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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앞에서 난민인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집트인 오킬 F씨. 한국에서 9년간 난민인정을 위해 싸우느라 가족과 생이별을 한지 이미 십여년째라고 한다.
▲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집트 난민  법무부 앞에서 난민인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집트인 오킬 F씨. 한국에서 9년간 난민인정을 위해 싸우느라 가족과 생이별을 한지 이미 십여년째라고 한다.
ⓒ 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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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일째 법무부 앞에서 난민인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는 이집트인이 있다. 오킬 F씨다. 그는 지난 4월 24일 법무부가 있는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난민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물과 소금으로 연명하고 있어 단식 한 달이 넘은 14일 현재 체중 약 28kg이 줄어든 상태라고 한다. 생명이 위중한데도, 자신의 존엄을 찾겠다는 태도다. 

오킬 F씨 사연은 비인도적인 한국 난민 정책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한국에서 9년 간 난민인정을 위해 싸우느라 가족과 생이별을 한 지 이미 근 십 년째라고 한다. 그는 2013년 현 이집트 대통령 엘시시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가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정치 탄압을 피해 지난 2014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오킬씨는 난민 전담 공무원과 통역인이 면접 과정에서 한국에 온 목적을 본인이 하지 않은 말로 허위 통역하고 기재한 피해를 인정받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을 받게 되었지만, 법무부는 재심에서도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정부의 생계지원이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기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8~9일 오킬씨와 페이스북으로 서면 인터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법리적 문제와는 별개로 법무부는 단식 50일이 넘은 그에게 청사 내 화장실 사용마저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킬씨는 필자에게 되물었다.

"법무부(영어로 직역하면 '정의의 부서' 'Ministry of Justice')가 화장실 사용에서도 공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난민 인권에서 공정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저도 인간입니다. 저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습니다."

"법무부, 이름처럼 정의로운가"... 변호사 "박해 진술에 신빙성 부족? 부적절하다"
 
2018년 9월 청와대 앞에서 4명의 이집트인들이 단식농성을 했을 당시 길가에 쓸쓸하게 놓여있던 손팻말. "세계인권선언 제 1조.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2018년 9월 청와대 앞에서 4명의 이집트인들이 단식농성을 했을 당시 길가에 쓸쓸하게 놓여있던 손팻말. "세계인권선언 제 1조.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 클레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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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지원하는 난민인권센터의 김연주 변호사는 필자와 서면 인터뷰에서 그의 난민 인정이 거부된 사유와 관련해 "박해 관련한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 판결을 받은 것이 없다는 것, 정상적으로 출국했다는 점 등"이라고 알렸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이 분(오킬)이 반정부 정치활동을 했다는 다수의 사진 자료가 있고, 체포 구금의 증거자료가 있고, 이 분으로 인해 가족들이 위협을 받았다는 진술과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있다"며 "이집트 정황을 고려한다면 이분의 주장과 증거자료가 이집트 상황에 부합하고, 판결이 없어도 귀국 시 위험할 수 있다고 충분히 판단 가능하다. 박해 관련한 진술에 불일치한 부분도 없었다. 기억력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당사자가 난민심사를 받기까지 8~9년의 장기간의 시간을 대기하며 고단한 노숙 생활까지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를 불인정의 사유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집트인으로서 난민 인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 건 오킬 F씨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이집트인 4명이 청와대 앞에서 같은 이유로 단식 농성을 했다. 지난 5월 26일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이집트인들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들의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이들은 난민 인정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과 서울 시내 곳곳에서 농성과 시위를 벌여왔다. 다수의 이집트인들이 이집트 군부독재에 반대하다가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망명을 왔지만, 한국 정부는 수년째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22년 8월 21일 어린이들이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난민 신청자 보호 및 조속한 난민 심사 촉구 집회에서 비눗방울을 불며 놀고 있다.
▲ "난민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세요" 2022년 8월 21일 어린이들이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난민 신청자 보호 및 조속한 난민 심사 촉구 집회에서 비눗방울을 불며 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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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은 '난민 인정, 난민 생활조건 개선, 난민 심사 기준 명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탄압과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을 또다시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고 규탄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994~2022년 이집트 난민 신청자는 총 5351명으로 이 중 현재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102명이다. 난민 인정률을 국가별로 보면 미얀마,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에 이어 파키스탄과 함께 4위지만, 여전히 0.01%에 그친다. 이에 비해 독일은 이집트 난민 신청자 중 17%를 난민으로 인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체 이집트 내 정치적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길래 물리적 거리가 먼 한국까지 올까. 이집트는 2011년 18일간의 시민들의 저항으로 약 30년간 독재정치를 이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퇴진시켰다. 그 다음 해 선거로 이슬람형제단 출신 모하메드 무르시 정부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무르시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여론도 높아지고 조기선거를 요구하는 '반항(Tamarrud)'운동이 6월 30일 최고조에 달하자,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엘시시가 2013년 7월 3일 무르시를 퇴출하고 군부쿠데타로 집권하며 현재까지 공포정치를 이어오고 있다.   

이집트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무바라크 장기독재를 종식시킨 2011년 집회에서 최소 846명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오킬씨는 국가폭력으로 살해당한 시체들의 대량유기가 수면으로 떠오른 정황을 고려해 보면 실제 피해는 약 10배인 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발표에 의하면, 현 엘시시정권은 2013년 8월 라바 및 나흐다 광장에 모여 군사쿠데타를 규탄한 평화적 집회에서 최소 1100명의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한다. 한편 주요 반대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은 라바 집회에서만 약 26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공격을 "반인도적 범죄"이자 "최근 역사상 하루 동안 발생한 세계 최대 규모의 시위대 살해 사건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이 대학살의 참가자 중 739명이 기소를 당한 가운데 5년 후인 2018년 카이로의 형사법원은 75명 사형선고, 47명 종신형, 374명 15년 징역형 등을 선고했다. 2013년 '라바대학살'의 책임자들은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았던 이 판결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실제 2018년 9월 당시, 국제엠네스티 측은 홈페이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여기서 나지아 부나임 국제앰네스티 북아프리카 캠페인 국장은 "라바와 나흐다 시위에서 최소 900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단 한 명의 경찰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번 재판이 얼마나 정의를 조롱한 재판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집트 당국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모든 피고인들이 사형에 의존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존중해 재심을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제기구들이 지적하는 이집트의 인권 탄압 

이런 정치적 배경으로 현 이집트 정부는 2013년 이래 24개의 감옥을 신축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2015년 1월 25일 이집트혁명 기념일에는 최소 17명의 시민이 총격당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규모의 살상이 계속됐다고 보도돼 왔다. 이로 인해 반정부 성향의 시민들은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해외 망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알려진 이집트 집권 세력의 정적 및 언론탄압은 그 잔인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차로 들이받고, 건물 지붕에 저격수를 통해 실탄을 쏘는 등, 잔인한 방식으로 수차례 다양한 규모의 자국민 살인을 저질러왔다고 알려져있다. 정권에 위협으로 여겨지는 정적은 무기한 구금, 고문, 사형, 재산압수, 여행 불허 등의 탄압을 받는다는 현실을 국제인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난민법협약에 가입한 국가인 한국이 정치상황에서 망명한 이런 이들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받아줘야 할까. 한국은 1992년 UN에 가입하면서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1994년부터 제도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1994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이 인정한 난민은 인도적 체류까지 포함 총 3575명인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알려진 대한민국의 난민 인정률은 0.4%~1%대에 불과하고, 생계지원 또한 거의 전무하며, 현 정부는 재신청을 제한해 가급적 송환하겠다는 취지로 난민거부를 더욱 노골화하는 난민법 개악을 꾀하고 있다고 난민 변호사들은 말한다.

필자는 최근 기차 안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이들에게 독일 정부의 난민지원정책에 대해 문의했는데, "정부 지원에 아주 만족한다. 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보태주고 연대해줘 감동받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국의 난민들에게서 이런 답을 듣는 것은 언제 가능해질까.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의 이일 변호사도 지난 5일 필자와 한 인터뷰에서 6.25전쟁 후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던 한국이, 오히려 난민 처우는 열악한 데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도 전쟁 뒤 국제사회 원조가 없었다면 오늘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다. 한국전쟁의 피해를 구호하기 위해 UN한국재건단(UNKRA)이 설립되었는데 사실 현재 유엔난민기구의 전신이라고도 평가되는 일을 했다. 한국 전쟁 난민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려고 하다 보니 국제기구가 탄생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 사회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들의 저임금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착취해서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저희가 선원 관련 캠페인을 많이 했는데, 한국에 오는 수산물 중 연근해어선 40%, 원양어선 60% 이상은 외국인들이다. 이들의 임금은 반도 안 되고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캄보디아인들이 매일 15시간 깻잎과 상추를 따기 때문에 우리가 밥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현실인데도, '외국인들에게 복지혜택 받지 말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소멸하는 지방을 살리고 있는 것도 그 지역 이주 노동자들 덕분이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는 말도 안 되는 혐오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태그:#공익법센터어필, #인권난민센터, #오킬, #이집트, #한국난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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