까마귀는 겨울 철새야! 아직 안 돌아가고 남은 친구인데 시원한 곳을 찾아 이곳 숲에 온 거야. 저 까마귀가 착한 친구일까 나쁜 친구일까? 착한 친구, 맞아! 이 세상에 모두 착한 친구고 나쁜 친구는 없어, 알았지?

그래. 까마귀도 이 세상에서 참 착한 친구인데 까마귀가 뭘 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정리하는 청소부 동물이야. 먹다 나면 쓰레기는 어지간한 건 다 정리해줘. 죽은 시체. 쥐 죽은 거 두더지 죽은 거 그렇게 청소부 동물이니 얼마나 귀중해."


이어 까마귀 울음이 멈추는 곳에서 또 한 친구가 나타났다. 연보랏빛이 도는 꽃을 단 아름다운 식물이다. 김종원 교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땅비싸리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땅비싸리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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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가 '땅비싸리'인데 이렇게 우리 산에 종종 보이거든요. 이 녀석은 좀 늦게 핀 녀석이거든요. 인도에서는 최고 아름다운 색을 내는 염료식물로 쓴단다. 쪽빛 염색에 세계 최고란다. 주로 잎으로 염색하거든요."

땅비싸리를 떠나자마자 또 귀한 식물을 만난다. 멸종위기종 나비인 붉은점모시나비의 숙주 식물을 만났다. 바로 기린초. 녀석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숙주 식물인 기린초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숙주 식물인 기린초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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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원래 바위에만 사는 식물인데 기린초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바위 절벽 같은 데 잘 살어. 그래서 절벽 바위도 허접한 곳이 아니고 그 귀한 생물들이 사는 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지. 그러니까 길 하나 닦는데도 사실 마음을 조금만 쓰게 되면 자연도 잘 지켜가면서 또 우리도 행복이 되는 길이 있는데 그냥 모르면 막 밀어버리지"

붉은점모시나비의 숙주 식물 기린초 옆에는 또 특이한 꽃을 피우는 친구가 있다. 바로 인동초 김대중을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인동초다.
 
김종원 박사가 인동덩굴을 붙잡고 꽃망울이 잡혔을 때와 꽃이 활짝 필 때의 색깔이 다른 점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종원 박사가 인동덩굴을 붙잡고 꽃망울이 잡혔을 때와 꽃이 활짝 필 때의 색깔이 다른 점을 설명해주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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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름이 인동덩굴인데 보세요. 꽃이 폈어. 이거는 피기 시작해. 아직 꽃망울이야. 필 때는 흰색인데 다 피고나면 노란색으로 바뀌어. 이게 무슨 뜻이냐면 필 때는 아직까지 시집 안 간 결혼하기 전 상태라. 결혼하고 나면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어요"라고 보여주는 색깔이에요 이게. 그러면 결혼했다고 보면 나비는 찾지 않지! 향기도 없고 꿀도 없어서 안 날아오지! 꽃이 하얄 때 날라오지. 꿀 먹으러.

사람 사회하고 똑같아. 결혼했으면 결혼했다고 폼 내야지. 어머니가 처녀 폼 내면 좀 어색하지요! 바로 같은 이야기라!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지! 이름이 왜 인동이냐 하면 겨울에도 너무 잘 이겨내. 겨울 동, 동절기를 잘 인내한다 해서 인동이야. 인동덩굴을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정치인 김대중이야."


인동초 김대중을 닮은 인동덩굴을 뒤로 하고 계속 산을 올라 어느 묘소 앞을 지나간다. 묘소 옆을 지나자마자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하얀 꽃이 눈에 들어온다. 김종원 교수가 다시 나선다.
  
준이와 엄마가 바짝 엎드려 땅찔레의 향을 맡고 있다.
 준이와 엄마가 바짝 엎드려 땅찔레의 향을 맡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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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찔레 꽃에 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땅찔레 꽃에 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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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는 땅찔레라고 하는데, 야의 향을 초반에 맡으면 너무 좋아요. 지금은 좀 지난 시기란다. 젊은 숙녀 꽃이 아니고, 때가 좀 지난 꽃이야! 꽃도 크죠? 정확히 부르는 이름은 돌가시나무란다. 잎이 두껍고 땅바닥에 붙어 있으니까 굉장히 잎이 두껍고 찔레보다 잎이 훨씬 작고요. 그래야 지열을 이겨내고 뜨거운 열기도 이겨내."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로새긴 선사인들의 놀라운 유적

흔히 보이는 찔레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다르고 땅에 붙어서 자란다 하여 땅찔레다. 땅찔레의 향기에 취했는지 벌 한 마리도 날아와 꽃망울을 떠날 줄 모른다.

땅찔레를 뒤로 하자 길은 이내 바위능선길로 바뀐다. 이 바위능선길에 새로운 보물이 숨어있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김종원 교수가 다시 이야기 보따리를 활짝 펼쳤다.
 
선사인들의 제의의식 도구로 사용됐던 윳판 문양의 독특한 선사인들의 유적을 만났다.
 선사인들의 제의의식 도구로 사용됐던 윳판 문양의 독특한 선사인들의 유적을 만났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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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 모양의, 선사인들의 제의 의식 도구로 추정하는 윳판 모양의 선사유적
 윷판 모양의, 선사인들의 제의 의식 도구로 추정하는 윳판 모양의 선사유적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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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개걸윳모. 이게 윳판이야. 윳판. 이걸 왜 팠을까? 쇠로 했든지 동물뼈로 했든지 단단한 나무로 했든지 돌로 했든지 가지고 와갖고 팠을 거 아니가. 이거 판 사람은 무슨 희망이 있었을 거야. 뭐 때문에 팠을까? 이유가 있지. 뭐 때문에 팠을 거 같애? 수천 년 전에 말이야.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아니가. 두물머리에 물이 바짝 말라. 가뭄이 왔어. 그러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늘에 기도해야 되지. 기도하기 위해서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거 아이가. 그중에 한 방법이야 이게. 도개걸윳모는 한마디로 풍요와 다산 안녕 이런 걸 기원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윳놀이가 생겼지"


바윗돌에 새겨진 원형 윳판이었다. 선사인들이 팠다고 한다. 그것도 청동기시대. 왜? 이 한신 휴아파트를 지을 때 유적이 나왔는데 청동시시대 유적이었다 한다. 그 유적들과 동일선상에서 유추가 가능하단 설명이다. 김 교수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
  
손자뻘 준이와 그 가족에게 선사유적에 대해서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김종원 박사
 손자뻘 준이와 그 가족에게 선사유적에 대해서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김종원 박사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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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내가 볼 때는 청동기 시대 때 팠다고 보고 청동기 시대 때면 쇠막대기 만들어졌잖아. 이런 쇠막대기 같은 걸 만들어가 팠지 싶어. 이래서 이거 파는 사람은 또 마을주민 중에 가장 몸이 깨끗한 사람 도둑질 안 한 사람 나쁜 짓 안 한 사람을 선발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날짜를 잡아가. 몸을 정갈하게 해서 파는 거야. 파고 난 뒤에 젯상도 꾸며놓고 기도도 하고 하늘 보고 비도 달라 그러고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비는 거야.

그리고 청동기 시대는 이 근방에 농사를 많이 했던 시대야. 그래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마주치는 두물머리 근방은 비옥한 토양이지. 어떤 의미에서 대구에서는 가장 일찍이 문명이 꽃폈던 중심 중에 한 곳이야. 물이 가까이 있으니까. 기도처이면서 기도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 있는데 가뭄 들 때 비 내려달라는 기도. 집안에 또 길흉화사가 있을 때 좀 편안하게 해달라는 기도처. 평화를 그리고 화복과 안녕을 비는 모든 것을 비는 그런 산이라, 이 산이. 우리 지역에서 가장 신성하고 정신적으로 의지처가 되는 곳이 이곳이야."


선사인들의 유적을 앞에 두고 긴 설명을 이어가던 김종원 교수의 마지막 감상이 더해진다.

"어때? 정말 이 산이 이 동네가 달라 보이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 산을 한번 걸어봐. 어떻습니까? 마음이 심란할 때 이 산을 걸으면서 그 윳판을 마주치거든. 거기서 잠시 멈추시오. 그러면 보일 것입니다. 멈추면 보인다. 이런 소문이 나면 이 산에 사람이 너무 많이 찾을까 걱정이네."
 
죽곡산 모암봉에서 내려다본 성서공단과 달성습지. 성서공단이 드넓은 농경지였을 때 달성습지는 흑두루미를 비롯한 다양한 새들의 낙원이었다.
 죽곡산 모암봉에서 내려다본 성서공단과 달성습지. 성서공단이 드넓은 농경지였을 때 달성습지는 흑두루미를 비롯한 다양한 새들의 낙원이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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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낙동강, #금호강, #죽곡산, #김종원 교수, #선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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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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